...손가락이 힘들어

산 하나를 더 넘자 이미 눈도 귀도 필요 없을만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야가 떠난 뒤 후둑후둑 떨어지던 비는 차라리 맑았다고 하는게 낫다고 할 정도로. 이렇게나 비가 쏟아지고 있건만, 바람이 한 점 불지 않는다는건 신기했다. 신기하면 뭘 해, 그걸 갖고 뭐라고 하기 전에 비에 맞아 쓰러질 지경이다. 바람까지 불었다간 정말 산을 오르는건 무리였겠는데…….
그건 그렇고, 빗속을 우산도 비옷도 없이 나는 건 정말 미친 짓이다. 지금도 몸이 무겁다 못해 슬슬 다 귀찮아서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추워. 거기다 피곤해. 길바닥이든 어디든 누워서 자고싶어. 아아, 오랜만에 레이무가 끓인 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있고싶다구…….
무릎이 꺾일 것 같다. 무거운 몸이 질질 끌리듯 하늘을 난다. 힘들어.
잠깐, 그러고 보면 신사에 사는 무녀는 아무 반응 없이 있는거지? 이 비,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닌데. 거기다 여기 사는 무녀는 날씨를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생각하면 할 수록 이상한 곳이 한둘이 아냐…….
그리고 드디어 내 시야에 신사가 들어왔다. 제법 규모는 있는 신사였지만, 이런 날씨에서야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는게 문제랄까.

"아무도 안 계세요?"

신사는 엄청난 물을 토해내고 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보는 나까지도 불안해져서 그걸 떨쳐내려 다시 한 번 외쳤다.

"아무도 안 계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찰박찰박 하는 기분좋은 울림이 아닌 이미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꼴로 지면과 물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 경내에 도달했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난 신을 신은 채 경내에 들어갔다.

경내에 울리는 엄청난 빗소리에 내 발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거기에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키가 작고, 또 한 사람은 나보다도 더 커 보였다. 작은 쪽은 아마도 모리야 스와코고, 큰 쪽은 카나코겠지. 둘은 손을 맞잡은 채 끝없이 울고있었다. 방울진 눈물이 흘러내리고, 흘러내리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계속해서…….
멍하게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작은 쪽, 스와코였다.


"무슨 일이야?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어?"

아니 그거야 당신들이 신기하니까…….
그렇게 말 했다간 조금 곤란해질 것 같아서 나는 대답을 골라냈다.

"아니, 그… 뭐라고 할까… 두 분의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할까……"

톡, 하고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빗물이 뺨을 타고 미끄러져 입 안에 들어간다.
그 시큼한 맛이 대책없이 기분나쁘다.

"뭐 조금 보기 안 좋으려나. 그치만 이해해주길 바라. 지금 우리들, 서로가 보이지 않는걸."

뭐?
그걸 알고있는거야, 이 둘은?

아니 뭐라고 할까 그렇다고 하면 오히려 슬퍼질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런 내 생각을 안다는 듯 스와코는 내게 말했다.

"물론이야, 서로를 느끼고 있으니까, 마음은 안정되어 있어.
지금이야 이렇지만 맨 처음엔 난리도 아니었는걸. ……여기에 있다고 느껴져서 돌려다봤는데 안 보인다니, 자신이 이상해진건 아닌가 싶었어. 그치만 그녀가 있을 법 한 곳에 손을 뻗어보면 그 손을 붙잡아줘서,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지."

그 때를 떠올린건지, 스와코의 얼굴은 너무나도 온화하게 변해서, '아아, 이 사람은 이렇게 보여도 정말 여신님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온화한 얼굴에서도 여전히 눈물은 흘러내려 내 기분마저 슬프게 물들었다.

"사실은 좀 더… 만져서, 끌어안아서, 난 카나코 옆에 있다고 더 전해주고 싶어… 그치만 만일 그렇게 했다가 그녀가 내 손을 놓아버린다면 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게 되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참고 있는거야."

그렇게 말하곤, 남은 손으로 카나코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그 손 위로도 카나코의 눈물은 흘러내려, 그 손을 적셨다.

"느껴진다니까? 그녀가. 이 손에 잡힌 건 그녀의 손이라는걸, 알고 있다니까? 언제나 느끼던 맥박인걸.
그치만 난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다가, 그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저 손을 뻗으면, 이렇게- 만지는 것 만이 허용되는, 그런건가봐. 정말 질 나쁜 농담이지.
누군가의 농담인지 장난인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손을 뻗으면 그녀가 있는 건 알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한 스와코는 카나코의 뺨에 살짝 키스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울고있는걸까… 나 때문에?
그치만, 우리 둘은 이렇게 손을 잡고 있으면 괜찮아. 서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카나코도 괜찮을거야. 그치만 이 무능한 신에게 바람을 보낸, 사나에는 어쩌면 좋지."
그치만 지금 걱정인건 사나에.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건 그 아이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겠지. 거기다 우리 둘, 그 아이가 우리에게 부탁한 걸 느꼈어. 그치만 이 비는 나뿐만이 아니라 카나코의 눈물도 함께 흘러내리고 있는거라서, 멈출 수 없었어. 그러니까 걱정이야. 실망해서,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을정도로 절망하고 있을테니까."

아.
이 신사는 그 때문에 이렇게나 절망적인 색으로 물들어 있는거구나.
이렇게나 슬프게, 쓸쓸하게, 마치 저 무녀 혼자서 지키고 있는것처럼.

"……."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

"괜찮을까요. 저도 그렇게까지 한가하진 않아요."

"아냐, 사실 들어주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거야. 그치만 그저 이 카나코와,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찾아 떠났을 사나에에게……
난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전해줘."

목이 메었다.
카나코의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잠겼지만, 내 목도 메었다.
어째서 이들은 이렇게까지 절망해야만 하는걸까.
이렇게 슬퍼해야만, 서로를 걱정해야만 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내 머리 속에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메이린.
지금도 날 찾는 일에 열을, 힘을, 그 명을 깎아가며 뛰고 있을 여자. 몸은 괜찮니? 밥은 먹고있어?
내 얼굴에 뭔가 방해되는 것이 떨어졌다. 그런 날 본 스와코는,

"미안, 네 사람을 생각나게 해 버렸니?"

"킁…… 아뇨, 괜찮아요."

잠긴 목이 순식간에 갈라져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을 떠올려버리니 멈출 수 없게 되어버려서, 그런 내 모습을 스와코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 몸, 그 머리카락, 그 미소…….
아아, 메이린, 메이린.
당장이라도 목놓아 울며 부르고싶은 그 이름, 닿고싶은 그 이름…….
그치만 난 여기서 울고만 있을 수 없다. 이대로는 안 돼, 난 눈에 힘을, 주먹에 새로운 피를 흘려넣으며 얼굴을 들었다.

"넌 강한 아이네, 너라면 이 '이변'은 분명히 해결할 수 있을거야."

이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되는 정도의 이변인가.
바보같은 일이야. 누구의 소행이지? 알 수 없어. 모르겠어. 감만큼은 둔한 나로썬 이런 건 쥐약이다. 그치만,

"고마워."

나아갈 수 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영영 메이린과 만날 수 없는걸. 그러니까 여기선 우선 이 둘을 안심시키자. 산에있는 수 많은 사랑하는 자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도록.
난 카나코에게 스와코의 말을 전했다. 카나코는 그저 '알았다' 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치만 내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낀 건, 그녀의 기분이 매우 안정적으로 가라앉았다는 것.

경내에서 나오자 비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아까의 둘이 조금은 진정했다는 증거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일.

상대는 신마저 희롱할 수 있는 괴물. 거기다 장난인지 뭔진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신들도 손대기 어려운 존재.

그러니까 그만큼 맘을 다잡아야만 해. 쉬운 상대일리도 없고, 그렇게 쉽게 끝내줄 생각도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대는 결코 쉽지도, 그리고 말로 해서 들을 상대도 아니지만 난 하늘로 날았다. 기다리고 있어 보라구, 이 내가 움직이게 만든 댓가는 치르게 해 줄 테니까.

아아, 뭔가 이야기가 너무 커진 느낌이야……. 뭐 하고 있니, 어디에 있니 메이린…….
Posted by 나즈키

블로그 이미지
頷きながら、認めながら
나즈키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