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으..."
정신을 차리는 것 보다 먼저, 아직 남은 뻐근함이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정신이 드는걸 알아챘는지 사쿠야 - 원랜 마리사였다 - 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괜찮아?"
"아... 어 응. 어떻게든 살아는 있는 ㅓㅅ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라며 말을 늘이더니, 이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해왔다.
"무슨 맛이었어?"
움찔, 괴로운 걸 생각하는 듯 하더니 돌아온 대답은,
"온 식도를 태우는 것 같은 맛이었어. 정신을 잃기 직전엔, 온 몸을 두드려 맞는 느낌.
아가씨와의 첫 만남 이래 최대의 죽음의 공포였어."
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에 빠져있었고, 사쿠야가 먼저 침묵을 깨고 레이무의 행방을 물었다.
"레이무라면 여기 있는데."
"시덥잖은 말장난은 그만두지?"
"알았어 알았어."
사쿠야 - 원래 마리사였던 - 앞으로 귀찮으니 그냥 사쿠야로 하겠다 - 의 말에 의하면, 얼굴을 남아있던 한쪽 소매로 닦아낸 마리사 - 원랜 레이무였고 단벌에다 불쾌하고 돈에 비굴한 그녀이며 앞으론 마리사로 불릴 - 는 마리사의 도구를 챙기고 빗자루를 한 손에 쥔 채 마법의 숲으로 터덜터덜 갔다고 한다.
"그.... 뭐라더라. 부적은 어디?"
"아아, 너는 등 뒤에 있는 사라시 안쪽에. 어차피 레이무가 손 대지 않으면 보이지도 떨어지지도 않을테지만, 만일을 위해서라고 했어. 의식하지 않으면 레이무의 말투가 나올테고, 몸에서 나는 향을 레이무의 향으로 바꾼다는데. 그 외에도 내 약의 효력과도 관계한다고 하더라."
역시 대단하네, 사쿠야였던 레이무는 등 뒤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근데 너, 그 몸으로 식은땀 흘리고 있으니까 제법..."
"얘가 뭐래니, 가서 아가씨 시중이나 들어. 거기다 당장 넌 내 몸이잖아?"
검지손가락으로 쿡, 이마를 찔러 다가오는 사쿠야를 밀쳐낸 레이무는, 돌아누워버렸다.
"흥, 그 아가씨 걱정은 여전하네. 이 몸의 실력에 놀라지나 말라구."
그 말을 남기곤 마리사였던 사쿠야 역시 신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몰래 본 레이무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법, 처음 신는 하이힐 치곤 괜찮은 걸음걸이네.

"하아, 정말이지 주책맞은 하루였어 어제는."
아침, 무심코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온 차가운 기운에 눈을 뜬 레이무...아니 마리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에게 심한 취급을 당하고 신사를 나선게 해질무렵. 마법의 숲에 도착해선 몸을 추스리려 집에 들어갔지만 어김없이 끝 모를 잡동사니 창고. 그 안에서 어찌저찌 잘 자리를 만들고 나니 이미 밖은 보름달이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도저히 옷이 갑갑해 대충 옷을 벗어던지고 캐미솔에 드로워즈 차림으로 잠든 것 까진 기억나는데, 잠든 그 자세 그대로 깨어난건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막상 깨어났지만,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신사처럼 아침부터 마당을 쓸 일도 없는 곳이거니와, 방청소같은건 이미 아득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역에 있기 때문에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에 죄송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졸린지 아닌지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노크 비슷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흐아암..."
멍-한게... 정신이...
"마리사, 역시 아직도 자고있구나! 어머, 오늘은 왠일로 멀쩡히 자리잡고 누워있네? 거기다 이불도 가슴께까지 잘 덮고있고- 혹시, 어디 아파?"
그런가. 요즘의 마리사는 그 잡동사니 천지였던 상태에서 자는건가?
잠이 확 깨는 앙칼진 목소리에 마리사는 정신이 들었다.
"아니, 별로 그런 건 아냐. 다만 기분이 조금 변했을 뿐이라구."
별일이네, 라며 앨리스가 발 밑을 살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무슨 일로 온 거야, 앨리스?"
옆에 털썩 앉아 무릎 위에 상해를 앉히는 앨리스에게 묻자, 앨리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말했다.
"쳇, 그새 또 잊었을 줄 알았어. 지난번에 중화제인가 뭔가를 만든다면서 이런저런 약재를 갈취해놓곤, 오늘 그 약재 구하는걸 도와준다고 했잖아."
....마리사 이녀석....
어딘가의 메이드가 되어있을 마리사를 생각하며 으득, 이를 갈았다.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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