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23. 15:16 동방
[단편] 백합꽃 질 적에
마법의 숲에, 고요한 바람이 내려앉았다.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녀는 인형사가 살고 있는 집의 벨을 눌렀다.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행동은, 인형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머, 희한한 손님이네."
집주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앨리스를 따라 그녀는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두고 오라고 말 했지만,
무시한 채 들고 들어갔다.
방 안을 둘러보니, 예전과 크게 바뀌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성격처럼
방 안은 깔끔했고, 세심하게 끓인 차는 최상의 맛을 선사했다.
무언가 이런저런 대화를 했지만,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다시금 바람이 불었고, 마법의 숲엔 또다시 앨리스 홀로 남아 어두운 밤을 지켜가고 있었다.
새로이 바람이 머문 곳은 서양식의 대저택이었다. 외관에 맞지 않는 넓이를 가졌던 예전과는 달리,
이젠 보이는 만큼의 넓이만을 가지고 있었다.
즉, 엉망으로 커져버렸다.
공사라던가 소란스러운걸 꺼렸던 저택의 주인은 자신이 지낼 곳을 새로 만들어 그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언젠가는 인간도 머물었던 이 건물엔 이제 책과 마녀, 그리고 소수의 요괴들만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그다지 않의 분들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조용히 바람은 불었다.
이 곳은 언제나 그렇지만, 정원이 너무 넓다.
관리하는 사람은 고생이 많겠지. 그 정원사는 최근 나이가 찬 티를 풀풀 풍기며 마을 남성들에게
일등 신부감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치만 내 생각에 그건 무리일텐데. 한 자리 다소곳하게 앉아있을 줄 모르는
이 정원과 정원사의 주인은, 식탐 만큼이나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니까.
아니,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네. 여러가지 의미로.
망령난 공주님... 아니 망령공주와는 술 두세잔을 주고받았을 뿐, 역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지만, 그건 신뢰도 안 가는 장난에 불과하겠지.
정원사 아가씨와는 제법 이야기가 통했지만, 공주님 시샘이 워낙 심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정원사의 말을 들어보니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자가 최근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백발 미소년이 있다고 한다.
그래, 거기도 벌써 그런 시기인가?
생각난 김에 죽림으로 향했다.
그다지 내가 그들에게 원할 것도, 해줄것도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자주 보는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면 차 한잔은 얻어먹겠지.
별로 차가 먹고 싶은건 아니지만.
은신처는 다른곳의 배는 평화로웠다.
예의 약사와 그 제자가 날 맞아주었고, 양쪽 모두 거의 변한 모습은 없었다.
제자는 또 언제나처럼 토끼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있었지만, 아무려면 어때.
여기의 주인이라는 공주는 볼 수 없었다. 뭔가 신기한 걸 가지고 노는 듯 하던데. N□S라던가?
아무리 나라도 이만하면 지쳐, 그렇게 생각하고 언제나의 그 곳으로 돌아왔다.
안에서 날 반겨준 건 도깨비 꼬맹이였다.
"뭐야, 또 한 잔 하러 온 건가, 자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그 말투에, 나는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귀엽기도 하지.
"좋아. 한 잔 부탁할게."
그녀는 자신이 마시던 잔, 그러니까 보통은 쟁반 또는 대접이라고 부를 법 한 것을 넘기곤 시원스레 들이부었다.
술의 향기가, 코를 지나 뇌 전체를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아직도 기다리는거야?"
캬아-
벌컥벌컥 시원하게 잘도 술을 넘긴 스이카가 말했다.
"아직도라니, 얼마나 됐다구."
반박했다. 한숨을 푹 내쉰 스이카가 말을 이었다.
"하아 - 그 앤 떠났어. 언제나처럼 하늘하늘하게. 붕- 하고."
"시끄러. 그럴 리 없어."
한 대 콩, 쥐어박았다.
그치만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
그녀가 만들고 지탱하는 결계가.
숨 쉬는 것 처럼, 존재감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게 느껴진단말야.
대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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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은 맞춰보세요.
화자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으니까. ...아니 노력했지만 어떨지.
열감기 있을때 쓴거라 별로 제정신으로 쓴 것 같진 않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셔도 좋고.
여기까집니다.
- 奈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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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는 말했다.
"하, 그 녀석이 먼저 갈 줄이야..."
앨리스는 말했다.
"조금은 닮은꼴이었는데. 섭섭하지."
레밀리아는 말했다.
"운명이니까. 믿을 수 없지만."
사쿠야는 옆에서,
"세상일 알 수 없다지만..."
하고 거들었다.
파츄리는,
"알 바 아냐."
그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책에 얼굴을 박았다.
메이린은 뭐라고 했지만, 기억나지 않아.
요우무는, 울었다. 흐느끼며 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유코는 내게 말했다.
"적어도 혼령중엔 못 본 것 같은데. 삼도천도 건너가지 않은 것 아냐?"
케이네는 병석에 누워있었다.
"아마 저도 곧..."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대기, 끝.
1. 공기.
2. 기다림.
이 글을 제자인 아스린님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