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톡, 톡, 톡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추어 창문을 두드리면, 창문 저 편에서 두드리는 빗방울들도 같이 리듬을 맞춘다.
거기서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히면, 떨어지는 빗방울 모두가 음악의 리듬을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 리듬 뒤에 이어지는 가사는, 어떤 가수의 노래가사.
"그 예쁜 눈동자로 날 바라보지 말아줘,"
그 아이를 떠올린다.
룸메이트가 틀어놓은, 평범한 팝 음악.
"그러면서 무방비하게 웃지도 말아줘."
그 아이의 미소를 떠올린다.
새카만 눈동자와, 작고 귀여운 입술.
"어느 틈엔가 꿈에서도……."
떠오른 미소가, 벙글벙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새카만 머리카락 탓인지 얼굴이 좀 작아 보인다.
그렇지만 어째 이건 좀 무섭다.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짜증나니까 얼굴 좀 저리 치워."
미소를 떠올리고 자시고, 노래를 틀어놓곤 가사에 맞추어 이쪽으로 슬금슬금 와서 얼굴을 들이대며 히죽 웃는 아야 탓에 노래에 집중할 수 없다.
"왜요? 꿈에 나올 만큼 아름다운 얼굴인가요?"
"악몽이겠지."
이 녀석은 내 기숙사 동거인, 샤메이마루 아야. 본인도 자신이 예쁘다고 말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단 예쁜 얼굴이다. 어쨌든 학기도 시작되었고, 별 생각 없이 친하던 후배들 중에서 제일 멀쩡해 보이고 경제능력이 있는데다가 그럭저럭 부려먹을 만한 아이를 룸메이트 삼아 기숙사에 함께 들어왔다. 돈도 굳히고, 나도 아야도 제법 요리를 잘 하는 편인데다 둘 다 소식이어서 꽤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 이 녀석을 선택한 건 좋았는데 그것과는 다른 부분에서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녀석, 대책 없이 자기 자신이 잘났다. 거기다 묘하게 행동이 사차원이어서, 상대하면 피곤해진다.
"저도 이 노래 알아요, 잔다르크의…… 뭐더라, 다이아몬드 체리?"
시선을 위로 향하고 정말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허공에서 손가락이 맴돌더니, 내게 내놓은 대답.
그 대답에 난 풋 하고 웃곤, 그녀의 얼떨한 얼굴에 대답해줬다.
"뜻 자체는 같을 테지만 아냐. 다이아몬드 버진이야."
체리는 미국 속어로 처녀라는 뜻이지. 나는 손에 든 부채를 팔락팔락 부쳤다.
"그렇군요. 다이아몬드 버진이라……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단단한……"
"덥네. 거기다 비까지 와. 짜증나."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아야를 애써 무시한 채, 18번 이야깃거리인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더운 건 사실이었다. 한여름이고, 창문을 열려고 해도 비가 들이쳐서 곤란하다. 전자제품에 책투성이가 된 기숙사는 도저히 물을 들여놓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놓아둔 가구 대부분이 목조여서 비를 맞으면 더욱 더 곤란해진다.
"좋게 생각하세요. 아, 전 괜찮으니까 정 더우면 벗든가요."
"이미 더 벗을 것도 없는데?"
민소매 셔츠 한 장에 반바지 한 장.
방에 틀어놓은 선풍기 한 대로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아까 셔츠 안의 브라마저 벗어던진 상태인데도 덥다.
물론 이것마저 벗어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룸메이트도 신경이 쓰이고 더군다나 쓸데없이 큰 이 창문이 불안하다.
창문 바로 앞에 남자화장실이 딱 붙어있는 대단한 정경은 아니지만, 요즘엔 멀리서 망원경으로도 본다니까 안심할 순 없다.
또 이 건물은 여자 기숙사. 노림수가 있을만한 장소이고, 여하튼 여건이 좋지 않다.
룸메이트가 신경 쓰이는 건 어떻게 보면 작은 고민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남아있는 그 두 장을."
"눈이 위험해 너. 시선 치워."
작은 고민이었으면 한다.
아야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아니, 하던 작업을 마저 해 줬으면 정말 고맙겠는데.
"그러니까 보여주세요, 그 옷 아래의 낙원을!"
"닥쳐!"
작은 고민만은 아닌 것 같다.
빠악,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내 발에 아야의 머리가 걸린다. 아야의 손이 스멀스멀 내 몸으로 다가온 탓에 돌려차기를 먹여버렸다.
의도하고 걷어찬 건 아니다. 정말로.
아, 정말 위험했다.
"속…… 속옷은 살색……"
넘어진 아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기에 입 근처를 밟아버렸다.
속옷이 살색인 게 아니고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한 번 더 밟았다.
그 때, 딩동 하고 현관의 벨이 울렸다. 아야가 풍신소녀 주제가 8비트버전을 재생하도록 세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내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현관 벨이다. 대체 동네 쪽팔리게 그게 무슨 망신살이야.
"택배입니다!"
건장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득 쌀 배달 왔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한 손에 휴대폰을 꼭 쥐게 되는 건 분명 기분 탓 일거다.
"누가 시킨 물건이지?"
내 말에, 내 발 밑에 깔려있던 아야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아, 그거 제 거예요. 물건 좀 받아주시겠어요? 라고 하고 싶지만, 이런 개방적인 레이무씨는 저 혼자 보고 싶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탕탕탕,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택배원과 뭔가 혼자 말하더니 잽싸게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는 아야.
끼익,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금 건장한 택배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샤메이마루 아야 씨 맞으시죠? 여기 물건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용무만 마치고 더 이상의 말없이 돌아가는 택배기사와, 그런 택배기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도 탕하고 문을 닫는 매정한 아야.
현대 사회의 흉흉함과 가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장면이다.
어쨌든 112를 부를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뭘 그리 빤히 보세요?"
철컥하고 문을 잠금으로써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준 아야가 돌아오며 말했다.
"네가 들고 있는 게 뭔지 궁금해서. 위험한 건 아닐까- 하고."
사실 물건이 아무리 위험해봐야 아까 그 택배 아저씨만큼 두렵지는 않겠지만.
성큼성큼 다가온 아야는 내게 그 포장을 내밀었다.
"그럼 레이무씨가 뜯어주실래요? 쾅하고 터지면 큰일 나잖아요. 제 얼굴이."
쾅하고 터지면 네 얼굴만 큰일 나는 건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며 난 물건을 받아들었지만 아야에게 다시 내밀었다.
"어차피 나한테 온 것도 아닌데 네가 직접 풀어. 거기다 시킨 사람도 너잖아? 그런 위험한 건 열어보는 거 아냐."
"제가 시켰다고 위험할 건 없잖아요. 거 너무하네."
새된 목소리로 툴툴거리며 포장을 뜯는다.
부석부석 그녀가 연 박스 안에서 보인 건, 모 게임기의 타이틀.
"아아, 그건!"
"어, 아세요? 이 게임."
"아니,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무심결에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빼앗아 안에 있는 펭귄 인형을 꺼내들었다.
펭귄이라고 할까, 이 세계에선 '프리니' '10원짜리 목숨' 등으로 불리는 그것은, 예상외로 귀여운 모 게임의 마스코트이다.
"이거! 그래 이거!"
내가 양 팔로 인형을 번쩍 안아들자, 상자를 받고 있던 아야가 말했다.
"네, 디X가X아 예약한정판 프리니 인형인데요."
"점심 즈음에 일어나서야 XXX이아 한정판 예약이 밤 12시를 기점으로 시작해 내가 잠들기도 전에 끝났었다는 걸 알고 내가 그렇게 목 놓아 울고 있는 걸 구경만 한 주제에! 자기건 나 몰래 주문했다 이거지!"
"전 레이무씨가 그 게임에 관심 있는 줄 몰랐거든요. 평범한 폐인양성 게임이잖아요."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야는 오히려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깨를 으쓱, 하는 그 동작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어서인지 화가 났다. 그렇지만 잘못은 내 잘못. 아야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으아아아아아~ 너무하네, 이기적이야, 무신경해, 룸메이트로서 실격이야!"
라고 할 것 같았나? 나는 한 손으로 인형을 든 채 아야가 당황하거나 곤란해할만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야의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분이 업 된 것 같아 더욱 더 분해졌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사고를 식혔다.
"흠……
그러니까 이 인형은 내가 압수하겠어."
그렇게 말하곤 양 팔로 프리니를 꼭 끌어안고 뺨에 비볐다.
어떠냐, 내가 이겼지! 그렇게 생각하곤 인형 틈으로 아야의 얼굴을 흘끗 보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별 불만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야 원……"
아니, 불만과는 다른 감정이 눈동자에 섞여있는 것 같다.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뭐야, 그 눈빛."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 내가 쏘아보자 그녀는 헤실 웃었다.
"아뇨, 역시 제 룸메이트는 꽤나 귀엽다고 생각해서요."
"……"
난 무의식적으로 인형에서 얼굴을 떼고, 흠흠 하며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런 말 한다고 해서 돌려주진 않을 거니까, 흥."
"알았어요, 인형은 레이무 씨 드릴게요."
"진짜?"
"진짜라니까요."
선선히 그렇게 말한 아야는 게임 타이틀을 박스에서 꺼내들었다.
비닐을 벗기고, 열고, 첫 플레이임에도 아무 감흥 없는 표정으로 PSP에 UMD를 삽입한다.
이미 하던 일은 손을 놓아버린 것 같다.
"처음을 지켜줄 줄 모르는 비매너 플레이어네. 그래서야 게임을 즐기는 것 같지 않잖아?"
"게임의 재미는 게임 자체에서 찾아야지, 이런 부가적인 곳에 열중하다 보면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요."
"특전으로 이런 인형까지 얻어 오시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니 설득력 없네요. 베에."
아야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눈에 손을 대곤, 눈에 있던 렌즈를 빼 내어 옆에 있던 렌즈 집에 렌즈를 넣었다.
한손으로 렌즈를 빼는 저 기술은 몇 번 봤지만 정말 신기에 가까웠다.
"헤에, 정말 볼 때 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너 렌즈 빼는 것 말이야. 어떻게 왼 손 한 손으로 렌즈를 뺄 수 있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아야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듯 고민하다가, 이내 나를 보곤 말했다.
"뭐 레이무씨는 눈이 충분히 좋으니까 어떻게 빼는지를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이건 그냥 능숙해진 것뿐이니까요.
다리가 없는 사람이 팔로 뛰어다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론 불편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하는 설명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그렇게 말한 아야는 렌즈집 뚜껑을 대충 닫은 뒤, 왼손으로 안경집을 열었다.
안경집에서 한 손으로 안경을 꺼내고, 코 위에 걸친 뒤 능숙한 솜씨로 한 손으로 안경알을 닦는다.
정말 신기하다.
"그렇게 해서 게임에 집중이 돼?"
"게임은 결국 단순한 것이니까요. 저는 그저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 선제 플레이를 한다고 할까요?
아래층에 있는 쿠로코……가 아니라 하타테와 함께 신문을 내지만 그녀는 주로 연예 분야고, 전 이 쪽이라 서요. 각자의 취미라는 거죠."
소리로 보아 게임은 이미 가동되고 있는지, UMD가 돌아가는 소리가 위잉-덜컥, 위잉-덜컥하고 울렸다.
난 프리니를 품에 안으며 아야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야, 너 눈 많이 안 좋아?"
내 말에 처음으로 고개를 돌린 아야의 얼굴엔 안경이 걸쳐져 있다.
그 얼굴은 어쩐지 나보다 한참은 연상인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원숙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보다, 살짝…….
살짝, 매력적이다.
"아주 많이 안 좋은 건 아닙니다. 안경이 없어도 평범하게 살아갈 순 있지만, 시력을 보정해서 남들보다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기자로썬 사소한 것도, 커다란 일도, 가까운 곳도, 먼 산과 바다도 어디든지 기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자제품을 사용할 때엔 되도록이면 렌즈를 사용하지 않아서요. 안경이 전자파를 막아줄 것 같은, 그냥 제 나름의 미신입니다."
아야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난 아야가 저렇게 안경을 끼운 채 게임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혀를 물듯이 내밀곤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에 들어갈 기세로 PSP를 조작하던 아야. 때마침 하던 게임이 니X포 스X드라는 레이싱게임이어서, 몸까지 좌우로 비틀어가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멀쩡하게 생겨선 그러고 있던 모습까지 떠올린 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일부러 신음을 흘렸다.
"흐음……"
생각을 거둔 뒤, 아야의 옆얼굴을 보다가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저기 아야."
"네?"
"게임, 재밌어?"
타닥타닥 버튼 누르는 소리, 액션게임이나 격투게임쪽은 아닌지 템포가 느리다.
나는 나도 모르게 꺼내려던 말을 집어넣고 엉뚱한 말을 꺼내어버렸다.
바보인가, 난.
"예…… 뭐. 나중에 레이무씨도 빌려드릴까요?
이 게임 자체는 아시죠? 그러니까 프리니를 알고 계신 거겠지요."
"아…… 응."
여전히 게임기에 시선을 집중한 채 대답하는 아야.
물어보려면 오히려 지금일까.
"저기 아야."
"아까도 부르시지 않았나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그녀는 PSP를 탁, 소리가 나게 책상 위에 얹어두고 이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정면에서 아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왜인지 조금 부끄러워서, 이번엔 내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내 품 안에는, 프리니가 꼼지락대고 있었다.
안 돼, 게임에 집중했을 때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러면 한층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게 말이야, 그 안경. 있잖아."
"……네."
답답하다는 듯, 뜸을 들이며 대답하는 아야.
난 아야 몰래 심호흡을 하고 아야에게 말했다.
"나, 아야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뭐랄까. 괜찮다고 생각해. 아니 평소의 얼굴이 이상하다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네?"
무언가 얼이 빠진 그녀의 대답에 난 자신을 잃었다.
아냐, 라고 얼버무리려던 찰나, 난 프리니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래, 10원짜리 프리니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내가 여기서 주저앉아서야, 난 프리니만도 못한 주인공이 된다.
어딘가의 꼬맹이 마왕 꼴이 나기 전에, 하려던 말은 마저 해야 한다.
내가 고개를 들고, 고개를 숙이려다 다시 내 얼굴을 주시하는 아야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상냥한 그 눈동자를.
"그러니까, 평소 얼굴도 예쁘지만 안경을 쓰면 멋있어 보인다구! 평소에도 내 앞에선 안경을 쓰고 있어줬으면 한다는……거야."
아야는 얼빠진 표정에서 한층 더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거기다 안경까지 흘러내려, 90년대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가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으……"
그렇게 내 짧은 신음이 방안에 울리고.
이내 정적.
정적.
그렇지만 아야가 그 정적을 깨고 내게 말했다.
"뭐 제가 한 얼굴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이해했어요. 전 여자이지만, 그래요 도구를 써서 살짝 중성미가 풍겼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보다 이거 놀랐는데요, 레이무씨가 그런 취향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여하튼 부끄러우실 텐데 힘들게 말씀을 꺼내셨으니 그 말은 받아들여서 기숙사 내부, 여기 방 안에선 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안경을 끼우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학교라던가, 야외에서까지 안경을 끼우라고 강요하시면 조금 곤란합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제 생활이고 자유이며 취향이기 때문에, 레이무씨가 그 점은 충분히 존중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설령 저희가 뭐랄까- 일종의 연인이나 커플 사이라고 한대도 그 부분을 속박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서로간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구절절 말이 많아지고,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던 눈이 천장 한 구석에 있는 거미줄을 뚫어지게 보고 있고, 책상 위의 PSP 바로 옆을 타닥타닥 빠른 속도로 두드리고 있는 아야는 솔직히 내가 보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난 그런 아야의 말을 끊기로 했다.
"아 됐어, 해 준다면 그걸로 고맙고, 하던 게임마저 해. 난 프리니랑 놀 거야."
내가 홱 돌아누워 벽을 보자, 어딘가 목소리에서 기운이 빠진 아야가 내 등에 대고 이야기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앨리스의 나체가 아주 잠깐 나오니 그 부분 주의하며 모어레스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디쯤에서 나오는지는 감으로 알 수 있습니다.
번역 후기
우선 다른 팀에 번역을 하고 있으면서 블로그에 올리겠답시고 식자질까지 해서 처 올리는 이기적인 짓을 해서 R모팀에 쪼끔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걸 들고가서 자기가 번역한 것 마냥 희희낙락 공유할 병신들에게도 발로 번역해서 쪼끔미안합니다.
또 여기까지 찾아와서 뭐야 이 엿같은 로딩은! 하고 모어레스를 클릭했는데 효과음도 번역 하나도 안 한 재수없는 번역이라 보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어쨌든, 끝났네요.
재밌게 보셨나요!?
마앨팥인줄 아셨죠!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번역이었습니다. 그야 효과음이 저러니까 당연하지.
감동적이고 훈훈한 렝렘... 은 아니고...
...쓰기 귀찮네요. 자러갈랍니다.
스물스물,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레이무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나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지금 자신이 마시고 있는 차가 적당히 우러나지 않아서 살짝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저런게 다가온다고 해도 거기에 신경을 쏟을 이유가 없다.
어째서 차 맛이 이렇게 구린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은 품질을 보증하고 있었고 오늘도 그랬어야 할 터인데.
스물스물, 그렇게 다가오는 건 누구인가.
이 이상 신경쓰지 않으면 기분이 상해있든 어떻든 자신에게 불안요소가 될 것 같았기에 레이무는 그 쪽을 향했다. 유카리인가? 자신의 푹신한 가슴에 안기라며 또 끌어안아서 숨막히게 할 셈인가? 숨막혀 죽지야 않겠지만 그건 싫다. 아니 그보다 유카리라면 스믈스믈 다가오는 짓을 할 리가.
있겠지. 확신범이다. 날 놀래켜주려고 하든, 내가 긴장하게 만들든 그녀라면 이런 변태같은 취미가 있을 법 하다. 그치만 나로선 이건 좀 곤란하고, 어쨌든 거의 한두걸음 수준 거리에 들어온 모양이라 레이무는 일단 퇴치하기로 했다. 요괴 전용, 모르긴 몰라도 레밀리아까진 한 방에 천정까지 날아갔다 바닥에 돌아올 수 있는 지뢰형 부적. 그걸 슬그머니 자신의 발등 아래에 깔았다.
홀짝, 차를 마신다.
스믈스믈, 그녀가 다가온다.
홀짝, 차가 넘어간다.
스멀스멀, 소름이 돋을만큼 소리가 작아졌다.
홀짝, 이제 다 마셨다. 하아.
"레이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이무는 몸을 뒤로 뺐다, 회심의 미소를 마음 속으로 지으며 그녀를 돌려다봤다, 그리고 그 레이무의 표정은 이내 황당함과 당황으로 변했다.
"사, 사쿠야!? 잠깐만, 꺄악!"
목을 조르려는 것 처럼 팔을 레이무의 목으로 와락하고 끌어안은 그 자세는 레이무가 몸을 돌린 탓에 사쿠야가 레이무를 끌어안고 레이무는 사쿠야에게 안긴 채 받듯이, 그러니까 레이무의 두 다리 사이에 사쿠야가 파고 든 굉장히 미묘하고 수치스러운 상상이 전개될 수 있지만 둘 다 여자니까 일단은 괜찮지 않은 자세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푹신하지 않은 가슴에 닿는 사쿠야의 가슴은 푹신했다.
조금 분했다.
"레이무~ 레이무~"
사쿠야가 레이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벼대는 통에 레이무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아둥바둥 사쿠야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치만, 사쿠야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무에게 안겨왔다.
이 녀석, 메이린에게서 이상한 게 옮은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이 바보 메이드!"
필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며 물어보자 사쿠야는 레이무의 목에 양 팔을 감은 채 얼굴을 떼고 말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인간이 그리워서 말야. 메이린도 아가씨도, 둘 다 오늘은 꼴도보기싫어."
"하아... 그러세요. 그럼 마법의 숲에 가서 멍청한 마리사라도 괴롭히면 될 걸, 왜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오는거야."
레이무와 눈을 맞춘 사쿠야의 표정이 너무나 밝아 레이무는 뭐라 형용하지 못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녀석, 뭘 잘못 먹은게 틀림없어. 아니, 전부터 발작적으로 자신에게 화풀이는 해 왔지만 이걸 화풀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두려웠다. 차라리 탄막을 전개하든, 나이프를 들이밀든 하는 쪽이 좀 더 상대하기 편하다.
"그런 땅꼬맹이따위에 관심있을까봐? 난 그저 얌전한 레이무가 너무 좋아~ 이렇게 거부하는 모습이 특히 더 맘이 편하다니까. 거기다 마리사는 집에 있는 날이 더 드물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파츄리라던가도 있잖아? 왜 나냔말야."
"그야..."
다시금 안겨들며 사쿠야가 말했다.
"레이무는 왠지 안심이 되는걸. 그러니까 조금만 이러고 있어주라~ 응?"
어휴 정말, 유카리도 아니고 이 녀석 왜 이래.
잠시동안 몸의 자유를 포기한 레이무는 사쿠야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치만, 이내 그만두었다. 귀찮아서 그만둔 건, 절대 아니다.
뭐, 이것도 이것대로 좋나.
찻맛이 구려서 쓸쓸하기도 했고.
--으음. 그럼 내가 향림당을 환상향 촤고의 도구점으로 만들어주지! ......앞으로 말야!
린노스케는 후훗 하고 미소지었다. 서방이 되라고도 신부가 되겠다고도 딱 잘라 말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그 또래다워서 귀여웠다.
“알았어, 마리사. 10년 뒤에도 같은 소릴 한다면 그땐 생각해보지.”
--......있잖아
“왜?”
--.................린노스케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키리사메 가문 첫째딸이라고 생각한다만.”
--그게 아니라! .....그, 여자로써, 라던가.
“아. 그 말이었군 마리사. 난--”
---
--
-
‘조금 이상한 보통 여자아이’
“늦네.”
“언제나 그렇잖아.”
나, 우사미 렌코와 메어리베리 한(발음이 힘들어서 평소엔 메리라고 부르고 있다)은, 찻집에서 어떤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안절부절 못 하며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다. 인생은 여유를 갖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법.
별로 나 자신이 자주 늦으니까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니다.
“밖은 더워보이는걸.”
“응.”
나와 메리는 냉방 좋은 찻집 안에서, 폭염을 방불케 하는 햇볕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기-다렸지~!”
십 이분 삼십 팔초 늦게, 녀석은 나타났다. 윗도리 가슴께를 펄럭여 땀에 푹 절은 상반신에 냉풍을 불어넣고 있다. 숨도 가빠보이고, 뛰어 온 거겠지.
웨이트리스에게 몇 번이고 주문을 되풀이한다. 화식파인 모양이다.
키리사메 마리사는 오늘도 계절에 어긋나는 흑백의 의상이다. 기껏 흰 블라우스를 입었건만 어째서 그 위에 검은 멜빵치마를 덧입는걸까. 거기다,
“언제 봐도 부자연스러운데, 그 서양인형이랑 태극모양 펜던트 조합은.”
마리사는 허리에 매달린 인형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왼손으로 팬던트 맨 위의 구형 태극도를 쥐었다.
“음양옥과 상해인형. 동서절충이라구.”
“아니, 그런 이유라도 이상해.”
애시당초 상해라면 어느쪽이라도 동양이잖아. 일중절충이다. 발음이 구려.
“마리사는 센스가 나쁜 것 뿐인데말야.”
“봐, 메리도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그야 오랫동안 부부로 지내면 의견도 알아서 일치하게 마련이지.”
“ “부부 아냐!” ”
아......
“봐, 호흡 척척이네.”
어째서 이런 때에만 싱크로하는거지, 정말.
“아, 아니라구! 지금 내 대학에선 그런거 신경 안 쓰니까!”
“레, 렌코......”
메리가 꾹하고 내 소매를 당긴다.
“뭐야, 메리!”
“다른 손님들이 보고있다구......”
메리의 시선에 이끌려 가게 안을 둘려보자 손님들이란 손님들이 죄 우리들이 하는 짓을 보고있다.
갑자기 소리지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야 주목받겠지, 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곤 앗차, 했다.
여자초등학생 둘이서 “수라장.......” “삼각관계......” 라고 중얼대는게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어디에 남자가 있냐. 말투가 남자인 녀석은 있지만.
“뭐- 그래도, 사실 좀 오래 됐잖아 너희 둘.”
“마리사가 짧은거야.”
“그런거야.”
마리사는 한 달 정도 전 우리들이 회의실을 빌려 비봉구락부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입부희망자라구” 라고 말하며 쳐들어왔다.
나와 메리는 완전히 벙쪄있었다. 어쨌든 “어째서 희망한거야” 하는 걸 물었던 것 같다.
천연 금발 소녀는 흑백 펜던트를 꾹 쥐며 이렇게 말했다.
“신사돌기에 흥미가 있으니까.”
“마리사는 비봉구락부를 뭐라고 생각한걸까.”
“전국 흉가 여행서클?”
“틀려!”
“.......그치만, 아주 부정은 못 하겠네. 쉬는 날엔 실제로 결계가 흐트러진 곳을 찾아서 여행하곤 하니까.”
“편리한 능력이구만.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구.”
마리사는 메리의 능력을 알고있다. 내 능력도 알고있다. 우리가 알려준거였다.
애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신참에게 아무 이유 없이 알려줄만큼 우리가 경계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이건 그녀와 우리들 사이의 정보를 등가교환이다.
“마리사가 가진 능력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런가? 내 경우엔 라이트한 SF 미소녀물 주인공정도밖에 안 된다구.”
“스스로 미소녀라고 말하는 부분이 참 도도한걸.”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마리사는 꽤나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오히려 안 좋다.
“초능력소녀, 라는거네. 지금은 얼마나 찾아낸거야?”
마리사는 놀랄 만큼 다방면에 걸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그 때 가지고있던 모든 능력을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마리사가 대답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해서 범위를 한정해줬다.
“일단 우선은- 날 수 있었지”
“고작 몇 미리 떠오르는 정도지만.”
“그리고, 염동력”
“상해를 춤추게 하는 정도밖엔 안 된다구.”
“물건을 만지면 이름과 용도를 바로 알 수 있는 능력도 있었지.”
“휴대전화로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까 의미는 없지만.”
“아 진짜! 왜 그렇게 부정적인건데!”
그 대부분이 인간의 지식을 능가했다.....는 건 아니고, 마술 정도밖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리사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재다능은 눈길을 끌 만 하다.
그녀와 한동안 지내보고 생각하는데, 운명이나 시공간을 조작하는 능력도 가지고있는건 아닐까 싶다.
“알았어, 진정해 렌코. 마리사도 그렇게 칙칙해지지 말고. 그렇게 재능이 많으니까 단련하면 빛나게 될거야.”
“그렇군. 실제로 화속성 마법은 그 동안 연습해서 꽤나 화력도 되고.”
“에?”
화속성 마법이라니 그런 건 처음 듣는다. 그러고보니 마법 매니아였지 이 녀석.
“아마 렌코네 집 정도는 태워없앨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우리 집으로 예를 드는거야.“
웨이트리스가 왔다.
“양갱 세트와 일본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마워요-.”
마리사는 기쁜 표정으로 쟁반을 자기 자리에 놓고 차를 젓는다.
“후우, 차가 맛있네.”
“.......그래서, 마법 이야기말인데....”
“아아, 어떻게 책을 읽다가 적당히 연습했더니, 엄청 큰 불을 쓸 수 있게 됐어. 이상.”
사귄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마리사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뭐라도 말하지만 자신에게 ‘실로 중요한 것’은 도저히 표면에 드러내질 않는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성격이다.
그건 고집을 부리거나 약한 소리를 하는게 아니라, 마리사 자신만의 미의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법을 아는 것, 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실로 중요한 것’인 거겠지.
“흐-응.”
“뭐야, 그 불만스런 얼굴은.”
“아무것도 아냐.”
그치만 난 마리사의 그런 부분을 솔직히 좋아할 수가 없다.
노력을 했으면 그걸 어필하면 좋을텐데.
적당히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주장하는 건 분명 그 사람을 위한 것일 것이다.
단순히 없던 일로 해 버려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
“레, 렌코, 마리사. 조용히 있지 말고 뭔가 말해봐.....”
“....내 이 능력은 내가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던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리사가 먼저 말했다.
“도구에 의지하고 있다는거야?”
마리사가 능력을 발동할 땐 특정한 도구를 손에 쥔다.
하늘을 날 땐 태극도 펜던트. 마법을 쓸 땐 조그마한 돌. 인형은 가느다란 실을 엮어 손에 쥐면, 실을 조작하지 않아도 조작할 수 있다.
도구가 능력을 발동하는 원인이라는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만.
“우리들이 도구를 빌려도 능력은 쓸 수 없었잖아.”
“.....도구는 계기라고 생각해. 잘은 모르겠지만.”
마리사는 고개를 숙여 목에 건 펜던트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계 저편의, 별세계에서 기인한거라던가.”
메리가 입을 열고, 난 어떤 일을 생각해냈다.
“그래, 그거야.”
“응?”
“어떻게 된 거야, 렌코.”
“경계를 찾으러 갈 예정이었잖아!”
“아- 그래그래. 그러려고 오늘 모였었지.”
우리들은 오늘 밤, 메리가 틈새를 느꼈던 어떤 장소에 결계를 찾으러 간다.
“잘먹었다. 역시 여기 양갱은 맛있어.”
“그럼 슬슬 나가볼까.”
“밖은 아직도 더워보이네.....”
나와 메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사도 남은 차를 마시곤 일어난다.
“이야- 그래도 미안한데. 지금까지 부부 둘이서 즐거웠는데, 그걸 방해해서.”
“ “부부 아니라니까!!” ”
으아-악! 그러니까 어째서 딱 맞냐고!
“마리사, 너 정말 적당히.....”
“레, 렌코......”
메리가 꾸욱, 하고 내 소매를 잡아끈다.
“왜 그래, 메리!!”
“손님들 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여길 보고있어.....”
직원들이 걱정된다는 듯 이 쪽을 보고있다.
아까 그 여자애들이 “역시나....” “저 얌전해보이는 애를 놓고 싸우는가봐.......” “분명 흑백은 저 사람 예전 연인인데......” 라고 중얼대고 있다. 멋대로 이야기를 키우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그리고 남자는 없잖아. 말투가 남자인 녀석은 있지만.
메리를 보자 얼굴을 귀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리사, 나중에 낼테니까 돈 좀 내.”
난 마리사에게 영수증을 떠넘기고 메리의 손을 강하게 잡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되면 질투편이다.
“레, 렌코, 마리사도 농담으로 한 소리니까......”
밖으로 나와도 울분을 삭힐 수 없던 나때문인지, 메리가 달래듯 말했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다구, 마리사는 모두 다 알고있다. 우리가 이렇게 얽히면 곤란하다는것도, 나쁜 뜻은 없으니까 진심으로 화낼 수 없다는것도 알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가끔은 단 둘이 있고싶다는것도 꿰뚫어 본 듯, 클럽활동을 후딱후딱 끝내고 혼자서 돌아가기도 한다. 상쾌할만큼 열받는 녀석이다.
“어-이, 렌코, 메리!!”
마리사가 뛰어왔다.
“너무하잖아. 두고가지 말라구-.”
“네가 두고 갈 짓을 했잖아.”
“그만 그만. 그보다 빨리 정류장으로 가자? 더워서 못 견디겠어”
“다음 버스는 12시 2분이라구. 앞으로 3분 정도일까. 그 다음은 8분, 그 그 다음은 17분이야.”
“잘도 기억하고 있네.”
“보통이라구. 메모도 하고 있고.”
마리사는 메모지 몇 장을 꺼냈다. A6사이즈 메모지 중 한 장엔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와 전차 시간표가 망라되어 있다. 늦는것도 생각해서 빗나간 시간도 적어둔 기록이 있다.
다른 메모에도 뭔가 그득그득 적혀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결계를, 고전총계학의 수법을 써서 분석한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도도 있지. 렌코가 있으니까 밤이 되면 길은 알게되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마리사는 확실하구나-”
“보통이라구.”
나도 메리도 동감한다. 마리사는 얄미울정도로 방약무례한 면도 있지만 노력가에 머리회전이 빠른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대학에서도 좀 더 자신의 능력을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얄미운 마리사는 대학 공부는 진심으로 하질 않는다.
“자, 그럼 언제나 하던 걸 해볼까.”
“응.”
“그러자고.”
우리들은 셋이서 정삼각형 모서리에 서듯이 늘어선다.
“에헴. 이번 비봉구락부의 활동내용은 메리가 발견한 결계의 틈새 조사입니다. 그녀가 말하길, ‘지금까지 관측한 것 중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현세와 환상이 일치할 만한, 있을까 어떨까도 모를 정도로 애매한 경계’ 라는 것 같습니다. 흥미를 부채질하는 이야기입니다.”
“영광이네요.”
“신이 아닌, 환상이 축복하는, 그 땅은.......”
셋이 말을 맞춰 대답한다.
“ “ “하쿠레이 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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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짝홀짝 조그만 소리를 내며, 하쿠레이신사의 무녀는 차를 마시고 있다.
“후우.”
변함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오후의 대기에 숨을 내쉰다.
“?”
계기는 아주 조그만, 떠다니는 구름이었다.
구름들이, 티도 나지 않게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환상향의 중심인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서 구름이, 대기가 조금씩 흘러들기 시작했다.
“......결계가?”
찻잎이 조용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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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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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배우고싶어? 넌 인간이잖아? 어째서 그런 기분나쁜 걸 배우려는거야?”
악령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눈 앞의 조그만 소녀의 대답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책에서 봤던가, 친구에게 들은 ‘뭐든지 가능해’ ‘멋있어’ 같은 마법사의 이미지에 홀딱 빠진거겠지.
실로 단락적이고 무지몽매하지만 인간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다.
어쨌든 의례적으로 질문하곤 대답을 들은 뒤 적당히 설득해서 부모에게 돌려보내도록 하자.
어휴, 또 돌아가는 길에 요괴한테 습격당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니, 귀찮다.
악령의 머리 속은 그런 생각들로 차올라있었다.
"......정신 차리라구, 정말....."
"너도 재밌는 녀석이구나!"
"아아, 고마워."
"마법 알려달라구!"
"......음. 인간이 마법을 수련하는건 엄청 힘들어. 보통의 마법사라도 살아있는 동안 될 수 있을까 어떨지도 몰라. 인간에게는 운동이나 공부가 편하다구. 그래도 할래?"
"할래!"
"어째서 그렇게 마법을 하고싶은거야?"
"어쨌든 마법을 배우고나서 생각하겠어!"
"푸후..... 그거, 아까도 말했어."
"아, 그랬나."
아까와 완벽히 똑같은 표정으로 소녀는 핫, 한 얼굴을 했다.
"푸핫, 콜록, 콜록, 히이, 히이, 사래들렸다... 너 말야, 너무 재밌어."
"괜찮아? 죽을 것 같은데?"
"아아, 이미 죽었으니까 괜찮아."
"죽었어......? 우와, 다리가 없어!!"
이제야 소녀는 악령의 발치를 보곤 놀라줬다.
"푸하쿠헤크힉! 시간차로 오는건가, 푸히히히히......."
"괜찮아!? 나한테 마법 가르쳐줄 때 까진 죽지마!"
"그러니까, 이미 죽었다니까, 크히힛...... 알았어 알았어, 알려줄테니까! 일단 조용히 좀 해봐,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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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후후후, 미마님, 샹하-이라고 웃는 건 처음 들었다구---
"잠깐....푸핫!"
지금 내 입과 코를 '샹하-이'라는 녀석이 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라-"
내가 콧숨과 입숨으로 날려버린 녀석은 나선을 그리며 핑글핑글 날아간다.
"소란스럽게도 깨어나시네."
포옥, 하고 타이밍좋게 녀석은 주인의 가슴에 착륙했다.
.......라고 할까, 조종하는 건 주인 본인이니 타이밍 좋고 뭐고도 없지만.
"아아...... 최고의 하루가 될 것 같다구."
난 잠에 취한 머리를 흔들었다.
같이 지낸지도 오래되다보니, 이녀석이 다음에 말할 대사는 알고있다.
[일어났으면 빨리 방에서 나가줄래? 멋대로 올라와선 멋대로 책을 읽곤 멋대로 자고, 나도 슬슬 짜증난다구.]
이런거겠지.
"일어났으면 빨리 방에서 나가줄래?"
예상대로다.
"아침밥 됐으니까, 식기 전에 빨리 와."
예상대......에, 어라. 뭔가 이상한데.
"뭐야."
" '돌아가'가 아닌거냐?"
"여긴 환상향이야. 일본어로 말하라구."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분명히 앨리스는 항상 '당장 꺼져'라고 말하면서도 자리에 앉으면 아침밥을 주섬주섬 내주는 이상한 녀석이지만, 미리 준비해 줄 만큼 헌신적인 녀석은 아니다.
"그럼, 가짜구만!"
"상해, 한 번 더 입이랑 코를 막아줄래. 9분정도면 돼."
"샹하-이"
앨리스가 한 손을 올리자 고속으로 내 안면에 상해인형이 돌격해 들러붙었다.
손으로 내 코를 막고 온 몸으로 내 입을 막는다.
"잠까, 죽어......! 자, 장난이야 앨리스, 살려줘!"
"......"
앨리스가 손을 내리자 상해인형은 천천히 떨어져나와 호를 그리며 앨리스의 손으로 돌아갔다.
"귀중한 시간을 너랑 만담하는데 써버리고싶지 않은데......"
"미안미안, 그치만, 앨리스가 이렇게 상냥했던가."
"이제야 안 거야?"
"뭣"
솔직하게 칭찬해줬더니 가볍게 흘려버렸다.
"낮엔 모리야신사에 가는거지? 이제 열시니까 빨리 밥 먹으라구."
"으, 응......"
이상하게 상냥하게 대해주면 컨디션이 흐트러져버린다.
우리들은 으르렁대는 사이가 적당한거구나, 그렇게 되새겼다.
마력으로 하는 인형의 제어같이 섬세한 작업은 자신없다.
그치만 앨리스의 인형과 오래 투닥거리다보니(주로 인형이 덤벼드는 쪽으로), 얼추 요령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곤 해도 하나하나 미묘하게 느낌이 다른 모양이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건 이 상해인형정도고, 그것도 지근거리 한정.
"훠-이, 주인에게 돌아가라~"
팔랑팔랑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흔들하며 상해인형은 앨리스에게 돌아갔다.
"인형도 나쁘지 않네."
"......줄까?"
"엑."
"줄까? 이 아이."
앨리스가 상해인형을 내민다.
"농담이지? 제일 아끼는 녀석이잖아. 갖고싶기야 하다만."
"응, 장난. 대도둑에게 귀중품을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
"너무하는군."
"......하아."
"왜그래?"
앨리스는 옆으로 돌아 식당으로 걸어나간다.
"이런 비상식적인 녀석과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귄건지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파져서."
"인연이 발효하고 있는거야, 분명."
"맛이 위험할 것 같은데. 영양도 치우쳐있고."
"그렇구만. 난 인연보다 맛도 영양도 좋은 앨리스의 요리를 먹도록 하겠다구."
그럼, 식사를 마치면 모리야 신사다.
-{아이에서 소녀로}-
--카랑, 카랑.
"어서오세요."
"어서왔다구."
양산을 펼친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주 평범한 광경이지만 그녀에 한해선 이상해보인다.
"어떻게 된건가요, 이상한 얼굴을 하시곤."
"난 태어날 때 부터 이런 얼굴이야."
야쿠모 유카리. 경계를 조종하는 유일무이한 요괴.
모두가 그녀를 무서워하고 경배해 따랐다. --최근까지는.
"레이무 몰래 나오셨군요."
"하쿠레이에 신부로 들어간 기억은 없는데."
그녀는 양산을 접곤 가게 안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나도 탐색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에 다시 책을 읽어내려갔다.
"이거랑, 저거랑, 요거랑......"
쇼핑에 들뜬 소녀같은 유카리의 모습을 곁눈으로 살핀다.
"이 정도일까."
카운터를 돌아본다.
그녀의 오른손엔 만년필이, 왼손엔 노트가 쥐어져있다.
"사시는겁니까."
"응. 아 그리고, 이것도."
그녀는 카운터에 물건들을 두고 내 등 뒤의 책상을 가리켰다.
".......랩탑 컴퓨터?"
랩탑 컴퓨터. 통칭 '노트북'. 정보를 고속으로 계산하고 처리하는데에 사용한다.
대단히 범용성이 높은 탓에 난 이 도구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이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걸 사용했던 문명의 흐름을 알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응. 바깥 세상의 인간은 그거 하나로 세계를 만드는걸."
"그러하옵니까."
그녀는 카운터에 어느정도 돈을 두고 금액을 표시한다. 별로 불만은 없었기에 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건들을 포장했다.
난 이전에, 눈 앞에있는 그녀에게 그걸 가르쳐줬다.
바깥 세계의 기술, 법률, 문화, 그 외 등등.
도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젠가 반드시 밟아야 할 순서이고, 그만큼 유용한 것이다.
그치만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 좀, 글렀어. 기억이, 지성이 압축되어가고있어."
"인간이 되어가는겁니까?"
그녀, 야쿠모 유카리는-- 경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요괴는-- 이전에 갑자기 그 힘 모두를 잃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인간이 어떤건지 아직 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괜한 걱정이네. 나도 그렇다구. 그리고 본인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철학자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해야겠네요."
우리들은 웃었다.
예전의 그녀는 끝 모를 막연함이 들 만큼의 지성으로 압도감을 빚어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깨끗이 씻겨나가서 순수하게 높은 품격을 풍긴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무방비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어떻게 된 걸까."
유카리가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전에, 여기 왔어요."
"어땠어요?"
"꽤나 정신없어 보이던데요. 그치만 미친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마지막까지 그렇겠죠, 불쌍하게도."
난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거짓말이나 과장을 더하는것도 의미없는 일이다.
"그래......"
"상상하기 전에 알아버린다는 건, 불쾌한걸지도 모르겠는데."
--카랑, 카랑
"유카리님!"
"역시, 여기 있었어."
"어라, 신기한 조합인데."
벌컥하고 문을 열곤 여우와 무녀가 침입해왔다.
"레이무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은거니 란?"
"유카리님, 농담도..... 제 주인은 유카리님 한 분 뿐."
"힘이 없는데도? 지성이 없는데도? 지금의 나는 약하고 겁많은 인간이나 다름없어.....아, 아파, 아프다구 레이무."
레이무가 고헤이로 유카리의 머리를 몇번이고 두들겼다.
"약하고 겁쟁이라 미안하구만."
"레이무는 별도야....."
야쿠모 란이 레이무 앞에 섰다.
"유카리님, 마요히가에 돌아가자구요. 첸도 유카리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거절해둘게."
"거절해두면 곤란한데말야. 너를 노리는 요괴들을 퇴치하는거 꽤 손이 많이 가서 말야."
레이무가 입을 놀렸다.
"어느정도의 치욕은 각오하고있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여기의 질서가 무너지는게 문제야.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돼."
"......"
유카리님, 부디.....!"
"하쿠레이신사로 돌아가겠어......"
유카리가 고른 건 레이무였다.
"유카리님, 저로선 뭐가 부족해서....."
"이미 나와 그대는 주종관계가 아냐. 넌 자유의 몸이라구."
"이건 제 의지라구요!"
"......틀려, 아니라구, 란."
"......네?"
"넌 긍지높은 요괴여우. 힘없는 자에게 굴할 리 없어. 지금 네가 가진 감정은 내가 이전에 건드려둔 경계조작의 잔해야. ......만에 하나 내 힘이 없어지는 때가 온다고 해도, 네가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이전에 마음의 경계를 조작해둔거야."
"그, 그럴리가......"
"지금의 나로선 경계를 풀 수 없어. 그치만 내 힘이 없어진 지금, 급속도로 원래대로 돌아가고있지. 그래,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유카리님, 장난은"
"본능에 의한 약자에의 혐오감과 고역을 했던 분노에 의해 넌 분명히 날 박살낼거야. .......나로선 그게 무섭단다. 죽는 건 괜찮아. 그치만, 네가 내게 향하는 상냥한 눈이, 모멸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는 용기는, 지금의 나에겐 없어."
"........!"
요호의 꾹 말아쥔 양 주먹이 떨고있었다.
".......가자, 레이무......아, 아파, 아프다니까 레이무."
레이무가 음양옥으로 유카리의 머리를 수 차례 때렸다.
"어째서 넌, 내가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물을 끼얹는거야."
"시끄러. 멋대로 튀어나간 주제에 사람을 방치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아무리 온화한 나라도 화가 난다구."
의기소침한 요호와 내가 그 장소에 남아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정말로 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절한다.
".....뭐, 그래. 유부라도 사겠나."
".....응. 가다랑어포도 부탁해. 그 애가 기뻐할테니......"
-{신앙은 덧없는 인요를 위해}-
"여, 사나에."
"어머, 마리사씨."
어딘가에 있는, 뻐꾸기 이외엔 참배를 오지 않는 신사에 비하면 여기 신사는 소란스러움이란게 있다.
내가 도착하는것과 거의 동시에 사나에는 참배객과의 용무를 끝낸 참이다.
순진하게 손을 흔드는 어린아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레이무도 이 정도만 붙임성이 있으면 참배객이 좀 더 많이 모여들지 않을까.
"참배인가요?"
"그렇게 되려나. 그렇다곤 해도, 오늘은 뭔가 평소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인간도 꽤나 있는 모양이고....."
요괴의 산에 있는 신사인데도 딱 보기에 인간이다 싶은 자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자주 들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눈에 보이는 참배객이 많은 건 알 수 있다.
"네. 뜻 있는 요괴신자들이 고민하는 인간들을 마을에서 데려오는 듯 해요."
"과연. 종말엔 신앙에 기대게 된다는건가."
"뭐라고 해도, 신앙이 느는건 좋은 일입니다."
난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상태를 관찰한다.
대부분 어깨를 늘어뜨리고 낙담하는 자와, 가슴을 펴고 나아가는 자 두 가지로 갈렸다.
'참배전' '참배후' 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과연 신, 인심에 관한 설교엔 도가 텄다는건가.
“마지막까지 기대러 오는것도, 제법 괜찮구만.”
“어라, 마리사씨는 그렇지 않은건가요?”
“난 다르다구. 인사랑, 그리고 부탁해둘 게 있어.”
“부탁할 것?”
“오- 마리사 아니야. 구제를 받으러 온겐가?”
카나코가 손을 크게 흔들며 나타났다. 온바시라도 등에 지고, 그야말로 신 100%다.
“으냠. 아니라구.”
“그렇겠지. 넌 죽어도 신앙이 깊어질 사람이 아니니까.”
“그치만 부탁은 해 두려고 왔다구.”
“어떤 부탁인가요? 알려주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음-. 연애소원.”
“뭣”
“엣”
카나코는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나고, 사나에는 반대로 다가와 흥미를 나타냈다.
“사랑사랑 스펠카드로는 떠들어대지만 진짜로 사랑을 하는건가.”
“사랑방 이야기하듯 말하지 말라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마리사씨, 조금 기다려주세요.”
사나에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세전을 향해 달려갔다.
“신나서 가버리는구만.”
“저런 부분만큼은 딱 그 나잇대 여자아이라고 생각해.”
카나코가 슬픈 표정으로 사나에의 등 뒤를 보고있다.
어릴 적 보았던 자기 어머니의 그림자가 왜인지 그 모습에 겹쳐졌다.
“저 나잇대 여자가 신을 믿을만한 세계라면, 이쪽에 올 필요는 없던거 아냐?”
“그렇지도 않아. 저 쪽 아이들은 신도 믿지만 사람도 믿지. 문자도 믿고, 음악도 그림도 믿어. 즉슨, ‘이야기’에 의지한다는거야.”
“ ‘이야기’?”
“그래, ‘이야기’. 뭐 옛날에 말하는 전설이나 신화같은거말야. 인간은 그걸 정신적인 씨앗으로 삼아서 살아가지. 바깥세상에선 과학이 꽤나 발전해서말야. 눈이 돌아가버릴만큼 많은 ‘이야기’가, 편리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퍼지게 된거야.”
“말을 만드는게 즐겁다니, 바깥세상 녀석들도 꽤나 한가하구만.”
“그럴지도. 수많은, 조그마한 이야기를 마음에 안고 저쪽 인간들은 살아가. 사나에랑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거기서는 상대적으로 신들이 이루어놓은 ‘이야기’는 작아지게 되지. 특히 신덕에 대해선 힘들지. 저쪽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말야.”
“흐-음. 팟하고 상상이 안 되는데.”
“무리도 아냐. 넌 젊고, 환상향이 저쪽과 단절된 후에 오래 지내왔으니까. ........외국과의 전쟁에서 져버린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그것도 벌써 반세기 전 이야기이고.”
“아- 대동아전쟁?”
카나코는 정말로 이상해보이는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안 거야?”
“ ‘대동아정략지도대강’이라는 서류를 아는 도구점에서 주워서 그걸 봤지. 그 외에도 전쟁 전의 책은 거기 엄청나게 많으니까 틈틈이 읽어본거고.”
“.......아아, 그렇구나.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전쟁 후 검문으로 환상으로 들어온 게 빨라져서.....”
“무슨 이야기야?”
“아니, 됐어, 아무것도 아냐. 이 쪽 이야기. 뭐 그 엄청난 전쟁으로 일본이 진 이후에 서양의 한 나라가 개입해서, 격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거지.”
“그렇구만.”
“마리사씨-!”
사나에가 돌아왔다. 그 옆엔 개구리가 한 마리 붙어있다.
“카나코-! 이미 교대시간이라구-!”
“아-, 미안미안! 그럼, 마리사!”
“응, 또 보자.”
멀어져가는 카나코 대신, 이라고 할까 어쩌다 또 보자고 해버렸다.
“자, 여기!”
사나에가 내민것은 ‘인연줄’ 이라고 가운데에 쓰인, 분홍색 조그마한 주머니 모양 부적이었다.
“헤헹-, 마리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스와코의 표정이 얼굴엔 영 안 어울리지만, 나이엔 어울리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온다.
“생긴 건 옛날이야. ......오, 카나코와 케로코의 휘장이 붙어있는걸.”
“케로코라고 하지마!”
주머니 뒤를 보니, 뱀과 개구리라고 생각되는 휘장이 횡렬로 붙어있었다.
“삼목의 신덕이 깃든, 잘 듣는 부적이예요.”
“헤-, 손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이거.”
“사나에가 어릴적부터 조금씩 만들어온거야, 그거-”
“에, 그렇게 오래된 걸 받아도 되는거냐.”
“괜찮아. 신덕은 매년 다시 넣어줬으니까.”
“그게 아니라, 사나에의 보물인거 아냐?”
“괜찮아요. 여기 올 때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주자’고 했었으니까요.”
바깥 세상에서 사나에도 사랑을 했던걸까.
신경쓰였지만 지금까지 웃고있는 사나에의 표정에, 조금 슬픈 기색이 드리운 것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묻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냐, 고맙다. 잘 받아갈께. 얼마야?”
“돈은 됐어요.”
“내가 스스로 ‘돈을 낸다’는 레어한 발언을 했건만......”
“스스로 말하지마! 그치만, 지금은 보시도 받지 않고 있으니까 마리사도 신경쓰지 마.”
그러고보니 이렇게나 사람이 있으면서도 세전을 넣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불전쪽을 보니 세전함 자체가 없었다.
“놔두면 돈 없는 사람들이 초조해하고 말야. 철거해버렸어. 덧붙여서 이거, 사나에의 제안입니다.”
“스와코님.....”
사나에가 부끄러워했다.
과시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공감했다.
“그래서 이런 광경인가. 신자도 늘겠구만.”
“현인신님, 현인신님. 부디 가르침을....”
노파가 사나에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 나이가 되도록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부디 저의 영혼을 이끌어주십시오.”
“......네, 그렇다면 이 쪽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할까요. 마리사씨,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스와코님, 다녀올게요.”
“아아, 부적 고마워.”
“힘내 사나에-”
“죽음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나에는 노파에게 말을 걸며, 함께 예배당으로 걸어갔다.
“팔팔하구나, 사나에는.”
“......그렇네.”
“어떻게 된거야, 케로코. 힘이 없잖아.”
모자에 손을 얹어 부비부비 쓰다듬는다.
“우-, 그러니까 케로코가 아니라니까-!”
양 팔을 뻗곤 풍풍 화가 났음을 표현한다.
불경하게도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나에를 이 쪽에 데려온걸,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거냐?”
“.......너,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툭툭 말하는거 아냐.”
“물어봐줬으면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스와코는 큭,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입을 다물었다.
난 토리이 옆에 주저앉았다. 스와코도 잠시 망설이다가 내 옆에 앉았다.
“......사나에, 말야.”
“응.”
“이번 일을 알았을 때 ‘지금부터 구원을 청하러 많은 인요가 몰려들거예요. 바빠지겠지만, 모두 힘을 합해서 힘내자구요. 지금이야말로 인요를 위해 신앙을 퍼뜨릴 때예요.’ 라고 했어.”
“그렇구만.”
“원망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았어. 그저 사람과 요괴를 위해 보내겠다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래 보이는군.”
“......뭐, 사나에는 훌륭하구나, 라는 손자자랑이지. 그뿐. 이걸로 이야기 끝, 끝-!”
“뭘 부끄러워하는거야.”
난 일어났다.
“생각이 전해졌으면 좋겠어.”
“신덕, 잘 부탁한다구.”
“맡겨만 둬. ......첫사랑?”
“10년 됐지.”
“첫사랑이라, 좋지. 내 쪽은 정말 오래됐지만, 지금도 확실히 기억나. 사랑할 수 있는 여자아이는 행복한거야.”
“동감이라구.”
빗자루를 띄우곤 쓱 올라탄다.
“힘내. 사랑의 마법사씨.”
“아아, 그럼, 스와코.”
“.......응!”
스와코가 있는 힘껏 웃는 얼굴을 보며, 난 기분좋게 모리야신사를 떠났다.
-{변치 않는 사람, 변치 않는 마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네, 모리치카씨도 부디 건강히.”
“고마워.”
고용인에게 배웅받으며 난 키리사메도구점을 나섰다.
키리사메 아저씨의 마음은 점점 저 허무해져갔다.
일부러 이야기를 오래 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날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치만 뭐가 어쨌든 인사는 끝냈다.
단골 분들께도 한 바퀴 돌고 왔고, 이제야 가게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볼까.
사람 수는 꽤나 줄었지만, 그래도 하는 일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귀부인은 담소를, 가게도 하고있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언제나 있던, 평화로운 마을이다.
당연한 일이다. 엄청난 진실을 쑤셔박는다고 해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엔, 쌓아가던 일상을 소화하는 것 외에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너무 큰 변화는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나는 딱 좋다고 생각한다.
“혹시,”
“네?”
말을 거는 쪽을 돌아보니 마을에선 보기 드문 사람이 있었다.
후지와라노 모코우였다. 눈 주변이 붉게 충혈되어선 조그만 상처가 얼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여기선 좀 그렇고, 자리를 옮길까.”
“응, 알았어. 나, 집에 돌아갈 셈이니까, 괜찮으면 같이 가지?”
“그걸로 좋아.”
검게 그을은 주전자에서 홍차를 따라낸다.
내가 그녀에게 판 홍차같다.
“하핫, 홍차라는것도 꽤 좋은 것 같아. 뭐, 마셔보라구.”
“좋아해주니 기쁘군.... 잘 먹을게.”
한 입 머금고 맛을 본다.
적당히 진하고, 떫은 맛이 아련하게 남는다. 좋은 맛이다.
차를 넣을 때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말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그녀가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이겠지.
“우울해져선 틀어박혔어. 그 뒤로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해봤는데, 아무래도 안 되네. 근본 자체가 진지해서 말이지. 케이네는.”
“그렇지......”
어제 마을에서 강도사건이 있었다.
습격당한 건 카미시라자와 케이네씨.
그녀는 강력한 반 요수인지라 어지간한 상대는 압도할 수 있지만, 상대가 나빴다.
덮친 건 마을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지키는 존재로 지내왔던 그녀로서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그저 멀거니 서있었다고 한다.
함께 있던 후지와라씨가 카미시라자와씨를 감싸곤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당신, 배는 괜찮은거야?”
“아아. 한 방 맞은 것 뿐이니까 말야.”
덧붙여 그 인간은 사태 며칠 전부터 내 근처에서 상해사건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해자는 물론 나였다.
불의의 습격이라 한 방 맞은 것 뿐이지만, 나도 일반인보단 튼튼한 몸이다보니 큰 상처가 되진 않았다.
“너야말로 상처는 괜찮은거야?”
“뭐, 난 봉래인이고. 이 상처도 보통이라면 인생 끝났겠지만 슬슬 없어지고 있어. 방패로는 최적이지. 하하.”
후지와라씨는 그야말로 남의 일인 양 웃어주었다.
“저항 하나 없었다면서?”
“인간을 상처입히면 케이네가 슬퍼하니까.”
“.......이제와서 말하긴 뭣하지만, 넌 곧바로 그녀를 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해.”
“어째서? 죽여버리고 싶은 녀석이 있고 죽지않는 녀석이 눈 앞에 있다면 죽여주는게 원활하게 돌아가잖아.”
후지와라씨는 왼손으로 검 모양의 불꽃을, 오른손으로 사람 모양의 불꽃을 피우곤 사람을 베어죽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거야말로 카미시라자와씨가 슬퍼하겠지.”
“아아, 케이네도 재난이야. 설마 너랑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다니, 생각지도 못 했을 일이고.”
그 여성은 말 그대로 정신이 반쯤 나가서, 나한테 이미 망상에 가까운 편애를 가지고 있었다.
멸망의 공포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거겠지.
높은 지성과 기억력이 독이 되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
“그게 아냐. 그것도 있겠다만...... 카미시라자와씨가 뭣보다 슬퍼하는 건, 네가 상처입는 일이잖아.”
“그럴 리 없다구. 내가 죽지않는다는건 케이네도 잘 알고있고.”
목숨 뿐 아니라, 그것에 상응하는 마음가짐이 보통 사람과는 한참 떨어져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호의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위해 상처입는다.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게 여기는거야. 설령 죽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지.”
“음......”
후지와라씨는 위를 보고, 뺨을 긁으며 생각하는 것 같이 보인다.
“아-. 응, 응. 대충 알겠어. 알 것 같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분명.”
“그건 다행이네.....”
“그치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고. 말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 어쩌면 좋을거라고 생각해?”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어, 라고 말한 순간 기분탓인지 그녀의 표정이 감상에 젖은 것 같았다.
“그렇네..... 난, 너만큼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대단한 건 말해주지 못하겠지만..... 쓸데없는 생각 말고 같이 있어주면 그걸로 좋을거라고 생각해.”
“결국 그건가. 뭐, 사람도 요괴도 그런거겠지.”
“응. 그런거야.”
후지와라씨는 팔을 꼰 채 응, 응 하고 몇 차례 끄덕이더니, 찻잔을 쥐곤 홍차를 마신다.
“......”
“......”
잠깐 동안의 정숙이 있고, 그걸 끊어내듯 후지와라씨가 입을 연다.
“뭐- 나도 케이네도 어떻게든 해볼테고, 복수라던가를 생각하는것도 아니니까, 그걸 전하려고 말야.”
“그걸 들으니 안심이네.”
“내가 복수하고 싶은 상대는, 전에도 앞으로도 한 명 뿐이야......”
“그건.....”
난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 앞은, 내가 함부로 발을 들여도 좋은 곳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이 근처를 좀 돌아다닐거니까,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가 보는게 좋아.”
“으응. 일부러 시간을 내 줘서 고마워.”
“괜찮아. 그럼”
“당신도, 홍백이나 흑백같은 것 밖엔 모르지만, 소중히 대해주라고-.”
현관을 나서는 내 등 뒤에, 예상외의 말이 꽂혀서, 달깍하고 내 어깨가 쳐졌다.
-{마법사의 낮}-
-
--
---
“그럼, 마리사! 네가 마법을 내게 배우기 시작한지 1년이네!”
“네!”
“4대원소의 기초마법은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늘은 실전이야!”
“내!”
“이녀석을 혼내주고 오렴!”
WANTED!
하쿠레이 레이무
(그림)
상금 : 1페리카
죄명 : 수련하지 않음
“수련을 안 한다고!? 믿을 수 없어!”
“그렇지! 수련에 수련을 쌓아올린 네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려!”
“이런, 아무 고생도 안 한 녀석쯤은, 한 큐야! 다녀오겠습니다!”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곤 빗자루에 올라타, 위태로운 자세로 날아갔다.
“......자아, 어떻게 져서 오려나. 이걸로 포기한다면 그걸로 끝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른스럽지 못하지만 내가 해치워버릴까. 패배를 아는 건, 그 무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흔들흔들 마리사는 숲을 날고 있었다. 걷는것보다 늦다, 고 할까 솔직히 뛰는 게 더 빠르다.
그래도 빗자루로 날아가는 건 마리사의 의지이다.
“하쿠레이 레이무-. 밥 안 먹었지-.”
“......어째서 풀네임이야. 아직 안 먹었지만.”
“버섯.”
난 레이무에게 등을 돌린 채, 등에 맨 바구니를 보여준다.
안엔 방금 숲에서 모아온 전리품들이 가득하다.
“.......독?”
“나도 먹으니까 안심해. 밥 해줘.”
“별 수 없네.”
넘겨준 바구니를 레이무는 주섬주섬 받아든다.
“이만큼 있으면, 저녁밥도 만들겠는걸.......”
레이무는 기뻐보였다. 역시 평소에 잘 먹지 않고 지내는 것 같다.
한시간정도 지난 후, 버섯밥이 나왔다.
열린 문 앞엔 옅은 구름이 보이고 있다.
“저 구름, 광대버섯을 닮았는걸. 저 쪽은 웃음버섯.”
“어떻게 다른거야..... 아니, 설마 여기 들어있는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없다니까. 오늘은.”
“오늘은 은 뭐야, 오늘은.”
“너 면역 있어보이고 말야.”
“그러고보면 그렇네. 다음번엔 자신이 정상인걸 섞도록 해볼게.”
“......다음번이라니, 없겠지.”
젓가락이 멈춘다.
망했구만, 이렇게 언제나 느긋하게 놀고있으면, 잊어버리고 만다.
“믿을 수 없어...... 환상향이 내일로 끝이라니.”
“.......”
찻잔과 젓가락 소리만이 들린다.
“......빨리 먹어.”
레이무는 그 뒤로 한 번도,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 응......”
이렇게 오늘 온 것도, 레이무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싶었던건데.
-{봉래의 끝}-
“죽여줄게.”
“죽여주겠어.”
몽롱하게 빛나며 더욱 더 그 파동을 흩뿌리는 만원이, 교차하는 두 봉래인을 비춰주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질리지도 않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는거지, 경계의 요괴씨.”
“노인네는 여기서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거네.”
우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는걸 알든 모르든-- 아니, 이제 그런 건 어떻게되든 상관없고 그저 눈 앞의 적을 죽이는데에 두 사람은 즐거워하는거겠지.
유구한 시간을 지내며 세공되어 망가지지 않는 도구를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교차되는 언어에 관해선 모순된 꼴이 미묘할정도로 아름답게 조화되어 보였다.
“끝났네.”
에이린은 전투하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만월을 보고 있었다.
“응. 환상향은 하쿠레이신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축소돼. 삼라만상은 어둠으로 가라앉아. 내일 해가 가라앉을 무렵, 모든게 가라앉아, 환상향은 한 번 끝나.”
“영원의 생도, 이걸로 일단락, 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천년도 넘게 살았다면, 꽤나 재밌는 인생이었을텐데.”
“.......짖궂기는.”
에이린이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오래 산 자라면 알 거 아냐. 너무나 많은 경험은 사물에 대한 신선함을 둔하게 만들어. 기억을 끌어내어 하는 유추가 감동을 옅게 만들지. 지성이 감성을 압도해.”
“당신은 지적으로 너무 많이 그 위세를 떨쳤어. 지성은 널리 떨치는 게 아냐.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베푸는 종류의 도구야.”
“그래서,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적당적당한거구나.....”
“어라 실례. 그렇게 보였어?”
“아니.”
“월인들은, 장난이 심하네.”
“전의 전쟁에서 섬멸해뒀으면 좋았을텐데.”
“......”
천재라는건, 안좋은 장난도 일등급이다.
“봉래 [개풍쾌청 - 후지야마 볼케이노]!”
“아우읏......!”
달을 등 뒤로 한 모코우의 불사조가 달빛과 함께 카구야에게 날아든다.
“어라, 타버렸다......”
“꽤나 피곤해보이고, 져버릴 것 같네, 저 아이. 도와주지 않아도 돼?”
“공주에게도 프라이드가 있어.”
“당신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게 돕는 것 정도의 조작은 할 수 있잖아.”
“괜찮아. 저건 공주의 의지니까.”
난 달의 공주를 바라봤다.
연기를 내뱉고, 옷을 피부째 더럽히고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묘한 만족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면에 충돌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리고, 대나무잎이 흔들린다.
후지와라는 그걸 보곤, 그 뒤 한순간이나마 슬픈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떴다.
“ ‘승리를 넘긴다’는 건가. 고귀한 공주에겐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네.”
“속죄할 참인걸까.”
“자비야. 이 이외엔 사는 의미를 찾지못한, 불쌍하게 지내온 지상인에 대한 자비.”
“......그래.”
죄악감을 가진 자비를, 속죄라고 부른다.
눈앞의 천재는 당연히 그걸 알고있을테니, 반론은 무의미한것이다.
이걸 자비라고 말하는건, 종자로써의 자세이겠지.
“우동게.”
“네.”
에이린가 손가락을 튕기자, 토끼가 한 마리 장지문을 열고 나타났다.
“유카리, 우리들은 공주를 데리러 갈거니까, 이대로 쉬게 해 주겠어?”
“그렇게 하도록 할까.”
토끼는 약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이렇게 데리러 간다는걸 알 수 있었다.
둘은 툇마루 밑에 준비해뒀던 신발을 신고 천천히 주인이 떨어진 장소로 걸어간다.
“.......에이린, 멸망은 어째서 온다고 생각해?”
내가 딱 하나,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
“바깥 세상 사람들이, 환상을 환상이라고 인식하지 않게 되어서겠지.”
에이린은 내게 등을 돌린 채, 그 자리에서 바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해답을 전했다.
“대단하네, 야고코로 에이린.”
“뭘 이 정도로. 가자, 우동게.”
“네.”
여우에게 홀린 표정을 한 토끼를 불러, 둘은 또 다시 걸어나갔다.
난, 바깥 세상을 관찰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에이린은, 경험과 상상에서 사실을 직관했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그걸 해결하는게 이미 불가능하다는걸 안 것이다.
야고코로의 천재성도, 내 능력도, 주춧돌을 상대하는 한 방울 물이나 같은 것이다.
--애초에, 후자는 이미 말라비틀어져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유카리.”
“어머.”
에이린가 멈춰서선, 내게 등을 돌린 채 조그만 병을 던졌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정확히 노려서 던졌기에 떨구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이건?”
병 안엔, 무색투명하고 작은 결정들이 들어있었다.
아주 작으면서도, 거의 빛을 반사하지 않는 특이한 물질인 듯 하다.
시각만으로확인해보기엔, 너무나 애매한 존재로 보인다.
“그걸 복용했을 때가, 당신의 마지막. 다만, 그 직전에, 당신은 이전의 자신을 찾을 수 있어.”
“직전이라면 구체적으론?”
“당신 전용 약인데 시험해 볼 만한 요괴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찰나보다 영원한 순간을 맛보는 걸 기대하도록 하겠어.”
“용법용량을 지켜서, 올바른 곳에 사용해주세요.”
월인도 재밌는 인간은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
병을 손에 쥐고, 안을 확인하며 오솔길을 걷는다.
“지금 이걸 마셔도 시험해 볼 수는 없겠지......”
난 한 권의 책을 꺼내든다.
내가 이전에 인간을 대상으로 집필한 자연과학책이다.
라곤 해도, 인간의 학문체계를 거의 무시하고 있어서, 그 당시의 내가 좋아서 쓴 것 뿐이다.
“꽤나 어려운 걸 썼네.”
지금의 나로선, 모든걸 이해하는 것 따위 절대 불가능하다.
애매한 기억을 더듬어 최근 언제나 보고있던 편을 연다.
거기엔 표제로서 [하쿠레이 대결계] 라고 쓰여져 있다.
결계의 강도가 많이 줄었을 때엔, 토리이는 경계로 구성된 긴급시의 피난경로로써 기능한다. 경계의 요괴인 야쿠모 유카리에겐 그 떄의 신호가 닿게 되어 있어......
이 약을 쓸 곳은 정해져있다.
뜻 있는 자가, 그 때에 나타난다면.
‘월인의 죄와 벌’
대나무숲이 원형으로 탄 자리의 중심에 공주가 쓰러져있었다.
몇번이고 본 광경. 끝나지않는 서로에의 살인.
“......졌어.”
“네. 이제 뭐라고, 변명도 못 할 정도로.”
“넌 내 편이라구.”
이 아가씨와도 꽤나 오래 지내왔다.
인요를 구분하지 않고, 죽을 때가 되면 감상적이 된다고들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그치만 후지와라도 꽤나 고생한 것 같군요. 다음엔 분명 아가씨가 이길겁니다.”
“......농담이 꽤 능숙해졌는걸, 에이린.”
“칭찬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수년간--구체적으로는, 영야 이후--카구야는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들은 변했다.
영원정에 몸을 숨기고, 아랫것들과 교류하게 된 뒤로.
“저기-, 스승. 공주님의 치료는.......”
“그럼, 농담은 이 정도로 해둘까. 내놔봐, 우동게.”
레이센이 면목없다는 듯 약상자를 내미는걸 보고, 그러고보니 치료하러 왔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에게도 면목이란게 있기 때문에 잊은 건 아닌 척 했다.
“공주님, 알약입니다.”
약상자를 열어, 직경 5미리정도의 동그란 캡슐을 내민다.
“......”
“캡슐은 맘에 들지 않으신가요? 분말약이나 액체형도 준비는 해 뒀는데.”
카구야는 기분에 따라 먹고싶은 약이 바뀌기 때문에, 치료할 때엔 항상 여러 종류의 약을 휴대하고 있다.
지상에서 손에 넣은 약재는 한도가 있다.
그 탓에 수백년전엔 지상의 의학에 기대어 내복제와 외복제를 맞춰 치료하곤 했다.
그치만 도망치는 몸인 우리로서는, 수많은 질환의 조기치료는 급선무였다.
난 사는곳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도 그를위한 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원정에 오고 나서야 겨우 본격적인 실험을 거쳐서, 뭐라 할 수 없을만큼 기쁘게도 약은 완성되었다.
봉래의 약을 만든 나로서는, 이 정도 설비가 갖춰진 곳이라면 그렇게 대단할것도 없다.
“.......후우.”
카구야가 캡슐을 마시곤, 급속도의 신진대사에 의해 몸 전체의 구멍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매번 생각하는데 이거 엄청 기분 좋은걸. 이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자살해볼까 싶을 정도로. 랄 이전에 해봤어.”
“이 전에 칼로 마구 베어댄 상처는 그게 원인이었습니까!”
“시끄러, 이나바. 조금 몸을 잘라본 것 뿐이잖아.”
“복부를 스무번이나 베어내고는 어디가 조금입니까! 어떻게 봐도 할복에 실패한 무사잖아요!”
“그랬던가.”
“.......제발 그만두세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구요. 공주님과 달라서, 저나 다른 토끼들은 불사신이 아니니까요.”
“심장이 멈춰도, 한동안은 이 약으로 소생시킬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치 에이린?”
“무리입니다.”
“어라.”
“이 약은, 무한한 재생능력을 가진 봉래인이 아니면 쓸 수 없어요.”
그건 반 정도 거짓말이다.
확실히 지금 카구야가 마신 약은 봉래인에게만 듣는다.
그치만, 어느정도는 인간이나 요괴에도 듣도록 개량할 수 있다.
랄까, 시험 단계에서 그건 이미 가능했고, 그걸 개량한게 봉래인의 약이다.
봉래인은 역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존재인 탓에, 약도 자연스런 방법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것이다.
인간용으로 이걸 배포한다면, 인간들은 어지간한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겠지.
.......그치만, 난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지상의 의학에 맞는 약으로 처방하고 있다.
종족의 그릇에 넘치는 약은, 그 종족에게 해를 끼치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후지와라의 아가씨를 전례로.
레이센이 귀를 앞뒤로 흔들며 뛰쳐나갔다.
적극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모양이지만, 저건 제법 귀엽기때문에 괜찮다.
저런 언동이 불필요하게 레이센을 괴롭히는 원인중 하나지만, 본인은 이날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에이린, 산책하자.”
“네.”
“......”
산책하자, 고 말하고선, 카구야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 업히세요.”
등을 돌리고 손을 내밀자, 카구야는 아무말없이 내 어깨에 팔을 감고 등에 업혔다.
“......어디로 갈지는 맡겨둘게.”
“네.”
어디에 갈지 정하지도 않은채, 난 걸음을 옮긴다.
만월은 요요히 빛나고, 말세인 지상을 웅변하기 위해 빛내며, 적막한 죽림을 어렴풋이 밝힌다.
내 발소리만이 조용히 죽림에 울려퍼진다.
“.......에이린.”
“무슨 일이야.”
“나, 죽는게 무서워.”
카구야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얼마전까지만해도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영원의 삶조차 하나의 여흥이라고 생각했다.
“잘됐네.”
“어째서?”
“지금 넌, 밀도높은 삶을 연주하고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을 정의할 수 있지. 죽음이 있기에, 삶을 느낄 수 있는거야.”
“넌?”
“네?”
“에이린은 어떤거야?”
“어때보여?”
“......평소같아.”
“관찰력이 부족하네.”
“뭐야 정말.”
그렇게 말하자, 카구야는 내 등에다 부비부비 얼굴을 부벼댔다.
긴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는걸, 등 너머로 알 수 있었다.
“.......에이린. 말할게 하나 더 있는데.”
“뭔데?”
“모코우가”
“안됩니다, 공주님.”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어.”
“말 안 해도, 알아요.”
이해는 하고 있었다.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지고, 외부와 교류하기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죽는 생명이 가지는 논리는, 무의미한 살인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수년간의 교류로 카구야는 인간들의 윤리를 알기 시작했다.
이번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스스로 살의가 없어지고 있는거겠지.
애초에, 영원의 삶에 지루해 죽을 것 같앝던 살의일 뿐이니까.
그치만.
“모코우는 공주님의 목숨을 노리는 적. 난 공주님을 돌보는 종자.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건 변치않아요.”
“그치만, 난 알 것 같아. 모코우도 이미”
“공주님!”
우리들은, 마음을 바꿔선 안된다.
그건 후지와라의 인생 전부를 굴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지와라, 우리들이 가능한 건, 이 정도야. 미안해.)
“....에이린.”
“네.”
“뭔가 생각하고있지.”
“공주님과 같은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카구야는 내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고는 몸을 더욱 더 밀착시켰다.
혼나고 삐진 어린애같다.
지금에서야 나이차같은건 숫자에 불과하지만, 나를 어머니와 겹쳐보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도, 의사적이긴 하지만 모성과 비슷한 감각을 이 아가씨에게 품고있다.
사람의 입장이나 관계가, 연기에 의해 상대적으로 생성된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해된다.
“........모코우랑은, 이제 못 만나겠네.”
“제가 있지않습니까.”
“......응.”
“이제야, 단 둘이서 지낼 시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들의 속죄는 끝났다.
뒤는 어두운 단죄를 기다릴 뿐이다.
“--”
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모습에, 뒤에 있을터인 카구야의 모습이 왜인지 겹쳐보였다.
기세등등하고, 아름다우며, 덧없는 웃음을 머금고 있다.
지상에 온 뒤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다.
왜인지 한 방울 눈물이 내 뺨을 흘러내렸다.
그 이유는, 어떤 말로 설명해도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향수의 도망자}-
“우우우, 스승도 공주도, 너무해...... 갑자기 꺼지라니.....”
표적이 경계없이 이 길 한 가운데를 걷고 있다.
이 죽림에서 짐승의 길을 걷다니 자살행위이다.
거기엔 누군가가 지나다닌 길이고, 앞으로도 자주 이용하겠지.
그렇다면 거기에 덫을 펼치는것이, 인정 아닌 토정이라는거겠지.
“돌아가서 씻고 잘래....... 우왁!”
걸렸다!!!
“아파아~ 아니, 함정?”
“횻횻횻횻.”
이 순간이 나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더한 행복이다.
내일 세계가 없어진다고 해도, 생명의 행복은 그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우, 테, 테위~”
“레이센은 마지막까지 바보구나. 우히히히.”
레이센은 이런 뻔한 도발에 약하다.
당장 튀어올라와서 날 쫓아올 게 뻔하다.
“..........우.”
“응?”
함정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어째 튀어나올 기미가 없다.
무슨 일이 있나.
(낚는건가? 뭐, 마지막이니까 물어줘도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구멍 속을 보았다.
“우...... 우, 우, 우, 우아아---앙!!”
레이센이 울어제꼈다.
“뭐야, 뭐야 정말! 스승도, 공주님도, 테위까지 모두들! 그렇게 내가 싫은거야! 우, 아, 우우우, 우아앙~!”
여기에 올 때까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던 모양이다.
뭐라고 해도, 장난질로 이렇게까지 울리는건 좀 기분나쁘다.
상대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불쾌감을 주는게, 장난질의 허용치같은거니까.
“레, 레이센, 잘못했어. 울지마.”
“크앗!”
ㅃ, 빨간, 눈---
“우아앗!”
레이센의 능력으로 평행감각이 꼬여 나도 함정에 떨어져버렸다.
“아으아아.......”
“꼴 좋다!”
“뭐야 정말. 역시 낚인건가....... 아니, 아닌 것 같네.”
레이센의 눈에선, 아직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눈이 붉은 건, 능력이랑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별로 의욕이 없는 아침이다.
눈을 떴을 떄, 레이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몸은 예전처럼 상쾌하지 않았고, 이부자리는 눅눅했으며, 햇빛도 들지 않아 어둑어둑한 하늘이 저 멀리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저 부근이면 요괴의 산이려나. 레이무는 멀거니 보이는 산을 보며 생각했다. 산이 구름에 먹히듯 들어가서 제법 볼만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필시 비가 온다.
이불 좀 널고 싶었는데, 이래선 소용없겠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어머?"
무심결에 말이 튀어나왔다. 그 아래엔 유리병이 하나 놓여있었다.
-먹으라구!-
평소에 마리사가 가지고 다니는 유리병. 폭약이라던가 약재라던가 자기 멋대로 담아두는 병이지만 이번 병은 왜인지 먹을 수 있는 물건인 듯 가루로 곱게 빻아져 있었다. 아니, 먹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 지 모르니까 일단 유카리에게라도 먹여볼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무는 병을 들어 흔들어 보았다. 양은 제법 되는 듯 했다. 잘 모르겠지만, 재밌어 질 것 같다.
***
"사쿠야, 오랜만에 신사에 다녀올게. 괜찮아,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었으니까 혼자서도 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좋아. 비가 오면 자고 오면 되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마. 내가 찾을 때 까지 절대 나오지 마. 알았지? 그럼 플랑에게 밥 주는거 잊지 말고, 다녀올게!"
콰창.
최근의 아가씨는 아무래도 마리사를 닮아가는 모양이야. 이래서야 저택에 넣는 유리창을 종이로 바꾸든지, 창문을 모조리 개방시켜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겠어.
따악따악 나이프로 탁자를 두드리며 고민하고있는 사쿠야의 뒤에서 소악마가 나타났다.
"고민하시는 모습도 왜인지 안아주고 싶어지네요~ 정말, 제가 흡혈귀였다면 이런 종자 내버려두지 않을텐데. 그래서, 오늘은 무슨 고민이신가요?"
"그러네. 아무래도 이 관은 사는 사람들부터가 문제가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든 해야겠네."
그렇게 소악마의 말을 받아넘기며 유리창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요즘 모코우가 빈둥대는 것 같은데 불러서 유리라도 만들게 할까? 그정도 열이면 모래는 충분히 녹아줄테니까. 뭐 널찍하게만 녹여두면 잘라서 쓰는거야-
"파츄리님께서 차를 부탁하셨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팔랑팔랑 날개를 팔락이며 날아가는 뒷모습은 제법 귀여웠는데, 머리에 있는 저 작은 날개도 굳이 팔락여야 하는걸까? 습관성? 그것도 아니면 그걸까. 커다란 날개로 바람을 밀어내서 나아가면, 저 작은 날개로 방향을 조절하는걸까.
그런 구조라면 꽤나 뒤떨어지는 스타일인데. 여긴 인간들도 둥실둥실 원하는대로 떠다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사쿠야도 관을 나섰다. 유리를 구하러 마을에 가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