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8. 10:29 번역/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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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7. 01:01 번역/동인지
ORANGE MARY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앨리스의 나체가 아주 잠깐 나오니 그 부분 주의하며 모어레스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디쯤에서 나오는지는 감으로 알 수 있습니다.
번역 후기
우선 다른 팀에 번역을 하고 있으면서 블로그에 올리겠답시고 식자질까지 해서 처 올리는 이기적인 짓을 해서 R모팀에 쪼끔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걸 들고가서 자기가 번역한 것 마냥 희희낙락 공유할 병신들에게도 발로 번역해서 쪼끔미안합니다.
또 여기까지 찾아와서 뭐야 이 엿같은 로딩은! 하고 모어레스를 클릭했는데 효과음도 번역 하나도 안 한 재수없는 번역이라 보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어쨌든, 끝났네요.
재밌게 보셨나요!?
마앨팥인줄 아셨죠!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번역이었습니다. 그야 효과음이 저러니까 당연하지.
감동적이고 훈훈한 렝렘... 은 아니고...
...쓰기 귀찮네요. 자러갈랍니다.
2010. 2. 11. 23:08 동방
환상이 끝나는 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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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게 물든 세계에서, 소녀는 있는 힘껏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이, 린노스케. 내가 크면 네녀석을 후계자로 삼아주지!
“갑자기 자다 깨서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마리사.”
--키리사메 도구점의 주인이라구! 기쁘지! 좋아서 돌아버릴 것 같지!
“...미안하다만, 난 이대로 사는게 성격에 맞는데. 그 청혼은 거절하겠어.”
--으음. 그럼 내가 향림당을 환상향 촤고의 도구점으로 만들어주지! ......앞으로 말야!
린노스케는 후훗 하고 미소지었다. 서방이 되라고도 신부가 되겠다고도 딱 잘라 말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그 또래다워서 귀여웠다.
“알았어, 마리사. 10년 뒤에도 같은 소릴 한다면 그땐 생각해보지.”
--......있잖아
“왜?”
--.................린노스케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키리사메 가문 첫째딸이라고 생각한다만.”
--그게 아니라! .....그, 여자로써, 라던가.
“아. 그 말이었군 마리사.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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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보통 여자아이’
“늦네.”
“언제나 그렇잖아.”
나, 우사미 렌코와 메어리베리 한(발음이 힘들어서 평소엔 메리라고 부르고 있다)은, 찻집에서 어떤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안절부절 못 하며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다. 인생은 여유를 갖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법.
별로 나 자신이 자주 늦으니까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니다.
“밖은 더워보이는걸.”
“응.”
나와 메리는 냉방 좋은 찻집 안에서, 폭염을 방불케 하는 햇볕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기-다렸지~!”
십 이분 삼십 팔초 늦게, 녀석은 나타났다. 윗도리 가슴께를 펄럭여 땀에 푹 절은 상반신에 냉풍을 불어넣고 있다. 숨도 가빠보이고, 뛰어 온 거겠지.
“12분38초 늦었어 마리사.”
“이야- 미안해 메리, 렌코. 아, 일본차에 양갱 세트로 해주세요.”
웨이트리스에게 몇 번이고 주문을 되풀이한다. 화식파인 모양이다.
키리사메 마리사는 오늘도 계절에 어긋나는 흑백의 의상이다. 기껏 흰 블라우스를 입었건만 어째서 그 위에 검은 멜빵치마를 덧입는걸까. 거기다,
“언제 봐도 부자연스러운데, 그 서양인형이랑 태극모양 펜던트 조합은.”
마리사는 허리에 매달린 인형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왼손으로 팬던트 맨 위의 구형 태극도를 쥐었다.
“음양옥과 상해인형. 동서절충이라구.”
“아니, 그런 이유라도 이상해.”
애시당초 상해라면 어느쪽이라도 동양이잖아. 일중절충이다. 발음이 구려.
“마리사는 센스가 나쁜 것 뿐인데말야.”
“봐, 메리도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그야 오랫동안 부부로 지내면 의견도 알아서 일치하게 마련이지.”
“ “부부 아냐!” ”
아......
“봐, 호흡 척척이네.”
어째서 이런 때에만 싱크로하는거지, 정말.
“아, 아니라구! 지금 내 대학에선 그런거 신경 안 쓰니까!”
“레, 렌코......”
메리가 꾹하고 내 소매를 당긴다.
“뭐야, 메리!”
“다른 손님들이 보고있다구......”
메리의 시선에 이끌려 가게 안을 둘려보자 손님들이란 손님들이 죄 우리들이 하는 짓을 보고있다.
갑자기 소리지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야 주목받겠지, 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곤 앗차, 했다.
여자초등학생 둘이서 “수라장.......” “삼각관계......” 라고 중얼대는게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어디에 남자가 있냐. 말투가 남자인 녀석은 있지만.
“뭐- 그래도, 사실 좀 오래 됐잖아 너희 둘.”
“마리사가 짧은거야.”
“그런거야.”
마리사는 한 달 정도 전 우리들이 회의실을 빌려 비봉구락부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입부희망자라구” 라고 말하며 쳐들어왔다.
나와 메리는 완전히 벙쪄있었다. 어쨌든 “어째서 희망한거야” 하는 걸 물었던 것 같다.
천연 금발 소녀는 흑백 펜던트를 꾹 쥐며 이렇게 말했다.
“신사돌기에 흥미가 있으니까.”
“마리사는 비봉구락부를 뭐라고 생각한걸까.”
“전국 흉가 여행서클?”
“틀려!”
“.......그치만, 아주 부정은 못 하겠네. 쉬는 날엔 실제로 결계가 흐트러진 곳을 찾아서 여행하곤 하니까.”
“편리한 능력이구만.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구.”
마리사는 메리의 능력을 알고있다. 내 능력도 알고있다. 우리가 알려준거였다.
애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신참에게 아무 이유 없이 알려줄만큼 우리가 경계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이건 그녀와 우리들 사이의 정보를 등가교환이다.
“마리사가 가진 능력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런가? 내 경우엔 라이트한 SF 미소녀물 주인공정도밖에 안 된다구.”
“스스로 미소녀라고 말하는 부분이 참 도도한걸.”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마리사는 꽤나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오히려 안 좋다.
“초능력소녀, 라는거네. 지금은 얼마나 찾아낸거야?”
마리사는 놀랄 만큼 다방면에 걸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그 때 가지고있던 모든 능력을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마리사가 대답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해서 범위를 한정해줬다.
“일단 우선은- 날 수 있었지”
“고작 몇 미리 떠오르는 정도지만.”
“그리고, 염동력”
“상해를 춤추게 하는 정도밖엔 안 된다구.”
“물건을 만지면 이름과 용도를 바로 알 수 있는 능력도 있었지.”
“휴대전화로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까 의미는 없지만.”
“아 진짜! 왜 그렇게 부정적인건데!”
그 대부분이 인간의 지식을 능가했다.....는 건 아니고, 마술 정도밖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리사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재다능은 눈길을 끌 만 하다.
그녀와 한동안 지내보고 생각하는데, 운명이나 시공간을 조작하는 능력도 가지고있는건 아닐까 싶다.
“알았어, 진정해 렌코. 마리사도 그렇게 칙칙해지지 말고. 그렇게 재능이 많으니까 단련하면 빛나게 될거야.”
“그렇군. 실제로 화속성 마법은 그 동안 연습해서 꽤나 화력도 되고.”
“에?”
화속성 마법이라니 그런 건 처음 듣는다. 그러고보니 마법 매니아였지 이 녀석.
“아마 렌코네 집 정도는 태워없앨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우리 집으로 예를 드는거야.“
웨이트리스가 왔다.
“양갱 세트와 일본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마워요-.”
마리사는 기쁜 표정으로 쟁반을 자기 자리에 놓고 차를 젓는다.
“후우, 차가 맛있네.”
“.......그래서, 마법 이야기말인데....”
“아아, 어떻게 책을 읽다가 적당히 연습했더니, 엄청 큰 불을 쓸 수 있게 됐어. 이상.”
사귄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마리사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뭐라도 말하지만 자신에게 ‘실로 중요한 것’은 도저히 표면에 드러내질 않는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성격이다.
그건 고집을 부리거나 약한 소리를 하는게 아니라, 마리사 자신만의 미의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법을 아는 것, 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실로 중요한 것’인 거겠지.
“흐-응.”
“뭐야, 그 불만스런 얼굴은.”
“아무것도 아냐.”
그치만 난 마리사의 그런 부분을 솔직히 좋아할 수가 없다.
노력을 했으면 그걸 어필하면 좋을텐데.
적당히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주장하는 건 분명 그 사람을 위한 것일 것이다.
단순히 없던 일로 해 버려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
“레, 렌코, 마리사. 조용히 있지 말고 뭔가 말해봐.....”
“....내 이 능력은 내가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던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리사가 먼저 말했다.
“도구에 의지하고 있다는거야?”
마리사가 능력을 발동할 땐 특정한 도구를 손에 쥔다.
하늘을 날 땐 태극도 펜던트. 마법을 쓸 땐 조그마한 돌. 인형은 가느다란 실을 엮어 손에 쥐면, 실을 조작하지 않아도 조작할 수 있다.
도구가 능력을 발동하는 원인이라는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만.
“우리들이 도구를 빌려도 능력은 쓸 수 없었잖아.”
“.....도구는 계기라고 생각해. 잘은 모르겠지만.”
마리사는 고개를 숙여 목에 건 펜던트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계 저편의, 별세계에서 기인한거라던가.”
메리가 입을 열고, 난 어떤 일을 생각해냈다.
“그래, 그거야.”
“응?”
“어떻게 된 거야, 렌코.”
“경계를 찾으러 갈 예정이었잖아!”
“아- 그래그래. 그러려고 오늘 모였었지.”
우리들은 오늘 밤, 메리가 틈새를 느꼈던 어떤 장소에 결계를 찾으러 간다.
“잘먹었다. 역시 여기 양갱은 맛있어.”
“그럼 슬슬 나가볼까.”
“밖은 아직도 더워보이네.....”
나와 메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사도 남은 차를 마시곤 일어난다.
“이야- 그래도 미안한데. 지금까지 부부 둘이서 즐거웠는데, 그걸 방해해서.”
“ “부부 아니라니까!!” ”
으아-악! 그러니까 어째서 딱 맞냐고!
“마리사, 너 정말 적당히.....”
“레, 렌코......”
메리가 꾸욱, 하고 내 소매를 잡아끈다.
“왜 그래, 메리!!”
“손님들 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여길 보고있어.....”
직원들이 걱정된다는 듯 이 쪽을 보고있다.
아까 그 여자애들이 “역시나....” “저 얌전해보이는 애를 놓고 싸우는가봐.......” “분명 흑백은 저 사람 예전 연인인데......” 라고 중얼대고 있다. 멋대로 이야기를 키우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그리고 남자는 없잖아. 말투가 남자인 녀석은 있지만.
메리를 보자 얼굴을 귀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리사, 나중에 낼테니까 돈 좀 내.”
난 마리사에게 영수증을 떠넘기고 메리의 손을 강하게 잡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되면 질투편이다.
“레, 렌코, 마리사도 농담으로 한 소리니까......”
밖으로 나와도 울분을 삭힐 수 없던 나때문인지, 메리가 달래듯 말했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다구, 마리사는 모두 다 알고있다. 우리가 이렇게 얽히면 곤란하다는것도, 나쁜 뜻은 없으니까 진심으로 화낼 수 없다는것도 알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가끔은 단 둘이 있고싶다는것도 꿰뚫어 본 듯, 클럽활동을 후딱후딱 끝내고 혼자서 돌아가기도 한다. 상쾌할만큼 열받는 녀석이다.
“어-이, 렌코, 메리!!”
마리사가 뛰어왔다.
“너무하잖아. 두고가지 말라구-.”
“네가 두고 갈 짓을 했잖아.”
“그만 그만. 그보다 빨리 정류장으로 가자? 더워서 못 견디겠어”
“다음 버스는 12시 2분이라구. 앞으로 3분 정도일까. 그 다음은 8분, 그 그 다음은 17분이야.”
“잘도 기억하고 있네.”
“보통이라구. 메모도 하고 있고.”
마리사는 메모지 몇 장을 꺼냈다. A6사이즈 메모지 중 한 장엔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와 전차 시간표가 망라되어 있다. 늦는것도 생각해서 빗나간 시간도 적어둔 기록이 있다.
다른 메모에도 뭔가 그득그득 적혀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결계를, 고전총계학의 수법을 써서 분석한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도도 있지. 렌코가 있으니까 밤이 되면 길은 알게되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마리사는 확실하구나-”
“보통이라구.”
나도 메리도 동감한다. 마리사는 얄미울정도로 방약무례한 면도 있지만 노력가에 머리회전이 빠른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대학에서도 좀 더 자신의 능력을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얄미운 마리사는 대학 공부는 진심으로 하질 않는다.
“자, 그럼 언제나 하던 걸 해볼까.”
“응.”
“그러자고.”
우리들은 셋이서 정삼각형 모서리에 서듯이 늘어선다.
“에헴. 이번 비봉구락부의 활동내용은 메리가 발견한 결계의 틈새 조사입니다. 그녀가 말하길, ‘지금까지 관측한 것 중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현세와 환상이 일치할 만한, 있을까 어떨까도 모를 정도로 애매한 경계’ 라는 것 같습니다. 흥미를 부채질하는 이야기입니다.”
“영광이네요.”
“신이 아닌, 환상이 축복하는, 그 땅은.......”
셋이 말을 맞춰 대답한다.
“ “ “하쿠레이 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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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짝홀짝 조그만 소리를 내며, 하쿠레이신사의 무녀는 차를 마시고 있다.
“후우.”
변함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오후의 대기에 숨을 내쉰다.
“?”
계기는 아주 조그만, 떠다니는 구름이었다.
구름들이, 티도 나지 않게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환상향의 중심인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서 구름이, 대기가 조금씩 흘러들기 시작했다.
“......결계가?”
찻잎이 조용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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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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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배우고싶어? 넌 인간이잖아? 어째서 그런 기분나쁜 걸 배우려는거야?”
악령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눈 앞의 조그만 소녀의 대답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책에서 봤던가, 친구에게 들은 ‘뭐든지 가능해’ ‘멋있어’ 같은 마법사의 이미지에 홀딱 빠진거겠지.
실로 단락적이고 무지몽매하지만 인간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다.
어쨌든 의례적으로 질문하곤 대답을 들은 뒤 적당히 설득해서 부모에게 돌려보내도록 하자.
어휴, 또 돌아가는 길에 요괴한테 습격당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니, 귀찮다.
악령의 머리 속은 그런 생각들로 차올라있었다.
“어쨌든 마법을 마법을 배우고 나서 생각하겠다구!”
만, 눈 앞의 소녀가 대답한 건 조금 이상해서--그게 악령의 흥미를 조금이지만 움직였다.
"어, 어쨌든, 이라구?"
"그렇다네!"
"아니, 뭔가 있잖아, 멋지다던가, 뭐라도 가능하다던가, 그런."
"없어!"
너무나도 명쾌한 대답에 다리가 없는데도 악령은 다리가 풀려버렸다.
"하하..... 너, 재밌는 아이구나. 말하는것도 남자애같고."
"불만이냐!"
"불만 없어. '재밌다'고 했잖아."
"아, 그렇네."
"풉"
핫, 하는 소녀의 얼굴이 악령의 급소를 찌른 모양이다.
"......정신 차리라구, 정말....."
"너도 재밌는 녀석이구나!"
"아아, 고마워."
"마법 알려달라구!"
"......음. 인간이 마법을 수련하는건 엄청 힘들어. 보통의 마법사라도 살아있는 동안 될 수 있을까 어떨지도 몰라. 인간에게는 운동이나 공부가 편하다구. 그래도 할래?"
"할래!"
"어째서 그렇게 마법을 하고싶은거야?"
"어쨌든 마법을 배우고나서 생각하겠어!"
"푸후..... 그거, 아까도 말했어."
"아, 그랬나."
아까와 완벽히 똑같은 표정으로 소녀는 핫, 한 얼굴을 했다.
"푸핫, 콜록, 콜록, 히이, 히이, 사래들렸다... 너 말야, 너무 재밌어."
"괜찮아? 죽을 것 같은데?"
"아아, 이미 죽었으니까 괜찮아."
"죽었어......? 우와, 다리가 없어!!"
이제야 소녀는 악령의 발치를 보곤 놀라줬다.
"푸하쿠헤크힉! 시간차로 오는건가, 푸히히히히......."
"괜찮아!? 나한테 마법 가르쳐줄 때 까진 죽지마!"
"그러니까, 이미 죽었다니까, 크히힛...... 알았어 알았어, 알려줄테니까! 일단 조용히 좀 해봐,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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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후후후, 미마님, 샹하-이라고 웃는 건 처음 들었다구---
"잠깐....푸핫!"
지금 내 입과 코를 '샹하-이'라는 녀석이 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라-"
내가 콧숨과 입숨으로 날려버린 녀석은 나선을 그리며 핑글핑글 날아간다.
"소란스럽게도 깨어나시네."
포옥, 하고 타이밍좋게 녀석은 주인의 가슴에 착륙했다.
.......라고 할까, 조종하는 건 주인 본인이니 타이밍 좋고 뭐고도 없지만.
"아아...... 최고의 하루가 될 것 같다구."
난 잠에 취한 머리를 흔들었다.
같이 지낸지도 오래되다보니, 이녀석이 다음에 말할 대사는 알고있다.
[일어났으면 빨리 방에서 나가줄래? 멋대로 올라와선 멋대로 책을 읽곤 멋대로 자고, 나도 슬슬 짜증난다구.]
이런거겠지.
"일어났으면 빨리 방에서 나가줄래?"
예상대로다.
"아침밥 됐으니까, 식기 전에 빨리 와."
예상대......에, 어라. 뭔가 이상한데.
"뭐야."
" '돌아가'가 아닌거냐?"
"여긴 환상향이야. 일본어로 말하라구."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분명히 앨리스는 항상 '당장 꺼져'라고 말하면서도 자리에 앉으면 아침밥을 주섬주섬 내주는 이상한 녀석이지만, 미리 준비해 줄 만큼 헌신적인 녀석은 아니다.
"그럼, 가짜구만!"
"상해, 한 번 더 입이랑 코를 막아줄래. 9분정도면 돼."
"샹하-이"
앨리스가 한 손을 올리자 고속으로 내 안면에 상해인형이 돌격해 들러붙었다.
손으로 내 코를 막고 온 몸으로 내 입을 막는다.
"잠까, 죽어......! 자, 장난이야 앨리스, 살려줘!"
"......"
앨리스가 손을 내리자 상해인형은 천천히 떨어져나와 호를 그리며 앨리스의 손으로 돌아갔다.
"귀중한 시간을 너랑 만담하는데 써버리고싶지 않은데......"
"미안미안, 그치만, 앨리스가 이렇게 상냥했던가."
"이제야 안 거야?"
"뭣"
솔직하게 칭찬해줬더니 가볍게 흘려버렸다.
"낮엔 모리야신사에 가는거지? 이제 열시니까 빨리 밥 먹으라구."
"으, 응......"
이상하게 상냥하게 대해주면 컨디션이 흐트러져버린다.
우리들은 으르렁대는 사이가 적당한거구나, 그렇게 되새겼다.
"어이, 상해"
"샹하-이"
"난폭하게 다루지 말아줄래? 망가져버리니까."
"쓰다듬고있다구."
마력으로 하는 인형의 제어같이 섬세한 작업은 자신없다.
그치만 앨리스의 인형과 오래 투닥거리다보니(주로 인형이 덤벼드는 쪽으로), 얼추 요령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곤 해도 하나하나 미묘하게 느낌이 다른 모양이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건 이 상해인형정도고, 그것도 지근거리 한정.
"훠-이, 주인에게 돌아가라~"
팔랑팔랑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흔들하며 상해인형은 앨리스에게 돌아갔다.
"인형도 나쁘지 않네."
"......줄까?"
"엑."
"줄까? 이 아이."
앨리스가 상해인형을 내민다.
"농담이지? 제일 아끼는 녀석이잖아. 갖고싶기야 하다만."
"응, 장난. 대도둑에게 귀중품을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
"너무하는군."
"......하아."
"왜그래?"
앨리스는 옆으로 돌아 식당으로 걸어나간다.
"이런 비상식적인 녀석과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귄건지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파져서."
"인연이 발효하고 있는거야, 분명."
"맛이 위험할 것 같은데. 영양도 치우쳐있고."
"그렇구만. 난 인연보다 맛도 영양도 좋은 앨리스의 요리를 먹도록 하겠다구."
그럼, 식사를 마치면 모리야 신사다.
-{아이에서 소녀로}-
--카랑, 카랑.
"어서오세요."
"어서왔다구."
양산을 펼친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주 평범한 광경이지만 그녀에 한해선 이상해보인다.
"어떻게 된건가요, 이상한 얼굴을 하시곤."
"난 태어날 때 부터 이런 얼굴이야."
야쿠모 유카리. 경계를 조종하는 유일무이한 요괴.
모두가 그녀를 무서워하고 경배해 따랐다. --최근까지는.
"레이무 몰래 나오셨군요."
"하쿠레이에 신부로 들어간 기억은 없는데."
그녀는 양산을 접곤 가게 안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나도 탐색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에 다시 책을 읽어내려갔다.
"이거랑, 저거랑, 요거랑......"
쇼핑에 들뜬 소녀같은 유카리의 모습을 곁눈으로 살핀다.
"이 정도일까."
카운터를 돌아본다.
그녀의 오른손엔 만년필이, 왼손엔 노트가 쥐어져있다.
"사시는겁니까."
"응. 아 그리고, 이것도."
그녀는 카운터에 물건들을 두고 내 등 뒤의 책상을 가리켰다.
".......랩탑 컴퓨터?"
랩탑 컴퓨터. 통칭 '노트북'. 정보를 고속으로 계산하고 처리하는데에 사용한다.
대단히 범용성이 높은 탓에 난 이 도구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이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걸 사용했던 문명의 흐름을 알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응. 바깥 세상의 인간은 그거 하나로 세계를 만드는걸."
"그러하옵니까."
그녀는 카운터에 어느정도 돈을 두고 금액을 표시한다. 별로 불만은 없었기에 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건들을 포장했다.
"애초에 이건 당신이 알려준 겁니다."
"그랬었나요?"
"그렇다니까요."
"아아, 그러고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난 이전에, 눈 앞에있는 그녀에게 그걸 가르쳐줬다.
바깥 세계의 기술, 법률, 문화, 그 외 등등.
도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젠가 반드시 밟아야 할 순서이고, 그만큼 유용한 것이다.
그치만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 좀, 글렀어. 기억이, 지성이 압축되어가고있어."
"인간이 되어가는겁니까?"
그녀, 야쿠모 유카리는-- 경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요괴는-- 이전에 갑자기 그 힘 모두를 잃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인간이 어떤건지 아직 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괜한 걱정이네. 나도 그렇다구. 그리고 본인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철학자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해야겠네요."
우리들은 웃었다.
예전의 그녀는 끝 모를 막연함이 들 만큼의 지성으로 압도감을 빚어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깨끗이 씻겨나가서 순수하게 높은 품격을 풍긴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무방비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어떻게 된 걸까."
유카리가 고개를 숙이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전에, 여기 왔어요."
"어땠어요?"
"꽤나 정신없어 보이던데요. 그치만 미친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마지막까지 그렇겠죠, 불쌍하게도."
난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거짓말이나 과장을 더하는것도 의미없는 일이다.
"그래......"
"상상하기 전에 알아버린다는 건, 불쾌한걸지도 모르겠는데."
--카랑, 카랑
"유카리님!"
"역시, 여기 있었어."
"어라, 신기한 조합인데."
벌컥하고 문을 열곤 여우와 무녀가 침입해왔다.
"레이무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은거니 란?"
"유카리님, 농담도..... 제 주인은 유카리님 한 분 뿐."
"힘이 없는데도? 지성이 없는데도? 지금의 나는 약하고 겁많은 인간이나 다름없어.....아, 아파, 아프다구 레이무."
레이무가 고헤이로 유카리의 머리를 몇번이고 두들겼다.
"약하고 겁쟁이라 미안하구만."
"레이무는 별도야....."
야쿠모 란이 레이무 앞에 섰다.
"유카리님, 마요히가에 돌아가자구요. 첸도 유카리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거절해둘게."
"거절해두면 곤란한데말야. 너를 노리는 요괴들을 퇴치하는거 꽤 손이 많이 가서 말야."
레이무가 입을 놀렸다.
"어느정도의 치욕은 각오하고있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여기의 질서가 무너지는게 문제야.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돼."
"......"
유카리님, 부디.....!"
"하쿠레이신사로 돌아가겠어......"
유카리가 고른 건 레이무였다.
"유카리님, 저로선 뭐가 부족해서....."
"이미 나와 그대는 주종관계가 아냐. 넌 자유의 몸이라구."
"이건 제 의지라구요!"
"......틀려, 아니라구, 란."
"......네?"
"넌 긍지높은 요괴여우. 힘없는 자에게 굴할 리 없어. 지금 네가 가진 감정은 내가 이전에 건드려둔 경계조작의 잔해야. ......만에 하나 내 힘이 없어지는 때가 온다고 해도, 네가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이전에 마음의 경계를 조작해둔거야."
"그, 그럴리가......"
"지금의 나로선 경계를 풀 수 없어. 그치만 내 힘이 없어진 지금, 급속도로 원래대로 돌아가고있지. 그래,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유카리님, 장난은"
"본능에 의한 약자에의 혐오감과 고역을 했던 분노에 의해 넌 분명히 날 박살낼거야. .......나로선 그게 무섭단다. 죽는 건 괜찮아. 그치만, 네가 내게 향하는 상냥한 눈이, 모멸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는 용기는, 지금의 나에겐 없어."
"........!"
요호의 꾹 말아쥔 양 주먹이 떨고있었다.
".......가자, 레이무......아, 아파, 아프다니까 레이무."
레이무가 음양옥으로 유카리의 머리를 수 차례 때렸다.
"어째서 넌, 내가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물을 끼얹는거야."
"시끄러. 멋대로 튀어나간 주제에 사람을 방치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아무리 온화한 나라도 화가 난다구."
온화했던가. 꽤 오래 같이 지냈지만 이제야 알았다.
"돌아가자 유카리. 나도 노는게 아니니까. 방해 많았어, 린노스케씨."
"아아."
"안녕, 란."
유카리가 돌아보았다. 요호는 이제 더 이상, 뒤를 쫓지 않는다.
".......그 때 지켜줘서, 정말로 기뻤어."
입구 앞에 멈춰서서, 요호는 등을 돌린 채 그렇게 읊었다.
--카랑, 카랑
의기소침한 요호와 내가 그 장소에 남아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정말로 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절한다.
".....뭐, 그래. 유부라도 사겠나."
".....응. 가다랑어포도 부탁해. 그 애가 기뻐할테니......"
-{신앙은 덧없는 인요를 위해}-
"여, 사나에."
"어머, 마리사씨."
어딘가에 있는, 뻐꾸기 이외엔 참배를 오지 않는 신사에 비하면 여기 신사는 소란스러움이란게 있다.
내가 도착하는것과 거의 동시에 사나에는 참배객과의 용무를 끝낸 참이다.
순진하게 손을 흔드는 어린아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레이무도 이 정도만 붙임성이 있으면 참배객이 좀 더 많이 모여들지 않을까.
"참배인가요?"
"그렇게 되려나. 그렇다곤 해도, 오늘은 뭔가 평소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인간도 꽤나 있는 모양이고....."
요괴의 산에 있는 신사인데도 딱 보기에 인간이다 싶은 자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자주 들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눈에 보이는 참배객이 많은 건 알 수 있다.
"네. 뜻 있는 요괴신자들이 고민하는 인간들을 마을에서 데려오는 듯 해요."
"과연. 종말엔 신앙에 기대게 된다는건가."
"뭐라고 해도, 신앙이 느는건 좋은 일입니다."
난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상태를 관찰한다.
대부분 어깨를 늘어뜨리고 낙담하는 자와, 가슴을 펴고 나아가는 자 두 가지로 갈렸다.
'참배전' '참배후' 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과연 신, 인심에 관한 설교엔 도가 텄다는건가.
“마지막까지 기대러 오는것도, 제법 괜찮구만.”
“어라, 마리사씨는 그렇지 않은건가요?”
“난 다르다구. 인사랑, 그리고 부탁해둘 게 있어.”
“부탁할 것?”
“오- 마리사 아니야. 구제를 받으러 온겐가?”
카나코가 손을 크게 흔들며 나타났다. 온바시라도 등에 지고, 그야말로 신 100%다.
“으냠. 아니라구.”
“그렇겠지. 넌 죽어도 신앙이 깊어질 사람이 아니니까.”
“그치만 부탁은 해 두려고 왔다구.”
“어떤 부탁인가요? 알려주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음-. 연애소원.”
“뭣”
“엣”
카나코는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나고, 사나에는 반대로 다가와 흥미를 나타냈다.
“사랑사랑 스펠카드로는 떠들어대지만 진짜로 사랑을 하는건가.”
“사랑방 이야기하듯 말하지 말라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마리사씨, 조금 기다려주세요.”
사나에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세전을 향해 달려갔다.
“신나서 가버리는구만.”
“저런 부분만큼은 딱 그 나잇대 여자아이라고 생각해.”
카나코가 슬픈 표정으로 사나에의 등 뒤를 보고있다.
어릴 적 보았던 자기 어머니의 그림자가 왜인지 그 모습에 겹쳐졌다.
“저 나잇대 여자가 신을 믿을만한 세계라면, 이쪽에 올 필요는 없던거 아냐?”
“그렇지도 않아. 저 쪽 아이들은 신도 믿지만 사람도 믿지. 문자도 믿고, 음악도 그림도 믿어. 즉슨, ‘이야기’에 의지한다는거야.”
“ ‘이야기’?”
“그래, ‘이야기’. 뭐 옛날에 말하는 전설이나 신화같은거말야. 인간은 그걸 정신적인 씨앗으로 삼아서 살아가지. 바깥세상에선 과학이 꽤나 발전해서말야. 눈이 돌아가버릴만큼 많은 ‘이야기’가, 편리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퍼지게 된거야.”
“말을 만드는게 즐겁다니, 바깥세상 녀석들도 꽤나 한가하구만.”
“그럴지도. 수많은, 조그마한 이야기를 마음에 안고 저쪽 인간들은 살아가. 사나에랑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거기서는 상대적으로 신들이 이루어놓은 ‘이야기’는 작아지게 되지. 특히 신덕에 대해선 힘들지. 저쪽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말야.”
“흐-음. 팟하고 상상이 안 되는데.”
“무리도 아냐. 넌 젊고, 환상향이 저쪽과 단절된 후에 오래 지내왔으니까. ........외국과의 전쟁에서 져버린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그것도 벌써 반세기 전 이야기이고.”
“아- 대동아전쟁?”
카나코는 정말로 이상해보이는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안 거야?”
“ ‘대동아정략지도대강’이라는 서류를 아는 도구점에서 주워서 그걸 봤지. 그 외에도 전쟁 전의 책은 거기 엄청나게 많으니까 틈틈이 읽어본거고.”
“.......아아, 그렇구나.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전쟁 후 검문으로 환상으로 들어온 게 빨라져서.....”
“무슨 이야기야?”
“아니, 됐어, 아무것도 아냐. 이 쪽 이야기. 뭐 그 엄청난 전쟁으로 일본이 진 이후에 서양의 한 나라가 개입해서, 격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거지.”
“그렇구만.”
“마리사씨-!”
사나에가 돌아왔다. 그 옆엔 개구리가 한 마리 붙어있다.
“카나코-! 이미 교대시간이라구-!”
“아-, 미안미안! 그럼, 마리사!”
“응, 또 보자.”
멀어져가는 카나코 대신, 이라고 할까 어쩌다 또 보자고 해버렸다.
“자, 여기!”
사나에가 내민것은 ‘인연줄’ 이라고 가운데에 쓰인, 분홍색 조그마한 주머니 모양 부적이었다.
“헤헹-, 마리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스와코의 표정이 얼굴엔 영 안 어울리지만, 나이엔 어울리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온다.
“생긴 건 옛날이야. ......오, 카나코와 케로코의 휘장이 붙어있는걸.”
“케로코라고 하지마!”
주머니 뒤를 보니, 뱀과 개구리라고 생각되는 휘장이 횡렬로 붙어있었다.
“삼목의 신덕이 깃든, 잘 듣는 부적이예요.”
“헤-, 손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이거.”
“사나에가 어릴적부터 조금씩 만들어온거야, 그거-”
“에, 그렇게 오래된 걸 받아도 되는거냐.”
“괜찮아. 신덕은 매년 다시 넣어줬으니까.”
“그게 아니라, 사나에의 보물인거 아냐?”
“괜찮아요. 여기 올 때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주자’고 했었으니까요.”
바깥 세상에서 사나에도 사랑을 했던걸까.
신경쓰였지만 지금까지 웃고있는 사나에의 표정에, 조금 슬픈 기색이 드리운 것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묻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냐, 고맙다. 잘 받아갈께. 얼마야?”
“돈은 됐어요.”
“내가 스스로 ‘돈을 낸다’는 레어한 발언을 했건만......”
“스스로 말하지마! 그치만, 지금은 보시도 받지 않고 있으니까 마리사도 신경쓰지 마.”
그러고보니 이렇게나 사람이 있으면서도 세전을 넣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불전쪽을 보니 세전함 자체가 없었다.
“놔두면 돈 없는 사람들이 초조해하고 말야. 철거해버렸어. 덧붙여서 이거, 사나에의 제안입니다.”
“스와코님.....”
사나에가 부끄러워했다.
과시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공감했다.
“그래서 이런 광경인가. 신자도 늘겠구만.”
“현인신님, 현인신님. 부디 가르침을....”
노파가 사나에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 나이가 되도록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부디 저의 영혼을 이끌어주십시오.”
“......네, 그렇다면 이 쪽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할까요. 마리사씨,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스와코님, 다녀올게요.”
“아아, 부적 고마워.”
“힘내 사나에-”
“죽음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나에는 노파에게 말을 걸며, 함께 예배당으로 걸어갔다.
“팔팔하구나, 사나에는.”
“......그렇네.”
“어떻게 된거야, 케로코. 힘이 없잖아.”
모자에 손을 얹어 부비부비 쓰다듬는다.
“우-, 그러니까 케로코가 아니라니까-!”
양 팔을 뻗곤 풍풍 화가 났음을 표현한다.
불경하게도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나에를 이 쪽에 데려온걸,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거냐?”
“.......너,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툭툭 말하는거 아냐.”
“물어봐줬으면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스와코는 큭,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입을 다물었다.
난 토리이 옆에 주저앉았다. 스와코도 잠시 망설이다가 내 옆에 앉았다.
“......사나에, 말야.”
“응.”
“이번 일을 알았을 때 ‘지금부터 구원을 청하러 많은 인요가 몰려들거예요. 바빠지겠지만, 모두 힘을 합해서 힘내자구요. 지금이야말로 인요를 위해 신앙을 퍼뜨릴 때예요.’ 라고 했어.”
“그렇구만.”
“원망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았어. 그저 사람과 요괴를 위해 보내겠다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래 보이는군.”
“......뭐, 사나에는 훌륭하구나, 라는 손자자랑이지. 그뿐. 이걸로 이야기 끝, 끝-!”
“뭘 부끄러워하는거야.”
난 일어났다.
“생각이 전해졌으면 좋겠어.”
“신덕, 잘 부탁한다구.”
“맡겨만 둬. ......첫사랑?”
“10년 됐지.”
“첫사랑이라, 좋지. 내 쪽은 정말 오래됐지만, 지금도 확실히 기억나. 사랑할 수 있는 여자아이는 행복한거야.”
“동감이라구.”
빗자루를 띄우곤 쓱 올라탄다.
“힘내. 사랑의 마법사씨.”
“아아, 그럼, 스와코.”
“.......응!”
스와코가 있는 힘껏 웃는 얼굴을 보며, 난 기분좋게 모리야신사를 떠났다.
-{변치 않는 사람, 변치 않는 마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네, 모리치카씨도 부디 건강히.”
“고마워.”
고용인에게 배웅받으며 난 키리사메도구점을 나섰다.
키리사메 아저씨의 마음은 점점 저 허무해져갔다.
일부러 이야기를 오래 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날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치만 뭐가 어쨌든 인사는 끝냈다.
단골 분들께도 한 바퀴 돌고 왔고, 이제야 가게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볼까.
사람 수는 꽤나 줄었지만, 그래도 하는 일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귀부인은 담소를, 가게도 하고있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언제나 있던, 평화로운 마을이다.
당연한 일이다. 엄청난 진실을 쑤셔박는다고 해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엔, 쌓아가던 일상을 소화하는 것 외에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너무 큰 변화는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나는 딱 좋다고 생각한다.
“혹시,”
“네?”
말을 거는 쪽을 돌아보니 마을에선 보기 드문 사람이 있었다.
후지와라노 모코우였다. 눈 주변이 붉게 충혈되어선 조그만 상처가 얼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여기선 좀 그렇고, 자리를 옮길까.”
“응, 알았어. 나, 집에 돌아갈 셈이니까, 괜찮으면 같이 가지?”
“그걸로 좋아.”
검게 그을은 주전자에서 홍차를 따라낸다.
내가 그녀에게 판 홍차같다.
“하핫, 홍차라는것도 꽤 좋은 것 같아. 뭐, 마셔보라구.”
“좋아해주니 기쁘군.... 잘 먹을게.”
한 입 머금고 맛을 본다.
적당히 진하고, 떫은 맛이 아련하게 남는다. 좋은 맛이다.
차를 넣을 때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말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그녀가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이겠지.
“케이네에게도 권했었지만, 둘이서만 마시기도 그렇고. .......음, 맛있어.”
“그녀는 뭘 하고 있나.”
“음-”
후지와라씨는 한 박자 뜸을 들였다.
“우울해져선 틀어박혔어. 그 뒤로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해봤는데, 아무래도 안 되네. 근본 자체가 진지해서 말이지. 케이네는.”
“그렇지......”
어제 마을에서 강도사건이 있었다.
습격당한 건 카미시라자와 케이네씨.
그녀는 강력한 반 요수인지라 어지간한 상대는 압도할 수 있지만, 상대가 나빴다.
덮친 건 마을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지키는 존재로 지내왔던 그녀로서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그저 멀거니 서있었다고 한다.
함께 있던 후지와라씨가 카미시라자와씨를 감싸곤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당신, 배는 괜찮은거야?”
“아아. 한 방 맞은 것 뿐이니까 말야.”
덧붙여 그 인간은 사태 며칠 전부터 내 근처에서 상해사건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해자는 물론 나였다.
불의의 습격이라 한 방 맞은 것 뿐이지만, 나도 일반인보단 튼튼한 몸이다보니 큰 상처가 되진 않았다.
“너야말로 상처는 괜찮은거야?”
“뭐, 난 봉래인이고. 이 상처도 보통이라면 인생 끝났겠지만 슬슬 없어지고 있어. 방패로는 최적이지. 하하.”
후지와라씨는 그야말로 남의 일인 양 웃어주었다.
“저항 하나 없었다면서?”
“인간을 상처입히면 케이네가 슬퍼하니까.”
“.......이제와서 말하긴 뭣하지만, 넌 곧바로 그녀를 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해.”
“어째서? 죽여버리고 싶은 녀석이 있고 죽지않는 녀석이 눈 앞에 있다면 죽여주는게 원활하게 돌아가잖아.”
후지와라씨는 왼손으로 검 모양의 불꽃을, 오른손으로 사람 모양의 불꽃을 피우곤 사람을 베어죽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거야말로 카미시라자와씨가 슬퍼하겠지.”
“아아, 케이네도 재난이야. 설마 너랑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다니, 생각지도 못 했을 일이고.”
그 여성은 말 그대로 정신이 반쯤 나가서, 나한테 이미 망상에 가까운 편애를 가지고 있었다.
멸망의 공포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거겠지.
높은 지성과 기억력이 독이 되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
“그게 아냐. 그것도 있겠다만...... 카미시라자와씨가 뭣보다 슬퍼하는 건, 네가 상처입는 일이잖아.”
“그럴 리 없다구. 내가 죽지않는다는건 케이네도 잘 알고있고.”
목숨 뿐 아니라, 그것에 상응하는 마음가짐이 보통 사람과는 한참 떨어져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호의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위해 상처입는다.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게 여기는거야. 설령 죽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지.”
“음......”
후지와라씨는 위를 보고, 뺨을 긁으며 생각하는 것 같이 보인다.
“아-. 응, 응. 대충 알겠어. 알 것 같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분명.”
“그건 다행이네.....”
“그치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고. 말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 어쩌면 좋을거라고 생각해?”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어, 라고 말한 순간 기분탓인지 그녀의 표정이 감상에 젖은 것 같았다.
“그렇네..... 난, 너만큼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대단한 건 말해주지 못하겠지만..... 쓸데없는 생각 말고 같이 있어주면 그걸로 좋을거라고 생각해.”
“결국 그건가. 뭐, 사람도 요괴도 그런거겠지.”
“응. 그런거야.”
후지와라씨는 팔을 꼰 채 응, 응 하고 몇 차례 끄덕이더니, 찻잔을 쥐곤 홍차를 마신다.
“......”
“......”
잠깐 동안의 정숙이 있고, 그걸 끊어내듯 후지와라씨가 입을 연다.
“뭐- 나도 케이네도 어떻게든 해볼테고, 복수라던가를 생각하는것도 아니니까, 그걸 전하려고 말야.”
“그걸 들으니 안심이네.”
“내가 복수하고 싶은 상대는, 전에도 앞으로도 한 명 뿐이야......”
“그건.....”
난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 앞은, 내가 함부로 발을 들여도 좋은 곳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이 근처를 좀 돌아다닐거니까,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가 보는게 좋아.”
“으응. 일부러 시간을 내 줘서 고마워.”
“괜찮아. 그럼”
“당신도, 홍백이나 흑백같은 것 밖엔 모르지만, 소중히 대해주라고-.”
현관을 나서는 내 등 뒤에, 예상외의 말이 꽂혀서, 달깍하고 내 어깨가 쳐졌다.
-{마법사의 낮}-
-
--
---
“그럼, 마리사! 네가 마법을 내게 배우기 시작한지 1년이네!”
“네!”
“4대원소의 기초마법은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늘은 실전이야!”
“내!”
“이녀석을 혼내주고 오렴!”
WANTED!
하쿠레이 레이무
(그림)
상금 : 1페리카
죄명 : 수련하지 않음
“수련을 안 한다고!? 믿을 수 없어!”
“그렇지! 수련에 수련을 쌓아올린 네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려!”
“이런, 아무 고생도 안 한 녀석쯤은, 한 큐야! 다녀오겠습니다!”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곤 빗자루에 올라타, 위태로운 자세로 날아갔다.
“......자아, 어떻게 져서 오려나. 이걸로 포기한다면 그걸로 끝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른스럽지 못하지만 내가 해치워버릴까. 패배를 아는 건, 그 무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흔들흔들 마리사는 숲을 날고 있었다. 걷는것보다 늦다, 고 할까 솔직히 뛰는 게 더 빠르다.
그래도 빗자루로 날아가는 건 마리사의 의지이다.
“기다려라, 하쿠레이 레이무! 쓰러뜨려주겠어, 하쿠레이 레이무-! 수련해라, 하쿠레이 레이무--!”
---
--
-
“하쿠레이 레이무-. 밥 안 먹었지-.”
“......어째서 풀네임이야. 아직 안 먹었지만.”
“버섯.”
난 레이무에게 등을 돌린 채, 등에 맨 바구니를 보여준다.
안엔 방금 숲에서 모아온 전리품들이 가득하다.
“.......독?”
“나도 먹으니까 안심해. 밥 해줘.”
“별 수 없네.”
넘겨준 바구니를 레이무는 주섬주섬 받아든다.
“이만큼 있으면, 저녁밥도 만들겠는걸.......”
레이무는 기뻐보였다. 역시 평소에 잘 먹지 않고 지내는 것 같다.
한시간정도 지난 후, 버섯밥이 나왔다.
열린 문 앞엔 옅은 구름이 보이고 있다.
“저 구름, 광대버섯을 닮았는걸. 저 쪽은 웃음버섯.”
“어떻게 다른거야..... 아니, 설마 여기 들어있는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없다니까. 오늘은.”
“오늘은 은 뭐야, 오늘은.”
“너 면역 있어보이고 말야.”
“그러고보면 그렇네. 다음번엔 자신이 정상인걸 섞도록 해볼게.”
“......다음번이라니, 없겠지.”
젓가락이 멈춘다.
망했구만, 이렇게 언제나 느긋하게 놀고있으면, 잊어버리고 만다.
“믿을 수 없어...... 환상향이 내일로 끝이라니.”
“.......”
찻잔과 젓가락 소리만이 들린다.
“......빨리 먹어.”
레이무는 그 뒤로 한 번도,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 응......”
이렇게 오늘 온 것도, 레이무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싶었던건데.
-{봉래의 끝}-
“죽여줄게.”
“죽여주겠어.”
몽롱하게 빛나며 더욱 더 그 파동을 흩뿌리는 만원이, 교차하는 두 봉래인을 비춰주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질리지도 않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는거지, 경계의 요괴씨.”
“노인네는 여기서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거네.”
우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는걸 알든 모르든-- 아니, 이제 그런 건 어떻게되든 상관없고 그저 눈 앞의 적을 죽이는데에 두 사람은 즐거워하는거겠지.
유구한 시간을 지내며 세공되어 망가지지 않는 도구를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교차되는 언어에 관해선 모순된 꼴이 미묘할정도로 아름답게 조화되어 보였다.
“끝났네.”
에이린은 전투하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만월을 보고 있었다.
“응. 환상향은 하쿠레이신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축소돼. 삼라만상은 어둠으로 가라앉아. 내일 해가 가라앉을 무렵, 모든게 가라앉아, 환상향은 한 번 끝나.”
“영원의 생도, 이걸로 일단락, 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천년도 넘게 살았다면, 꽤나 재밌는 인생이었을텐데.”
“.......짖궂기는.”
에이린이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오래 산 자라면 알 거 아냐. 너무나 많은 경험은 사물에 대한 신선함을 둔하게 만들어. 기억을 끌어내어 하는 유추가 감동을 옅게 만들지. 지성이 감성을 압도해.”
“당신은 지적으로 너무 많이 그 위세를 떨쳤어. 지성은 널리 떨치는 게 아냐.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베푸는 종류의 도구야.”
“그래서,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적당적당한거구나.....”
“어라 실례. 그렇게 보였어?”
“아니.”
“월인들은, 장난이 심하네.”
“전의 전쟁에서 섬멸해뒀으면 좋았을텐데.”
“......”
천재라는건, 안좋은 장난도 일등급이다.
“봉래 [개풍쾌청 - 후지야마 볼케이노]!”
“아우읏......!”
달을 등 뒤로 한 모코우의 불사조가 달빛과 함께 카구야에게 날아든다.
“어라, 타버렸다......”
“꽤나 피곤해보이고, 져버릴 것 같네, 저 아이. 도와주지 않아도 돼?”
“공주에게도 프라이드가 있어.”
“당신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게 돕는 것 정도의 조작은 할 수 있잖아.”
“괜찮아. 저건 공주의 의지니까.”
난 달의 공주를 바라봤다.
연기를 내뱉고, 옷을 피부째 더럽히고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묘한 만족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면에 충돌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리고, 대나무잎이 흔들린다.
후지와라는 그걸 보곤, 그 뒤 한순간이나마 슬픈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떴다.
“ ‘승리를 넘긴다’는 건가. 고귀한 공주에겐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네.”
“속죄할 참인걸까.”
“자비야. 이 이외엔 사는 의미를 찾지못한, 불쌍하게 지내온 지상인에 대한 자비.”
“......그래.”
죄악감을 가진 자비를, 속죄라고 부른다.
눈앞의 천재는 당연히 그걸 알고있을테니, 반론은 무의미한것이다.
이걸 자비라고 말하는건, 종자로써의 자세이겠지.
“우동게.”
“네.”
에이린가 손가락을 튕기자, 토끼가 한 마리 장지문을 열고 나타났다.
“유카리, 우리들은 공주를 데리러 갈거니까, 이대로 쉬게 해 주겠어?”
“그렇게 하도록 할까.”
토끼는 약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이렇게 데리러 간다는걸 알 수 있었다.
둘은 툇마루 밑에 준비해뒀던 신발을 신고 천천히 주인이 떨어진 장소로 걸어간다.
“.......에이린, 멸망은 어째서 온다고 생각해?”
내가 딱 하나,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
“바깥 세상 사람들이, 환상을 환상이라고 인식하지 않게 되어서겠지.”
에이린은 내게 등을 돌린 채, 그 자리에서 바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해답을 전했다.
“대단하네, 야고코로 에이린.”
“뭘 이 정도로. 가자, 우동게.”
“네.”
여우에게 홀린 표정을 한 토끼를 불러, 둘은 또 다시 걸어나갔다.
난, 바깥 세상을 관찰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에이린은, 경험과 상상에서 사실을 직관했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그걸 해결하는게 이미 불가능하다는걸 안 것이다.
야고코로의 천재성도, 내 능력도, 주춧돌을 상대하는 한 방울 물이나 같은 것이다.
--애초에, 후자는 이미 말라비틀어져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유카리.”
“어머.”
에이린가 멈춰서선, 내게 등을 돌린 채 조그만 병을 던졌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정확히 노려서 던졌기에 떨구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이건?”
병 안엔, 무색투명하고 작은 결정들이 들어있었다.
아주 작으면서도, 거의 빛을 반사하지 않는 특이한 물질인 듯 하다.
시각만으로확인해보기엔, 너무나 애매한 존재로 보인다.
“그걸 복용했을 때가, 당신의 마지막. 다만, 그 직전에, 당신은 이전의 자신을 찾을 수 있어.”
“직전이라면 구체적으론?”
“당신 전용 약인데 시험해 볼 만한 요괴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찰나보다 영원한 순간을 맛보는 걸 기대하도록 하겠어.”
“용법용량을 지켜서, 올바른 곳에 사용해주세요.”
월인도 재밌는 인간은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
병을 손에 쥐고, 안을 확인하며 오솔길을 걷는다.
“지금 이걸 마셔도 시험해 볼 수는 없겠지......”
난 한 권의 책을 꺼내든다.
내가 이전에 인간을 대상으로 집필한 자연과학책이다.
라곤 해도, 인간의 학문체계를 거의 무시하고 있어서, 그 당시의 내가 좋아서 쓴 것 뿐이다.
“꽤나 어려운 걸 썼네.”
지금의 나로선, 모든걸 이해하는 것 따위 절대 불가능하다.
애매한 기억을 더듬어 최근 언제나 보고있던 편을 연다.
거기엔 표제로서 [하쿠레이 대결계] 라고 쓰여져 있다.
결계의 강도가 많이 줄었을 때엔, 토리이는 경계로 구성된 긴급시의 피난경로로써 기능한다.
경계의 요괴인 야쿠모 유카리에겐 그 떄의 신호가 닿게 되어 있어......
이 약을 쓸 곳은 정해져있다.
뜻 있는 자가, 그 때에 나타난다면.
‘월인의 죄와 벌’
대나무숲이 원형으로 탄 자리의 중심에 공주가 쓰러져있었다.
몇번이고 본 광경. 끝나지않는 서로에의 살인.
“......졌어.”
“네. 이제 뭐라고, 변명도 못 할 정도로.”
“넌 내 편이라구.”
이 아가씨와도 꽤나 오래 지내왔다.
인요를 구분하지 않고, 죽을 때가 되면 감상적이 된다고들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그치만 후지와라도 꽤나 고생한 것 같군요. 다음엔 분명 아가씨가 이길겁니다.”
“......농담이 꽤 능숙해졌는걸, 에이린.”
“칭찬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수년간--구체적으로는, 영야 이후--카구야는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들은 변했다.
영원정에 몸을 숨기고, 아랫것들과 교류하게 된 뒤로.
“저기-, 스승. 공주님의 치료는.......”
“그럼, 농담은 이 정도로 해둘까. 내놔봐, 우동게.”
레이센이 면목없다는 듯 약상자를 내미는걸 보고, 그러고보니 치료하러 왔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에게도 면목이란게 있기 때문에 잊은 건 아닌 척 했다.
“공주님, 알약입니다.”
약상자를 열어, 직경 5미리정도의 동그란 캡슐을 내민다.
“......”
“캡슐은 맘에 들지 않으신가요? 분말약이나 액체형도 준비는 해 뒀는데.”
카구야는 기분에 따라 먹고싶은 약이 바뀌기 때문에, 치료할 때엔 항상 여러 종류의 약을 휴대하고 있다.
“.......아니, 그걸로 좋아. 그냥, 편리해졌다고 생각해서 말야.”
“편리?”
“예전엔 달인 약도 썼잖아.”
“그렇네요.”
지상에서 손에 넣은 약재는 한도가 있다.
그 탓에 수백년전엔 지상의 의학에 기대어 내복제와 외복제를 맞춰 치료하곤 했다.
그치만 도망치는 몸인 우리로서는, 수많은 질환의 조기치료는 급선무였다.
난 사는곳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도 그를위한 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원정에 오고 나서야 겨우 본격적인 실험을 거쳐서, 뭐라 할 수 없을만큼 기쁘게도 약은 완성되었다.
봉래의 약을 만든 나로서는, 이 정도 설비가 갖춰진 곳이라면 그렇게 대단할것도 없다.
“.......후우.”
카구야가 캡슐을 마시곤, 급속도의 신진대사에 의해 몸 전체의 구멍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매번 생각하는데 이거 엄청 기분 좋은걸. 이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자살해볼까 싶을 정도로. 랄 이전에 해봤어.”
“이 전에 칼로 마구 베어댄 상처는 그게 원인이었습니까!”
“시끄러, 이나바. 조금 몸을 잘라본 것 뿐이잖아.”
“복부를 스무번이나 베어내고는 어디가 조금입니까! 어떻게 봐도 할복에 실패한 무사잖아요!”
“그랬던가.”
“.......제발 그만두세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구요. 공주님과 달라서, 저나 다른 토끼들은 불사신이 아니니까요.”
“심장이 멈춰도, 한동안은 이 약으로 소생시킬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치 에이린?”
“무리입니다.”
“어라.”
“이 약은, 무한한 재생능력을 가진 봉래인이 아니면 쓸 수 없어요.”
그건 반 정도 거짓말이다.
확실히 지금 카구야가 마신 약은 봉래인에게만 듣는다.
그치만, 어느정도는 인간이나 요괴에도 듣도록 개량할 수 있다.
랄까, 시험 단계에서 그건 이미 가능했고, 그걸 개량한게 봉래인의 약이다.
봉래인은 역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존재인 탓에, 약도 자연스런 방법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것이다.
인간용으로 이걸 배포한다면, 인간들은 어지간한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겠지.
.......그치만, 난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지상의 의학에 맞는 약으로 처방하고 있다.
종족의 그릇에 넘치는 약은, 그 종족에게 해를 끼치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후지와라의 아가씨를 전례로.
“저기, 이나바.”
“무슨 일인가요?”
“꺼져.”
“네?”
레이센이 말귀를 못알아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영원정으로 당장 꺼지라고. 너 방해야.”
“무, 뭐, 뭐, 뭡니까 갑자기! 울어버릴거예요!”
“우동게.”
“에, 네, 스승.”
레이센이 눈망울을 적신 채 나에게 구제를 요하는 시선을 보낸다.
“돌아가.”
그치만 거절한다.
“우와-앙!”
레이센이 귀를 앞뒤로 흔들며 뛰쳐나갔다.
적극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모양이지만, 저건 제법 귀엽기때문에 괜찮다.
저런 언동이 불필요하게 레이센을 괴롭히는 원인중 하나지만, 본인은 이날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에이린, 산책하자.”
“네.”
“......”
산책하자, 고 말하고선, 카구야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 업히세요.”
등을 돌리고 손을 내밀자, 카구야는 아무말없이 내 어깨에 팔을 감고 등에 업혔다.
“......어디로 갈지는 맡겨둘게.”
“네.”
어디에 갈지 정하지도 않은채, 난 걸음을 옮긴다.
만월은 요요히 빛나고, 말세인 지상을 웅변하기 위해 빛내며, 적막한 죽림을 어렴풋이 밝힌다.
내 발소리만이 조용히 죽림에 울려퍼진다.
“.......에이린.”
“무슨 일이야.”
“나, 죽는게 무서워.”
카구야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얼마전까지만해도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영원의 삶조차 하나의 여흥이라고 생각했다.
“잘됐네.”
“어째서?”
“지금 넌, 밀도높은 삶을 연주하고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을 정의할 수 있지. 죽음이 있기에, 삶을 느낄 수 있는거야.”
“넌?”
“네?”
“에이린은 어떤거야?”
“어때보여?”
“......평소같아.”
“관찰력이 부족하네.”
“뭐야 정말.”
그렇게 말하자, 카구야는 내 등에다 부비부비 얼굴을 부벼댔다.
긴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는걸, 등 너머로 알 수 있었다.
“.......에이린. 말할게 하나 더 있는데.”
“뭔데?”
“모코우가”
“안됩니다, 공주님.”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어.”
“말 안 해도, 알아요.”
이해는 하고 있었다.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지고, 외부와 교류하기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죽는 생명이 가지는 논리는, 무의미한 살인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수년간의 교류로 카구야는 인간들의 윤리를 알기 시작했다.
이번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스스로 살의가 없어지고 있는거겠지.
애초에, 영원의 삶에 지루해 죽을 것 같앝던 살의일 뿐이니까.
그치만.
“모코우는 공주님의 목숨을 노리는 적. 난 공주님을 돌보는 종자.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건 변치않아요.”
“그치만, 난 알 것 같아. 모코우도 이미”
“공주님!”
난 카구야를 노성으로 제지했다. 이 아가씨도 알고있을 터이다.
“마지막까지, 그걸 연기하는것이 뭣보다 중요합니다.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우리들은, 마음을 바꿔선 안된다.
그건 후지와라의 인생 전부를 굴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지와라, 우리들이 가능한 건, 이 정도야. 미안해.)
“....에이린.”
“네.”
“뭔가 생각하고있지.”
“공주님과 같은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카구야는 내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고는 몸을 더욱 더 밀착시켰다.
혼나고 삐진 어린애같다.
지금에서야 나이차같은건 숫자에 불과하지만, 나를 어머니와 겹쳐보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도, 의사적이긴 하지만 모성과 비슷한 감각을 이 아가씨에게 품고있다.
사람의 입장이나 관계가, 연기에 의해 상대적으로 생성된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해된다.
“........모코우랑은, 이제 못 만나겠네.”
“제가 있지않습니까.”
“......응.”
“이제야, 단 둘이서 지낼 시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들의 속죄는 끝났다.
뒤는 어두운 단죄를 기다릴 뿐이다.
“--”
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의 모습에, 뒤에 있을터인 카구야의 모습이 왜인지 겹쳐보였다.
기세등등하고, 아름다우며, 덧없는 웃음을 머금고 있다.
지상에 온 뒤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다.
왜인지 한 방울 눈물이 내 뺨을 흘러내렸다.
그 이유는, 어떤 말로 설명해도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향수의 도망자}-
“우우우, 스승도 공주도, 너무해...... 갑자기 꺼지라니.....”
표적이 경계없이 이 길 한 가운데를 걷고 있다.
이 죽림에서 짐승의 길을 걷다니 자살행위이다.
거기엔 누군가가 지나다닌 길이고, 앞으로도 자주 이용하겠지.
그렇다면 거기에 덫을 펼치는것이, 인정 아닌 토정이라는거겠지.
“돌아가서 씻고 잘래....... 우왁!”
걸렸다!!!
“아파아~ 아니, 함정?”
“횻횻횻횻.”
이 순간이 나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더한 행복이다.
내일 세계가 없어진다고 해도, 생명의 행복은 그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우, 테, 테위~”
“레이센은 마지막까지 바보구나. 우히히히.”
레이센은 이런 뻔한 도발에 약하다.
당장 튀어올라와서 날 쫓아올 게 뻔하다.
“..........우.”
“응?”
함정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어째 튀어나올 기미가 없다.
무슨 일이 있나.
(낚는건가? 뭐, 마지막이니까 물어줘도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구멍 속을 보았다.
“우...... 우, 우, 우, 우아아---앙!!”
레이센이 울어제꼈다.
“뭐야, 뭐야 정말! 스승도, 공주님도, 테위까지 모두들! 그렇게 내가 싫은거야! 우, 아, 우우우, 우아앙~!”
여기에 올 때까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던 모양이다.
뭐라고 해도, 장난질로 이렇게까지 울리는건 좀 기분나쁘다.
상대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불쾌감을 주는게, 장난질의 허용치같은거니까.
“레, 레이센, 잘못했어. 울지마.”
“크앗!”
ㅃ, 빨간, 눈---
“우아앗!”
레이센의 능력으로 평행감각이 꼬여 나도 함정에 떨어져버렸다.
“아으아아.......”
“꼴 좋다!”
“뭐야 정말. 역시 낚인건가....... 아니, 아닌 것 같네.”
레이센의 눈에선, 아직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눈이 붉은 건, 능력이랑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테위~”
날 억누를 것 같은 기세로, 레이센은 갑자기 안겨왔다.
“으악, 뭐야, 끌어안지마, 기분나빠. 놔-!”
“싫어.”
“뭐야, 그런 취미인거야?”
“그럴지도.”
“크악-!”
화를 내 봐도, 오늘은 레이센이 도통 두려워하질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레이센.”
“상관없어.”
겨우 난 레이센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보통, 이럴 땐 레이센이 내 얼굴에 가슴을 묻는 형태가 되어야겠지만, 내 몸집이 작은 탓에 별 수 없다.
“끄응, 이유를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날 내버려두곤, 레이센은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도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예쁘장한 보름달이 있었다.
“.....레이센.”
“왜?”
레이센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마지막이고, 물어봐도 될까.
--아니, 물어봐야한다.
난 왜인지 그렇게 생각했다. 레이센의 상태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까.
“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기로 좋아.”
“--그래.”
난 그 한 마디로 모든걸 이해했다.
“미련같은거 없어. 뭔가 우리들, 내일 죽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전쟁을 해 와서 그런가.”
레이센은 여기가 좋은게 아니라, 여기로 좋다고 한 것이다.
“정말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하하...... 팍 오질 않는걸.”
토끼는 달빛의 광기에 취해, 더 많은 눈물을 붉은 눈동자에서 쏟아낸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레이센은 진짜 군인에 안 맞아.”
“.....어째서?”
“실수투성이에, 도움도 안 되고, 주변에 휩쓸리기 쉽고....... 뭣보다, 감정을 너무 내보이는걸.”
“그런 적 없어. 그런, 그런.....”
표정이 일그러지는걸 버티지 못한걸까. 레이센은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 순간부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레이센, 미안해. 나로는 큰 도움이 못 되서.”
“.......”
“레이센이 온 뒤로 매일이 즐겁고, 실수투성이에 덜렁대는 레이센이 정말 좋았어.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렇게 말해주는 것 뿐.”
레이센의 눈에서 점점 더 눈물이 흘러넘쳤다.
정말로 이 토끼는 단순하다.
이렇게 엉망인 대사에도 감정이 폭발해버리니까.
“테위, 그걸로 충분해. 고마워.......”
이렇게 솔직해지면, 나도 조금 눈물을 흘리게 되지 않나.
“......우는거야?”
“우는거 아냐!”
난 속이기 위해, 또 한 번 달로 눈을 향했다.
달은 예쁘장하구나. 나도 한 번 가보고싶었다.
오늘 밤은 보름.
아름답고 예쁜, 둥그런 보름달.
상편입니다.
상중하 세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는 받지 않았습니다.
출처는 창상화입니다.
중, 하편은 가까운 시일 안에 올라갑니다.
사실 번역은 다 했는데 한 번 훑어보기 귀찮아서 일주일 째 방치중입니다.
ㅈㅅ...
2009. 9. 20. 23:27 동방/시지?
이어지든 말든 신경쓰지 마시지?
혼자서 생각하다 괜히 화가 난 앨리스는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왔다. 몇 번이고 그 약재는 쓰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도 들은척도 안하고 사용해버려서 날아가버린 그 애의 집이 멀거니 보였다. 뭐 저 상태라면 며칠동안은 집을 고치는데에 전력을 다하시겠지. 흥.
레이무에게라도 가볼까, 그 아이는 최소한 사람 말은 들어주니까.
그녀의 발걸음은 신사를 향하고 있었다.
"의외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가을인데 구름이라니,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숲 전체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습도가 높아서 인형들도 옷도 금세 눅눅해졌지만 사실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습도는 높은데도 안개가 없어서 오히려 오랜만에 시원한 느낌이다. 밟히는 풀들은 아픔을 호소했지만 어차피 여기에 길같은게 날 만큼 사람이 많이 다니는건 아니니까. 적당히 인형들로 풀을 베며 나아간다.
사실 굳이 신사에까지 갈 필요는 없었지만 이 기분으로 집 안에 머무르면 또 다시 잠들게 뻔하다. 단지 인형을 만들다가 이유없이 막혔을 뿐이다. 그리고 받은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는 것 뿐이다. 그 뿐이다.
"어머.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의외네?"
아니, 의외는 제가 할 말이거든요. 여긴 내 앞마당같은 마법의 숲이고, 당신은 평소에도 어딜가나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하긴 하지만.
내 말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너무 그러지 말고, 우린 동지잖아? 레이무에게 연인을 빼앗긴."
아뇨 전 아직 아니거든요.
이런 사람 귀찮아. 무시하며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가자, 내 옆으로 둥실둥실 뜬 채 그녀가 따라왔다. 뭐가 그리 즐거운건지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은 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굴을 흘끗 보면, 제법 예쁜 얼굴이다.
"왜애-? 반했어? 얼굴을 흘끗흘끗 보고-"
"무, 무슨 소리예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바보같아, 정말, 뭐야 저 사람!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상대를 해 주지!
도망쳐야겠다. 난 발걸음을 빨리해서 떼어놓기로 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아 기분나빠. 둥실둥실 날아오니까 인기척을 못 느껴서 불안해지잖아.
내 걸음이 뜀박질이 될 무렵, 신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2008. 8. 17. 12:08
백업겸 슥슥. 귀신이 데려간걸까?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08. 6. 19. 19:12 카테고리 없음
걍 시간도 없고 귀찮으니까 일상끼적
2008. 6. 1. 09:42
편지지 안에 들어있던 조그만... 01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08. 3. 23. 15:16 동방
[단편] 백합꽃 질 적에
마법의 숲에, 고요한 바람이 내려앉았다.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녀는 인형사가 살고 있는 집의 벨을 눌렀다.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행동은, 인형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머, 희한한 손님이네."
집주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앨리스를 따라 그녀는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두고 오라고 말 했지만,
무시한 채 들고 들어갔다.
방 안을 둘러보니, 예전과 크게 바뀌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성격처럼
방 안은 깔끔했고, 세심하게 끓인 차는 최상의 맛을 선사했다.
무언가 이런저런 대화를 했지만,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다시금 바람이 불었고, 마법의 숲엔 또다시 앨리스 홀로 남아 어두운 밤을 지켜가고 있었다.
새로이 바람이 머문 곳은 서양식의 대저택이었다. 외관에 맞지 않는 넓이를 가졌던 예전과는 달리,
이젠 보이는 만큼의 넓이만을 가지고 있었다.
즉, 엉망으로 커져버렸다.
공사라던가 소란스러운걸 꺼렸던 저택의 주인은 자신이 지낼 곳을 새로 만들어 그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언젠가는 인간도 머물었던 이 건물엔 이제 책과 마녀, 그리고 소수의 요괴들만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그다지 않의 분들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조용히 바람은 불었다.
이 곳은 언제나 그렇지만, 정원이 너무 넓다.
관리하는 사람은 고생이 많겠지. 그 정원사는 최근 나이가 찬 티를 풀풀 풍기며 마을 남성들에게
일등 신부감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치만 내 생각에 그건 무리일텐데. 한 자리 다소곳하게 앉아있을 줄 모르는
이 정원과 정원사의 주인은, 식탐 만큼이나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니까.
아니,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네. 여러가지 의미로.
망령난 공주님... 아니 망령공주와는 술 두세잔을 주고받았을 뿐, 역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지만, 그건 신뢰도 안 가는 장난에 불과하겠지.
정원사 아가씨와는 제법 이야기가 통했지만, 공주님 시샘이 워낙 심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정원사의 말을 들어보니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자가 최근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백발 미소년이 있다고 한다.
그래, 거기도 벌써 그런 시기인가?
생각난 김에 죽림으로 향했다.
그다지 내가 그들에게 원할 것도, 해줄것도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자주 보는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면 차 한잔은 얻어먹겠지.
별로 차가 먹고 싶은건 아니지만.
은신처는 다른곳의 배는 평화로웠다.
예의 약사와 그 제자가 날 맞아주었고, 양쪽 모두 거의 변한 모습은 없었다.
제자는 또 언제나처럼 토끼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있었지만, 아무려면 어때.
여기의 주인이라는 공주는 볼 수 없었다. 뭔가 신기한 걸 가지고 노는 듯 하던데. N□S라던가?
아무리 나라도 이만하면 지쳐, 그렇게 생각하고 언제나의 그 곳으로 돌아왔다.
안에서 날 반겨준 건 도깨비 꼬맹이였다.
"뭐야, 또 한 잔 하러 온 건가, 자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그 말투에, 나는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귀엽기도 하지.
"좋아. 한 잔 부탁할게."
그녀는 자신이 마시던 잔, 그러니까 보통은 쟁반 또는 대접이라고 부를 법 한 것을 넘기곤 시원스레 들이부었다.
술의 향기가, 코를 지나 뇌 전체를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아직도 기다리는거야?"
캬아-
벌컥벌컥 시원하게 잘도 술을 넘긴 스이카가 말했다.
"아직도라니, 얼마나 됐다구."
반박했다. 한숨을 푹 내쉰 스이카가 말을 이었다.
"하아 - 그 앤 떠났어. 언제나처럼 하늘하늘하게. 붕- 하고."
"시끄러. 그럴 리 없어."
한 대 콩, 쥐어박았다.
그치만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
그녀가 만들고 지탱하는 결계가.
숨 쉬는 것 처럼, 존재감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게 느껴진단말야.
대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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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은 맞춰보세요.
화자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으니까. ...아니 노력했지만 어떨지.
열감기 있을때 쓴거라 별로 제정신으로 쓴 것 같진 않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셔도 좋고.
여기까집니다.
- 奈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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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는 말했다.
"하, 그 녀석이 먼저 갈 줄이야..."
앨리스는 말했다.
"조금은 닮은꼴이었는데. 섭섭하지."
레밀리아는 말했다.
"운명이니까. 믿을 수 없지만."
사쿠야는 옆에서,
"세상일 알 수 없다지만..."
하고 거들었다.
파츄리는,
"알 바 아냐."
그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책에 얼굴을 박았다.
메이린은 뭐라고 했지만, 기억나지 않아.
요우무는, 울었다. 흐느끼며 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유코는 내게 말했다.
"적어도 혼령중엔 못 본 것 같은데. 삼도천도 건너가지 않은 것 아냐?"
케이네는 병석에 누워있었다.
"아마 저도 곧..."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대기, 끝.
1. 공기.
2. 기다림.
이 글을 제자인 아스린님께 바칩니다.
2008. 2. 4. 13:31 동방
- 연정(戀情) - 2. 새해.
"벌써 3개월이나 됐네, 사나에가 온지도."
멍하니 앞산을 보며 레이무가 중얼거렸다.
시간 참 빠르네.
"어머, 벌써 그렇게 됐나요? 낙엽보면서 투덜대던 레이무씨에게 나타났던게 엊그제같은데."
레이무씨의 혼잣말에 놀라선 대답했다.
벌써 그렇게까지 됐나?
"그래... 그래서, 여기엔 좀 익숙해졌어?"
"음.. 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 같아요. 거기에 밥도 맛있구요, 에헤헤."
여기에서 식사해보고 알았지만, 카나코님과 스와코님은 참 비위가 좋은 분들이었달까.
"넌 절대 부엌엔 가지 마. 절-대로."
레이무는 사나에에게 신신당부했다.
냄비를 태워먹기도 했고, 조미료를 잘못 넣기도 했지만 레이무의 찻잔을 깨먹은건 제법 큰 실수였지.
"에헤헤..."
사나에는 부끄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치만, 이런건 좀 익숙해지기 힘들지?"
다시 앞을 보며 갑갑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사나에 역시 그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봤다.
"예, 뭐... 그치만 어떻게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 " 하아... " "
툇마루에 앉은 무녀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연말이었고, 마리사는 여전히 건재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거겠지. 신사는 과한 음주로 뻗어버린 인요들로 가득했다.
하늘에선 부활을 예고하며 강렬한 노을을 뿌려 지상의 눈들을 물들이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
그 마지막 태양을 보겠다고 모여든 마리사 외 다수의 요괴들. 정작 그 노을아래서 오징어포마냥 퍼져있는걸 보면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레이무는 일찌감치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울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에 뜨는 해라도 보겠다고 성화겠지.
푸른 무녀도 사실은 이런 생활에 길들고 있었다.
사나에의 환영회, 월동준비를 하려고 모였던 날, 동지섣달 등 수많은 이유로 마리사는 심심하면 판을 벌렸고, 그 위치는 열에 아홉 하쿠레이 신사였다.
레이무는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으로 준비했고, 사나에 역시 그 축제들을 받아들이며 어울리고 있었다.
"술, 먹고싶지 않아?"
"예 뭐... 먹고나면 괴롭기만 해서..."
묘하게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한 듯, 얼굴색이 나빠졌다.
그런 사나에를 보며 레이무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지금까지 몇번 죽을뻔했지."
"에헤헤..."
그 말대로였다. 사나에가 이렇게까지 축제에서 오래 깨어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리사를 시작으로 술을 권하는게 한둘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거절하지 못하곤 그녀도 시체놀이에 합류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 누가 권하는 술도 거절하며 카나코의 술잔마저 받지 않았다.
"새해니까, 절대 마시면 안 돼. 하쿠레이의 무녀인걸."
이해는 잘 되지 않았지만 사나에는 긍정했다. 아마 모시는 신에 관한 규율이라도 있는거겠지, 그렇게만 생각 할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일에 휘말릴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노을은 사라져,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레이무가 준비한 모닥불... 이라고 보기엔 조금 큰 나뭇더미에 모코우가 불을 붙였다.
마스터 스파크로 불을 붙이겠다며 난동을 피우는 마리사덕에 조금 고생했지만, 앨리스의 도움으로 마리사는 조용해졌다.
모코우의 손을 빠져나온 불꽃은 순식간에 장작더미 전체에 옮겨붙어 신사 앞을 데웠다.
신사의 축제.
모두가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곳에서, 순간의 정적과 함께 타오른 강렬한 불꽃은 마리사의 가슴에도 옮겨붙어 버렸다.
공허할정도로 강하고 뜨겁게 타오르는 자신의 가슴 속을 주체하지 못한 마리사의 옆모습은 지켜보던 앨리스에게 란의 그것과는 다른 강렬한 불안감을 주었다.
빗자루를 강하게 움켜쥐는 마리사의 모습에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한 앨리스의 손이 마리사를 저지하려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이 마리사에겐 신호탄이 되어버렸다.
"잠깐만, 마리사!"
신사 전체에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폭죽소리가 앨리스의 외침을 묻어버렸다.
아마도 스이카의 그것이겠지.
새로이 몰두할 무언가를 찾아 빛나는 마리사의 두 눈동자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절망감에 빠진 앨리스의 눈동자.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움직이려던 마리사는 그제서야 자신의 어깨에 놓인 앨리스의 손을 느꼈다. 무언가를 말하려 마리사를 잡고 서 있는 앨리스에게 마리사가 말했다.
"미안, 앨리스. 급하게 생각난게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럼 나중에 봐!"
앨리스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걷어낸 마리사는 한쪽 다리를 빗자루에 걸텄다.
"잠깐 마리사, 내 말을 좀...!"
언제나처럼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눈동자를 한, 은하수같은 금발을 지닌 그녀는.
마리사가 사라진 하늘을 허탈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리꽂으며 고개숙인 앨리스의 시야에, 친근하면서도 장소엔 어울리지 않는 연보라색 잠옷이 눈에 띄었다.
"답답하긴."
"무슨 소리야, 지금 난 말싸움하고 싶은 기분 아냐."
"저 도둑쥐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거야?"
파츄리의 발언에 앨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전히 입은 험하네. 대체 뭐가 궁금한건데?"
"그냥, 호기심."
갑갑한 마음에 앨리스는 후욱, 한숨을 내쉬었다.
묵묵히 파츄리가 기다리자, 토해내듯 앨리스가 말했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그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아 나설때의 휘날리는 그 금발이 좋아! 사고치는 실수투성이 손끝이 좋다구!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은 그 송곳니가...
그리고, 그 시원스런 자유분방함이... 좋아."
강하게 외치던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어 마지막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변했다. 그 말을 들은 파츄리는 한심하다는 듯 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아, 그러니까 네가 마리사를 못 잡는거야."
"무슨 소리야?"
발끈하며 앨리스가 화내자 파츄리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느긋하게 돌아섰다.
"네가 한 말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그새 잃어버렸나, 혹시?"
휭하니 그녀는 돌아갔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앨리스는 자신의 말을 곰곰이 되씹기 시작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앨리스는 결론지었다.
어떻든 상관없어.
마리사가 거기에 존재해주는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아무리 단점이 많아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고 해도.
난 오직, 내가 사랑하는 너만을 이해.
네가 날 버리는게, 가장 큰 두려움.
2007. 12. 22. 11:09 동방
- 연정(戀情) - 프롤로그.1
신이 없던 어느 계절에,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가을이었다.
"이만 가볼게. 귀찮은 걸 떠안고 있느라 고생했어."
"누구 옆에 있든 귀찮은 녀석이니까 뭐. 내가 잠깐 대신한거겠지."
"어이.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너희들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그래. 평화롭다고 해 둡시다 우리.
평화로운 하쿠레이 신사 앞에서 마리사와 앨리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빗자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레이무는 그 둘을 배웅하고 있었다.
별달리 특별한 것 없이, 특별한 일 없이 - 작년즈음엔 날씨가 말썽을 부렸지만 -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할 일 없던 마리사가 쳐들어와 신사를 헤집어놓고, 앨리스가 따라와서 그녀를 챙겨 돌아간다.
언제나처럼의 하쿠레이 신사였고, 언제나처럼의 환상향이었다.
조금 조급해보이는 앨리스가 마리사를 보채는 통에 레이무는 방 안을 치우지도 않은 채 그들을 배웅했지만,
그다지 특별한 이유로 그러는건 아닐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저- 그걸거다. 앨리스니까.
멀어져가는 둘을 멍하니 바라보던 레이무는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낙엽좀 안 치워주려나..."
레이무의 등 뒤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낙엽, 치워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데요."
예상치못한 대답에도 놀라지 않고 레이무는 천천히 돌아섰다.
바람에 흩날리는 흑발, 무녀복 특유의 남는 소매, 그리고 그녀의 얼굴-
그 모습을 바라본, 예상치 못했던 방문자 역시 흑색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이무씨. 오랜만이네요?"
"응...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연회만 열리면 술통 챙기는게 누군데?"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잖아요."
웃으면서도 레이무의 말을 받는 그녀는 샤메이마루 아야.
단발에 묘한 치마, 그리고 수첩을 꽂은 그녀 특유의 블라우스는 별 특징 없는 깨끗한 맛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소녀 둘.
한 소녀는 긴 초록색 머리를 옆으로 묶은, 청색 무녀복 차림.
다른 한 소녀는 흰 단발에 큰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엔 동그란 방패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무기에 시선이 닿은 레이무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안녕하세요."
초록색 머릿결을 가진 소녀의 목소리가 신사 내에 울려퍼졌고- 레이무는 말했다.
"누구시더라."
"..."
"..."
"...기, 기억 못 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왜 있잖아요, 산 위에 있는 신사. 거기 지내는 사나에씨예요."
당황한 듯 아야가 부연설명을 했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레이무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아아- 그래그래. 응. 그래서 뭐 어쨌다고?"
"여기서 살고싶대요."
아야의 말.
"받아주시겠어요 레이무씨?"
덧붙이는 사나에의 말.
...레이무는, 눈의 초점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