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9. 21:15 동방
생일 축하합니다! 축설이예요.
"날씨가 좋네..."
멀거니 떠있는 구름을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 무심코 중얼거렸다.
구름은 묵직한 솜이불같은 형태가 아니라 솜사탕같다고 할까, 폭신폭신- 할 것 같은 느낌으로 흩어져 있다.
햇볕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살짝살짝 가려주기도 하고, 내 눈꺼풀을 덮어주기도 해서 정말 좋아는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다가, 자리가 저린 것 같아 쪼그려앉았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눈 앞에 고기만두가 나타나 있었다.
사쿠야씨가 가져다 둔 걸까, 어느틈에. 혹시 꿈은 아니겠지?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적우적.
입 안에 만두를 한입 두입 넣자 퍼지는 따스한 촉감, 그리고 만두피의 부드러운 결.
살아있길 잘 했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 같다. 상냥한 날의 사쿠야씨는 조금 사랑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본인에게 말해봐야 무참히 무시당하고 끝날거라는건 알고있다. 알고 있으니까 말하는거라고 하면 조금 비겁한걸까?
열심히 베어물고 있으려니 문득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빙수가 먹고싶은데."
그렇게 문득 중얼거리곤, 남은 만두를 마저 먹어치웠다.
냠냠. 배가 부르니 졸린걸...
그렇게 낮잠을 잤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사쿠야씨가 와 보지 않았다.
아가씨도 날 괴롭히는데에 식상해진건지 일일히 사쿠야씨에게 지적하지 않는다.
아니, 식상해졌다곤 도저히 어떻게 해도 생각할 수 없다는 건 나 역시 알고있다.
꽤 편한 근무였다. 마리사도 오지 않았다.
===
언젠가의 일이다.
"메이린, 오늘도 자고있니?"
문 안쪽에서 그런 말소리가 들리고, 내 옆으로 사쿠야씨가 걸어나왔다.
"에, 아- 아뇨아뇨. 지금은 맨정신이예요."
"'지금은' 이라니? 아까는 잤다는거야?"
앗차.
눈꼬리가 올라간 사쿠야씨가 손가락으로 상완을 톡톡 두들기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난 재빨리 해답을 떠올려, 그대로 말로 옮겼다.
"그야 사쿠야씨가 와 있을 때 제가 졸고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푸샥.
이마가 뜨끈하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오는 고통으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아니 이미 쪼개졌구나.
"아파요, 사쿠야씨."
"근무시간에 자는건 내가 보든 안 보든 안된다는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걸까 싶어서 머리 속을 좀 들여다보려고.
메이린이니까 머리 안 좀 보여주는것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만둬주세요. 아무리 저라도 그건 무립니다."
"글쎄, 90도정도만 베어내서 안을 관찰하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지 않습니다. 저도 일단은 소중한 생명체라구요."
나이프를 뽑아내며 모처럼 진지하게 대답해봤더니, 사쿠야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눈꺼풀이 바르르 떨었다.
살짝 고개를 돌렸던 사쿠야씨가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별로 다른 건 아니고, 오늘 오후에 아가씨가 단독으로 외출하실 예정이야.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지 않겠어?"
"예? 정말요? 진짜? 사쿠야씨 어디 아파요?"
푸샥.
"아파요..."
"모처럼 기분내서 데이트 신청을 하면 꼭 초를 쳐. 올 거야, 말 거야?"
"가죠, 물론 가죠. 당연히 가죠!"
나이프를 뽑아들곤 덥석 사쿠야씨에게 매달리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쿠야씨, 무슨 일이예요?"
내 물음에 사쿠야씨는 내 팔을 뿌리치고는 다시 양 팔로 팔짱을 꼈다.
"그럼 이따 봐. 난 가볼테니까."
그렇게 말하곤, 또각또각 관 안으로 돌아갔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쿠야씨가 집을 나갔다.
그러니까, 느낌으로 치면 일주일 쯤 된 것 같다. 만두를 먹은 날 다음날즈음- 부터 점심을 가져오는 메이드가 바뀌었다.
보통 사쿠야씨는 바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일주일정도 계속되어 궁금해진 나는 오늘 온 메이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응? 대체 왜 사쿠야씨가 내게 오지 않는거냐구?"
나의 침착한 질문에 그녀는 도시락을 든 손으로 얼굴을 가렸기에 나는 조금 상처입었다.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무슨 일 있는거야?"
나는 다시 한 번 메이드에게 침착하게, 정말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며 내게 말해주었다.
요 일주일 간, 사쿠야씨가 주방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씩이나? 무슨 일로 다른 메이드들에게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거지.
급한 용무가 생겨서 멀리 가 보는건가?
그렇지는 않을텐데. 일전 춘설이변에는 귀띔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갔었고,
그 뒤로도 장을 볼 때엔 문지기라는 내 직함을 고려한 것인지 매번 이야기를 하고 나갔다.
의무를 강요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권리 역시 챙겨주는것이 사쿠야씨의 성격이다.
급료 이야기는 별개. 애시당초 그건 사쿠야씨가 아닌 아가씨와의 이야기이고,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사쿠야씨의 행방을 알만한 관 안의 여러분들께 물어보도록 할까.
한참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재밌는지, 그녀는 입 아래를 도시락 뚜껑으로 가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응. 알았어. 괜찮아. 먼저 들어가 보라구."
"알겠습니다. 그럼 마저 수고하세요, 메이린 대장."
뭐, 어쨌든 우선은 교대시간까지 기다리자.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긴 하품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
"수비대장님, 교대시간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엇차, 졸고 있었는지 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음? 아, 아아. 응. 아후, 찌뿌둥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며 상대를 보자, 붉은 단발의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내 교대 상대라는거지.
몸을 풀고 있자,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요즘들어 부쩍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맨날 졸고있으니 걱정한건가.
"아냐아냐, 신경쓰지 마. 그런거 아냐. 그보다 걱정을 끼쳤다니 미안하게 됐는걸."
그저 사쿠야씨가 없다보니 주체를 못 하고 자는 것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섭섭했다. 사쿠야씨는 말도없이 정말 어디로 간 거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앗차, 표 내면 안 되지. 문지기 수비대원들에게 새어들어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이상한 소문이 구르고 굴러서 나한테 도달할 즈음엔, 환상향이 멸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래, 어쨌든 이 일은 천천히 알아봐야겠어.
어디부터 해야할지는 뻔하다. 이 관 안에서 제대로 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건, 마지노선이 플랑도르 아가씨라면 세네명 정도니까.
우선은 말이 가장 잘 통할 것 같은 상대에게 가볼까.
"저기, 대장님?"
"아? 응?"
한창 골몰히 생각하는 아까의 단발이 말을 걸어왔다.
"인수 인계를 해 주셔야 합니다."
아차. 정신을 다른데에 팔고 있다보니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아- 그렇지 참, 그래그래.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평소와 같음. 요정은 호수 건너편에 있으니까 이 쪽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게 경례를 하고 돌아서선 앞쪽을 주시했다.
저 녀석도 성실한 성격인 건 좋지만, 가끔씩 지친 모습을 보여 중임을 맡기기엔 무리가 있는 녀석이다.
분명 제멋대로 무리해놓고 뻗어버리겠지.
"응, 수고해~"
그런 한 마디만 남기고, 난 문에서 떠났다.
===
사쿠야씨와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근무도 집중이 안 되고 시간도 안 가고, 그야말로 정신과 시간의 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아... 마리사라도 오지 않으려나. 오늘은 너무 심심한걸.
아니지, 마리사가 나타났다간 관이 대파될테고, 그럼 사쿠야씨가 바빠지게 되니까 데이트를 못 하게 되는 거 아냐?
안 되지, 안 되."
축축 처지는 몸을 가다듬고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시야에 무언가 잡혔다.
그 무언가는 점차 커져, 한 눈에 알아보게 될 무렵엔-
"마리사!?"
"지나간다!!"
안돼, 징짜 앙대! 이러지마,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줘 마리사.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누렇고 까무잡잡한 녀석들은 이래서 안 돼!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자세를 잡고, 뒤로 뺀 왼 다리와 앞쪽의 오른 무릎, 허리에 힘을 넣고,
온 힘을 이 일격에!
"[치격] 대붕추격권!"
"어이, 잠깐!?"
확실하게 손 안에 감기는 이 감각은, 맞았다!
"뭐야, 이 파워는? 중국의 위력이으아으이에----"
이상한 말꼬리와 함께 마리사는 저 멀리로 날아갔다.
오늘의 마리사는 싱거운걸.
느긋한 자세로 몸을 풀며, 몸을 돌려 관 안쪽에 검지와 중지로 브이를 날렸다.
언제나처럼 비웃고 창가에서 사라지는 사쿠야씨가 없다는 걸 깨닫고, 조금 쓸쓸해졌다.
"...후우."
날아가는 마리사는 호수에 빠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아까 치르노가 수영하러 호수에 들어갔었는데, 괜찮을까?
===
사실 사쿠야씨가 사라질수도 있는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권리도 없고, 그에 대해 알려야 할 의무 역시 사쿠야씨에겐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관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녀를 찾는 것 역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처사는 좀 심하지 않나요."
난 창문틀에 손만 걸친 채 창 밖에 나와있다.
여기는 복도 창틀.
어째서 이렇게 돼었는고 하니.
"귀찮게 날 쫓아다닌 네 문제야. 난 너 때문에 책에 대한 집중력을 33% 이상 잃었고,
그로 인한 효율손실을 막기 위해 이동하는데에 또 시간을 소모했어.
그런데 넌 그 행위마저 방해했지.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어?"
"그야..."
그렇다고 사람을 창 밖으로 날려버릴 필요는 보통 없지요.
아니 그 전에, 대답 한 마디 시원하게 해 줬으면 좋잖아.
난 창문을 기어올라 복도로 들어왔다.
"콜록, 콜록. 기관지에 안 좋으니까, 내 앞에서 옷을 터는건 이제 그만두지 않을래?"
그녀는 책으로 입을 가리며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정말, 이렇게 된게 다 누구 탓인데.
"알겠어요, 알겠다구요. 다 제 잘못입니다. 그치만 대답해주실 순 있잖아요. 사쿠야씨는 대체 어디로 간거예요?"
난 멀찌감치 떨어져 옷을 털고는, 그녀에게 재차 질문했다. 그러자 그녀는 표정을 풀고 내게 말했다.
"몰라. 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갔으니까 난 알 방법이 없다구."
아무래도 정말 모르는 것 같으니 더 물어도 시간 낭비일 것 같았다.
여기에서 답을 얻는걸 포기한 나는 달리 질문할만한 사람을 물었다.
"그럼 이거라도 알려주세요. 레밀리아 아가씨는 언제쯤 일어나실까요?"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레미 변덕이 하루이틀도 아닌걸."
들어오던 길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가씨는 일주일가량 전부터 잠들어있는 듯 하다.
역시, 아가씨는 무언가 알고있는거구나.
그렇다면 걱정없다. 사쿠야씨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건 아닐테니까.
===
"사쿠야씨? 사쿠야씨?"
의자에 앉아선 눈을 감고 머리를 끄덕끄덕 숙이고 있다. 모처럼 불러낸 사람의 자세가 아닌 걸.
"아, 으음... 왔어?"
평소엔 이럴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사쿠야씨 건너편에 앉았다. 기왕 앉아서 잘거면 엎드려 자는게 편한데.
이렇게- 턱을 팔로 받치고-
"근무 내내 자면서 여기 와서도 잘 생각이야? 대체 하루에 잠을 몇 시간이나 자야되는거야? 20시간? 23시간? 영영 잠들어버리는게 어때? 식충이."
"네 네- 저 식충이에 잠탱이예요- 그러니까 우리 밥 먹어요-"
늘어져서 그렇게 대답하자 사쿠야씨는 미간을 좁히곤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어휴, 정말..."
그렇게 한숨을 쉰 사쿠야씨는 이마를 쓰다듬으려는 건지, 오른손을 내 얼굴로 가져왔다.
"에헤헤- 이히엑!?"
따악! 나조차도 경쾌하게 느껴질만큼 시원한 소리가 내 이마에서 나고, 사쿠야씨는 건너편에서 얼굴을 찡그리곤 오른손을 털고 있었다.
"아파요, 사쿠야씨잉~"
이마에 엄청난 충격이 와서 골이 흔들리는거같아! 아파! 정말로 아프다.
"나도 엄청 아파 지금."
그렇게 말한 사쿠야씨는 중지를 쪽쪽 빨고 있다.
중지만 아니면 아기같아서 귀엽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하필 그 손가락이 중지이다보니 참 민망한 장면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플거면 애초에 때리질 말라구요! 나이프로 찔릴 때 보다 더 아픈거같아!!"
나는 연신 이마를 문지르며 사쿠야씨에게 반박했다.
"뭐 됐어. 어쨌든 저녁식사 가져올테니까 자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사쿠야씨는, 이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중지를 입에 문 채로.
===
어쩔 수 없지, 우선은 닥치는대로 조사하자.
근무시간 내내 생각을 해 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내가 정보를 얻을만한 곳은 얼마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난,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파츄리님이 장소를 이동해 책을 읽는 바람에, 필요한 책을 나르는 건 모두 소악마의 일이 되어버렸다.
내 탓이기도 했기에 책 몇 권을 들고, 소악마를 따르기로 했다.
"저기, 소악마... 씨? 소악마... 님? 소악마야?"
"소악마야라니, 그거 정말 귀여운 명칭이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주시겠어요?"
문지기라는건 그다지 도서관에 들락일 일도 없고, 어쩌다 한 번 들린다고 해도 소악마에게 용무가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칭이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거기다 소악마 본인도 제법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이라, 이런 난해한 말을 하곤 한다.
"아뇨... 사양할게요. 그냥 소악마라고 해도 좋을까요?"
아무래도 상대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이럴 땐 사쿠야씨가 하는 대로, 편하게 부르기로 했다.
"기왕이면 소악마야~ 하고 불러주는게 좋은데... 어쩔 수 없네요. 그치만 님이나 씨를 붙이는 건 그만둬주세요."
"아... 알았어요."
이 이상 이걸로 이야기하는건 불필요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소악마가 들고있는 책이 무거워보였기에, 한 권을 들어다 내가 나르는 책들 위에 얹었다.
"그건 그렇고, 소악마도 사쿠야씨에게 뭔가 들은 건 없는건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파츄리님이 모르시는 일을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저랑 사쿠야씨는 생각보다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요."
그야 그렇겠지, 서로 담당하는 사람이 다르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두 사람을 담당하는 입장이니까 만나는 일은 흔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렇지 않아요. 레밀리아 아가씨는 어쩌다 한 번 지식이나 마법에 관련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다지 오지 않으신답니다. 또 온다고 해도 사쿠야씨가 항상 같이 오시는 건 아니구요."
흐음, 이 쪽에도 비서가 있다면 굳이 저 쪽의 비서를 대동할 필요는 없다는건가.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그다지 저와는 엮이지 않으려고 하시더라구요."
응? 그 사쿠야씨가 사람을... 아니, 요괴를 가린다구? 그럴 리 없겠지. 소악마의 오해일거야.
눈꼬리를 늘어뜨리곤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소악마의 표정을 봐선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소악마는 꼭 토끼같네요, 겁이 많다거나 하지 않아요?"
"겁... 이라, 글쎄요? 이래뵈도 악마니까요. 그다지 무서워하는 건 없어요. 날아다니니까 고소공포증도 없고."
그러고보니 날고있었구나. 팔랑팔랑~ 하고. 나비라기보단 박쥐의 날갯짓같지만, 오르내리는 폭이 안정적이어서 큰 위화감은 없다.
팔랑팔랑~ 이라.
"메이린씨는 꼭 곰 같아요. 든든하기도 하고, 둔해보이는데 날렵한 것도 그렇고."
"네? 곰입니까? 곰이라니... 훌쩍."
기왕이면 용이라고 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보다 마음을 읽혔나?
괜시리 등 뒤가 서늘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걸었다.
"사쿠야씨는 고양이같지 않아요? 날카롭고 날렵하고 마이페이스잖아요."
"듣고보니 그렇네요, 손톱도 평소엔 감추고 다니시고."
손톱? 아아, 나이프 이야기인건가.
"그리고... 파츄리님은, 나무늘보? 꼼짝도 안 하시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꽤 심한 말을 하는 것 아닌가요, 소악마씨. 라고 생각했더니 소악마의 머리를 바위 비슷한게 강타하고 지나갔...엑!?
"아어으아아아어아아으아!? 괜찮아요 소악마?!"
"괜찮아요, 악마인걸요. 이 정도 쯤 아무렇지르륵..."
말하고 있는 소악마의 입 근처부터 머리 전체가 타올랐다.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타오르는 얼굴에서 살점과 모발이 타올라 후둑후둑 떨어지고, 역겨운 냄새가 복도에 진동을 한다.
그런 소악마의 머리가 좌우로 붕붕 움직이더니 믿을 수 없을만큼 깔끔하게 원상복귀되는데에 난 다시 한 번 아연했다.
원래 이런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무늘보님이 꽤나 화가라랅..."
이번엔 물고문인가. 그녀의 머리에 어항을 엎어놓은 듯 둥그런 물방울이 고정된 채, 입에서 거품만이 나오고 있다.
얼굴이 붉어지더니, 푸르러지더니, 시커멓게 죽어가고 있다.
뽜그륵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한 번 넘어가고 나서야 물방울이 사라졌다.
슬슬 그만두지 않으면 그녀가 현자의 돌이나 안타는쓰레기가 되어버릴 것 같다.
"이제 슬슬 그 이야기는 그만 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러게요. 이 이상 말했다간 제 몸을 원자분해해버릴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책을 내려놓곤(정확히는 아까 떨어뜨린 책을 내버려두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 두 사람도 걱정되는 주종이군.
"고생이네요, 여러가지로."
"저 때문에 파츄리님이 고생이죠."
소악마는 그렇게 말하곤 쿡쿡 웃었다.
기분나쁜 웃음이, 이 관의 주인을 생각나게 했다.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옆자리에서 지나간 뒤에, 우리는 평범하게 잡담을 하며 책을 옮겼다.
"아, 가보시게요?"
"네. 소악마도 모른다면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죠."
책을 내려놓고, 허리를 짚은 채로 기지개를 켰다. 뿌드득 하고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 것 같은건 기분탓이겠지.
"네, 고생하셨어요. 차라도 한 잔 드려야 했는데 이런 상태라서..."
"이 이상 딴짓하면 뭔가 날아와서 박힐지도 몰라요. 어서 가봐요."
난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의 말을 거절하고, 방을 나섰다.
등 뒤에서, '그러고보니 고양이는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선다는데...' 하고,
불길한 소리를 했다.
어쩐지 소악마의 말이 계속 뇌리에서 거슬린다.
고양이는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선다, 라.
그녀의 수명이 긴지 짧은지, 얼마나 남은지야 아마 그녀 본인도 모르겠지.
그녀의 시간은 겉모습과 똑같이 흘러가는것도 아니며,
나나 소악마 레벨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그녀의 몸 주변에는 뒤틀려 있다고 언젠가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파츄리님이나 아가씨라면 알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것 자체가 어떻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를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로 사쿠야씨는 고양이처럼 훌쩍 우리 곁을 떠난걸까?
에이, 설마. 농담이겠지.
한가한 문 앞에 서서 무슨 엄청난 생각을 하는건지, 나로서도 곤란하다.
톡톡톡톡톡톡톡톡 계속해서 발끝으로 땅을 찬다. 지나가던 개미가 튀긴 흙에 맞고 분주히도 도망간다.
나도 저런거 아닐까.
사쿠야씨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에, 혼자서 고민하는 건 아닐까.
그냥 우연히, 말 하는걸 잊었을수도 있는데.
그저 우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간 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 뿐이다.
아가씨에게 가자.
관은 언제나 생각하지만 넓다.
밖에서 볼 때엔 잘 모르지만, 안에 들어오면 백미터 달리기를 해도 충분할만큼 긴 복도가 있고,
방 하나하나의 크기도 박력있는 수준이다.
이런 크기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중 하나는, 주민들 중 제대로 걸어다니는게 사쿠야 씨라는 점이다.
소악마와 주인아가씨 자매는 보다시피 대놓고 날개가 있고, 파츄리님 역시 둥둥 떠다니는게 사이코키네시스 저리가라고 할 수준이다.
물론, 사쿠야씨도 급할 땐 날아서 다니곤 한다. 단지 품위없다던가 부끄럽다는 이유로 날지 않을 뿐이다.
어째서 부끄러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뻘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했다.
관 가장 안 쪽, 주인의 침실.
레밀리아 아가씨가 주무시고 계시는 이 곳은, 복도마저 관 안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알 수 없는 습기가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그런 불쾌한 곳이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가려는 나를 막는 메이드가 둘 있었다.
"메이린대장, 여기는 지금 출입금지구역입니다."
가끔 문지기쪽 인원수가 부족하면 충당하러 오던 메이드다. 요리엔 재주가 없어 세탁쪽이 주된 업무일텐데.
"난 들어가야겠는데. '직접적으로' 아가씨에게 용무가 있어."
힘주어 말하며 다시 문을 열려는 메이린의 손목을 메이드가 잡아챘다.
한껏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메이드는 얼음조각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스스로 일어나실 때 까지 절대 문을 열지 말라는, 레밀리아님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그럼, 언제 잠드셨는지를 알려줘. 일어나실 즈음에 다시 찾아올테니까."
"메이드장이 와서 깨우실 때 까지입니다."
그 말에 난 정신이 멍해졌다.
그 말은, 사쿠야씨는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그렇게 메이린이 생각하고 있는데, 메이드가 말을 이었다.
"메이드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십년, 백년, 천년이 지나도 깨우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야 다들. 답을 주겠다는건지, 나를 놀려먹겠다는건지 의도를 모르겠어."
나는 그런 말만 남기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설령 이 녀석들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난 들어갈 수도, 제대로 이야기 할 수도 없겠지.
이 녀석들은 그거다.
문 안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문지기가 아닌,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을 지키기 위한 문지기.
내가 이 관에서 문 앞에 서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여기의 문지기 역시 저기압인 아가씨의 손아귀에 무언가 걸리지 않도록 막는 역할.
알고있으니 물러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메이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마저 애매한 말씀을 드리지요.
주인님은, 정히 자신에게 용무가 있는 자가 있다면 작은 주인님께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이 관에 있는 녀석들은 모조리 알 수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침실 문 앞을 떠났다.
이번 방은 작은 아가씨의 방.
아까만큼 음침하지만, 이 방에는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거기다 문도 대책없이 커서 이 관의 정문만한 크기가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정문은 이보다 크기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닫지도 열지도 않지만, 위압감만 놓고 본다면 이 쪽이 더 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서있는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히 쪼그라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보다, 들어간다고 답이 나오는거야? 플랑아가씨한테 뭘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문에 손을 얹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문 건너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난 네가 문제삼고있는게 무엇인지,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럴 리가 있나.
플랑아가씨가 그럴 리가 있나.
중요하니까 한번 더 말하겠다. 플랑아가씨는 그런 능력을 가졌을 리가 없다.
"궁금하면, 열어보면 되잖아? 놀아주면 뭔가 해줄게."
뭐 최근들어 플랑아가씨가 얌전해진건 사실이고, 나 정도면 어찌저찌 같이 놀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치만, 작은아씨가 뭘 해줄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당신 바보잖아. 직접 말은 못 하겠지만.
"이래뵈도 저 한심한 누님의 동생이라구. 적어도 그 반은 할 수 있을것 같지 않아?"
에이, 설마. 애초에 둘이 능력도 전혀 딴판이고 생긴건 좀 비슷하긴 하지만 머리색이라던가 날개라던가 전혀 다르잖아.
그 전에, 자매는 맞는거야?
"됐으니까 들어와.
정 안 되면, 내가 그 '고민거리'를 파괴시켜 줄 수도 있잖아."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다.
결코 그런 행위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걸어보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난,
문을 열었다.
문을 연 내가 바보였다.
"하하, 정말 바보네! 내 말을 믿고 문을 열어버린거야?"
"네, 그 말대로 전 정말 바보네요."
작은아씨는 내가 들어왔을 때 이미 나와 놀고싶어 안달이 난 상태로, 공중에 떠서 온 하늘을 탄막으로 가득 채운 상태였다.
"흐응- 원래는 네가 들어오는 순간에 뾰로롱 빠져나가서 누님이 자고있는 방을 엎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말야~"
하늘을 정말 뾰로롱 하고 날며 그녀가 말하고, 말야~ 라고 할 무렵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올려다보고 있는 난 목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그럴거면 뭐하러 직접 문을 다시 닫은건가요?"
"그게- 저 망할 누님이 결계를 쳐 둔 모양이어서, 다른 사람은 저길 왔다갔다해도 난 안될 것 같아~"
정말 천사같이 해맑고 순수한 미소이건만 어째서 레밀리아 아가씨만큼은 망할 누님인걸까.
그런 의문을 어떻게 해결하는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 상태였다.
왜냐면, 눈 앞에 수도없이 탄환이 날아오고 있으니까!
"잠깐, 잠깐, 잠깐만요! 어째서 이렇게 되는거죠!?"
날아오는 탄환을 손으로 쳐내고 어깨로 받아내고 등으로 피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 까진 좋은데, 이대로 있다간 당하겠지.
"그거야 당연하잖아~
여기 내려왔으면 놀아야되는거 아니었어?"
아뇨 별로 당연하진 않은데요 그거. 일단 노는거라는 것 부터가 이상해.
"아~ 정말! 시작하면 시작한다고 말이라도 해 줘야하는거 아녜요!?"
손에서 있는대로 탄환을 생성해 뿌려보지만 이래선 안 된다.
날아오는 탄환을 내가 피할만큼 상쇄시킬 숫자로 뿌리면, 위력이 모자라서 까슬까슬하게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탄환이 생긴다.
위력에 맞춰서 탄환을 생성하면, 숫자가 모자라서 맞는다!
"탕! 한 발 맞았다!"
그 말대로 난 한 번 이마를 강하게 맞아, 목이 뒤로 고꾸라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너무해요! 지난번에 사쿠야씨가 때린 곳인데!"
이마를 손으로 쓱 짚으니 거기만 툭 튀어나온 것 같다.
아아, 이대로 뿔이 되어버리는건 아닐까?
헛 걱정을 하며 스펠카드를 발동시켰다.
"[광부]"
"핫, 그거라면 알고있는 스펠인걸~ 이렇~게 피해서~ 요렇게!"
내 눈앞에 나타난 그녀는 왼주먹을 펴며 탄환을 뿌리고, 난 거기에-
"굉격타!!"
"역시 그 스펠- 응!?"
온 몸의 힘을 오른팔에 집중해, 그녀의 얼굴 코앞에 기를 뿌린다.
쾅!
멀거니 날아가는 그녀에게 내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이 정도 훼이크는 있어야, 작은아씨를 잡겠죠?"
"헤헤... 역시, 너도 꽤 재밌다니깐."
쓰윽, 턱 주변을 훑으며 그녀는 일어섰다.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볼까요?"
"응! 저 망할 누님이 당장 깨어날만큼 소란스럽게 놀거야!!"
우와, 그거 제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가씨한테도 작은아가씨한테도.
그렇게 그녀와 난, 다시 한 번 탄막을 교차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면 안 되지, 사쿠야씨를 찾아야 한다구 나는.
결국 몇 시간이고 치고받고치고받고치고받았지만 작은아씨는 별달리 아는게 없었다. 기껏 고생한 수고가 물거품이다.
이렇게 될 거라곤 알고있었지만, 정말 죽을맛이다.
"하아... 사쿠야씨, 어딜 간거예요..."
결국 근무시간이 되어 간신히 작은아씨에게서 빠져나온 난 문 앞에 서 있었지만, 지속된 전투로 인해 몸이 피곤해 제 상태가 아니었던게 화근일까.
심각한 문제에 처했다. 그러니까, 눈꺼풀이 겁나게 무겁다.
사쿠야씨도 걱정이지만, 눈꺼풀이 무겁다.
사쿠야씨가 걱정인데, 눈꺼풀이.
무겁다.
아
앙대
...
...
...
정신을 차렸다.
기억으로 세 번째 같은 위치에 맞는 고통이 날 엄습했다.
아니, 이번엔 조금 다르다. 뭔가 좀 더 직접적으로 머릿속을 강타하는 것 같다.
꼬챙이를 이마에 쑤셔넣고, 그 꼬챙이 끝을 튕기는 것 같은 감촉?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 깨어났네."
눈 앞이 붉다. 시뻘겋다. 이거 아무래도 익숙한 향인게 내 피인 모양이다.
그치만 그보다, 그 앞에 시뻘건 사쿠야씨가-
"어, 어디서 이렇게 다치신거예요 사쿠야씨!!"
내가 어깨를 붙잡고 걱정하는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이마에서 나이프를 쑥 뽑아간다.
"아픈 건 너겠지. 난 아무렇지도 않다구."
"아파아! 아파요 사쿠야씨! 너무 아프다구요!"
그리곤 사쿠야씨를 힘껏 껴안았다.
"바보, 무슨 짓이야!"
사쿠야씨가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사쿠야씨마저 귀여워서 너무나도 행복하다.
"사쿠야씨이- 사쿠야씨이~"
"이 변태, 부비적대지마! 등 더듬지마! 움직이지마! 멈춰! 떨어져! 야!"
어쨌든 사쿠야씨가 돌아왔습니다. 푹신한 가슴에 안기게 해 주는 사쿠야씨가 돌아왔습니다.
제 행복의 근원인 사쿠야씨가 돌아왔습니다. 절 둘러메치는 사쿠야씨가 돌아왔습니다. 제 목을 조르는 사쿠야씨가 돌아왔습니다.
아.
의식이...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예요?"
사쿠야씨와 마주앉은 탁자에서 턱을 괴고 물었다.
"어떻고 자시고, 잠깐 '바깥'에 다녀온 것 뿐이야."
"바깥?"
핑, 나이프에 무언가 묻은걸 손톱으로 튕겨내며 대답했다.
이 쪽은 보지도 않고 나이프 손질에 열심이다.
"응. 바깥. 네가 빙수가 먹고 싶다며? 근데 여기선 얼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맛있는 재료를 어떻게 해 보기엔 설탕이 은근히 귀해서 말야.
내가 어릴적에 먹었던 달콤~한 빙수가 생각나서, 그걸 만들어보려고 하니까 영 재료가 시원치 않더라구.
겸사겸사 나간 김에 맛있는 얼음도 좀 가져왔고."
"근데... 뭐 때문에 저한테... 그렇게까지?"
"응?... 아니... 그야 뭐, 너 말야. 오늘 생일 비슷한거잖아."
흘끗, 내 얼굴을 보며 그녀가 말하곤 다시 시선을 나이프로 돌렸다.
그런 것도 잊어버린거냐, 는 듯한 시선이 조금 괴롭다.
아...
그러고보니 사쿠야씨가 관에 온게 아마 이 무렵이었나.
그래, 파츄리님과 아가씨, 그리고 모두와 이런저런 일이 있던 와중에 사쿠야씨가 나타난 날이었지.
그리고 사쿠야씨와 이야기하던 도중에 내 생일 이야기가 나오고, 그런 건 애저녁에 잊어버린 내게 사쿠야씨가 생일을 만들어준게-
"아참.
그러고보니 아가씨도 모르게 나가는 건 너무 심했어요. 덕분에 엄-청나게 오해해버렸잖아요."
문득 생각난 내가 손에서 턱을 떼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응? 아가씨한텐 확실하게 이야기해두고 나왔어.
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터 뭔가 심기가 뒤틀어진 것 같기는 했지만, 승낙은 제대로 받고 나왔는걸?"
"그럼 어째서 몇천년이고 잘 기세로 메이드들을 세워둔거죠?"
"아- 그건 다른 문제야.
플랑도르 아가씨가 나오는 것 자체를 귀찮게 여겨서 결계에 힘을 있는대로 쏟아부었거든.
겸사겸사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고 내가 없으면 활동하는게 여러가지로 불편하다고 잠든거야."
아... 그래놓고는 그렇게 심각한 척 하는 메이드까지 척척 세워두시고 자기는 속편히 주무시고 계셨다는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레밀리아 아가씨. 정히 그러하시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만.
"그랬던거군요. 어쩐지, 작은아씨에게 절 보낸것도 작은아씨가 지치면 얌전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건가요."
"뭐, 그렇겠지. 내가 그 비뚤어진 초등학생 심리를 어떻게 알겠냐마는."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메이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번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얍, 축설입니다!
생일 축하해요 신랑!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해요!
짧은 글이고 별로 내용도 없습니다.
그리고 긴장도 그렇게 크지 않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부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