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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7 ~ 그 바람은 바람으로 ~ 1편
 "하아... 하아..."

 그녀로선 이 숲은 처음이었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너무나 울창한 숲이었고, 식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하는 이기적인 생물이 되어있었다. 숲은 다리를 거는 나무들, 향을 독으로 바꿔 뿜는 꽃들 투성이라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한 손으로 가지를 쳐내며 나아가야 하는, 평소에 보던 식물의 이미지와는 다른 상태였다. 그런 숲에 어째서 오게 되었는고 하니 평소에 약초를 캐다 주던 주민이 삼일 전 요괴의 습격을 받아 이승을 하직했기 때문이다.

 "큭, 이걸로도 안 된다면... 아니, 아직이야!"

 이승을 하직, 이라는 부분이 소녀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어쨌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건 사실이다. 마을에선 그 약초꾼 대신에 일할사람을 찾거나 또는 자연히 만들어지겠지만 손 놓고 기다리기엔 그녀의 삶이 워낙 빡빡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여기, 마법의 숲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푸하, 모르겠다. 이제 될 대로 되라."

 그런 숲에 들어와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집 앞에서 우연히 엿보게 되어버린 소녀 하나가 미친듯이 영력을 소비하더니, 저렇게 대자로 뻗어버리는 것이다.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단순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저 서니 블론드의 소녀를.

 "아- 아, 어째서 12연속으로 쓸 수 없는걸까. 마스터스파크."

 간단하잖아, 이 세계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간단하잖아, 네 노력이 무의미한 노력이니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녀로선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처음부터 저 소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되고 자신은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호기심을 억누르고 돌아섰다.

 우지끈.

 세상의 신은 공평하다. 주인공이 조용히 지나가려고 맘 먹고 돌아서면 꼭 발치에 무언가를 놓아둔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든 이 법칙은 성립한다고 머피가 말했다. 그거야 어찌되었든 저 쪽 소녀는 아까 펑펑 쏴대던 물건을 이 쪽으로 향하곤 말했다.

 "어이 거기! 누구냐! 어떤놈이 이 키리사메 마리사님의 특훈을 엿보고 있던거냐! 썩 나와! 다섯 셀 동안 나오지 않으면 쏜다! 하나, 둘, 다섯!"

 야 이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녀는 온몸을 날려 오른쪽으로 피했다. 아니,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소맷부리에서 부적을 꺼내 왼쪽으로 뿌렸다. 정 중앙은 아니지만 퍼져나온 새하얀 빛무리가 부적에 부딪혀 푸른 빛으로 산화하며 막히듯 사라졌다.
 아까 본 바로는 그녀는 저 기술을 연속적으로 쓸 수 없다. 최소한 10초, 아니 상황에 대비해서 7초 정도의 여유는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틀어 대지를 박차 나무를 차고,
 숲 위로 날아올랐다.

 "하아, 정말 위험했어."

 그렇게 말하곤, 유유자적히 폐허가 된 숲에서 신사로 향했다. 오늘의 채집은 종료. 양은 부족하지만 이 이상 저 숲에서 헤매고 있기에도 꺼림칙했다.

 하늘은 언제나 기분좋다. 바람이 뺨을 간질이고(때로 과속하면 칼질이 되지만), 구름이 아름답고(안에 들어가보면 시야방해일 뿐이지만), 비는 시원하다(빨래를 널면 반드시 비가 온다). 이런 기분좋은 하늘이지만 눈만큼은 절대 사양이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눈을 싫어하는 이유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어머니가 말했던것이다, 눈이 많이 쌓이면 신사가 무너진다고. 그녀가 보기에도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무너질 것 같아 보이니 이제 귀찮음을 넘어 생존의 차원인 것이다.
 일단 이 신사는 토리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토리이를 넘어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녀가 무녀를 하고있지만 믿는 신도 없을 뿐더러 그런 예의를 차리는 건 둘째치고라도 여기에 둘러둔 결계가 그녀를 해하진 않는다. 뭐 그런걸 제쳐두더라도 사실 수동이라 직접 침입자를 막아야 하는 시스템이라서 라고 헛생각을 계속해본다. 웃차, 착지. 타닥, 하고 그녀의 신발과 지면이 소리를 울린다.
 한 마디로, 그 결계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어차피 저걸 넘어올 수준급 요괴라면 직접 나서야하고, 아니면 애초에 신사라는데에 그녀 한 명 잡아먹자고 올 놈들도 아니라는거다. 매일같이 빗자루질하고 쓸고 닦는거야 그녀의 집이니까 하는거고 그러고보면 자신은 무녀라는 자각이 너무 없이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게 다 그녀의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넌 살아있으면 그걸로 이 세계에 도움이 된단다. 알겠니?



 아니 보통 알겠냐고. 다섯살 꼬맹이었던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한다고 알겠냐고. 그치만 그녀로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가 무녀로서 일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그렇다고 일일히 마을에 무슨 일이 있냐며 돌아다니기엔 너무나도 멀다. 날아다닌다곤 해도 힘든 일인 것이다, 비행은.
 주절주절 말이 많았는데 그래서 뭔 이야기를 하려고 했냐면 난 이제부터 잘거라는 이야기다.
 하쿠레이 레이무, 올해로 9세. 취미는 차 마시기, 특기는 차 마시면서 요괴 퇴치.
 저 커다란 별에 바라는 건,
 나의-



 그치만 내 바람따위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전력으로 정말 고생고생해서 올라오고 있다는게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탁탁탁 계단을 밟는 발걸음은 아직 밸런스가 있지만 호흡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걸로 봐선 정말 호흡이 거친 요괴이거나 근성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인간일거다. 보통 이 경우엔 후자이고, 호흡소리까지 듣는건 어디까지나 하쿠레이 무녀의 신기한 열 세가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걸 봐서는, 거기다 저 어린 발소리로 봐선 마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쓰잘데없는 일일 것이다. 어지간한 일이면 아이가 여기까지 뜀박질해가며 숨 넘겨가며 뛰어 올 리는 없겠지, 어른들이 적당히 걸어서 올것이다. 사실 높아서 아무도 안 오지만.
 다리를 크게 올렸다가 앞으로 힘차게 내리며 그 반동으로 몸을 일으켜 툇마루 밖으로 나왔다. 갓 토리이를 통과한 소녀가 내 앞에 쓰러지듯 달려왔다. 아니, 아주 쓰러질 기세로 멈췄다.

 "너, 너 이녀... 크엑, 우웁..."

 녀석은 헉헉대던 호흡이 멈추자 본격적으로 속에서 뭔가 치고올라왔는지 우엑우엑 한바탕 하기 시작했고, 그걸 태연히 볼 만큼 내 비위가 좋지는 않기 때문에 나로썬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나까지 점심으로 먹은 걸 확인하고 싶지는 않고 말이지. 그보다 부탁이니 저건 좀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냅두면 이상한 냄새도 나고 말이지.
 상대방의 정체는 아까 그 금발에 까만 녀석이다. 이 추운날에 내가 너 하나 피하겠다고 덜덜 떨면서 하늘로 날아왔는데 그걸 이만한 속도로 따라왔다는 건 정말 대단하고도 대단하고 한 번 더 대단해. 칭찬도 해줄 수 있어. 그치만 그건 사실 내가 천천히 날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본심을 내면 턱도 없을거야. 그렇게 자만해보며 왜 저렇게 죽을동살동 날 쫓아온걸까 추측해본다.

 우선 첫 번째로 떠오른 건, 뭔가 부서졌으니까 보상해줘
 그런 녀석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친구가 되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아까의 태도를 보면, 내 모습을 엿본녀석따위 죽어

 어느것도 가능해보이고 또한 전부 다 헛소리같으니 이 어찌 신기하지 아니한가.
 듣기 거북한 소리가 사그라드는것과 함께 내 헛생각도 사그라들었다.
 최대한 바닥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녀석에게 시선을 줘 보니 입주변을 손등으로 닦고 있다. 아무래도 조금은 진정된 것 같다.

 "야, 너-"

 "너 말야, 웁, 우엑-"

 아 이 녀석. 또 시작했네. 뭔가 말하려던 녀석은 다시 입에서 줄줄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거 한동안은 어떻게 될 것 같지도 않고 내버려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난 안에서 차라도 한 잔 타면서 기다리기로 하곤 말을 남겼다.

 "끝나면 들어와. 그건 다 치우고 말야. 빗자루는 저쪽"

 힐끗 빗자루가 있는 쪽을 가리키고 난 문을 열었다.

 "잠깐, 웁, 우웨에엑"

 말을 이으려는 녀석을 무시하고 우선 방으로 돌아왔다. 시야에 들어오는 내 방은 워낙에 물건을 놔두는것도 귀찮아서 하나둘 버리다보니 시야에 보이는 물건도 얼마 없는게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치만 저런 꼬맹이가 뭘 알 것 같지도 않으니 괜찮아. 그보다 차를 별로 좋아할 것 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예의이고 하니까 주섬주섬 한 잔 챙겨주는게 좋겠지. 물론 과자에 손이 더 많이 갈테니 과자는 조금만 내 주자.
 그렇게 한 쟁반 담아 혼자서 홀짝, 하곤 눈을 떴더니 어느샌가 방 안으로 녀석이 들어왔다.

 "하아... 하아..."

 녀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날 따라온거니까 전력질주 수준이었을텐데 그렇게 힘겹게 오다보니 보이는게 이 신사 계단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다. 부축이라도 해 줘야 할까?

 "어이, 너 말야. 어떻게 되 먹은 녀석이야?"

 죽을 것 같더니 금세 기세등등해져선 자기집도 아닌데 저렇게 어깨를 떡 벌리고 서면 위압감이라도 느낄 것 같아?

 "신기한 인간이 왔네. 너야말로 뭔데 그렇게 시체같은 몰골로 여기까지 오는거야?"

 거기다 이 타이밍이라면 절대 치우고 들어온 것 같진 않으니까 우선 그 이야기를 꺼낼 걸 그랬나.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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