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앨리스. 그렇다고 공짜로 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냐."
"하, 그럼 그렇지! 파츄리에게서 책을 빌려다 달라거나, 나중에 두배로 갚으라던가, 레이무의 세전함에서 일만 엔을 훔쳐오라고라도 하시려고?"
..아니, 세전함에 그만한 돈 없는데.
그나저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는 앨리스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우와.
"그런건 아니고, 그냥 오늘 하룻 밤만 좀 묵다 가도 되겠냐는거지."
뭐 그쪽도 한번 빙 둘러볼 겸.
"뭐?!"
앨리스는 얼음.
이봐, 약초 떨어지잖아. 주변을 날아다니는 상해와 봉래는 왜인지 꺄아꺄아 시끄럽게 얼굴을 가렸다 폈다 도망갔다 잡았다 난리도 아니고, 대체 왜 이래.
"왜 그러는거야, 시간은 늦었고, 여기선 너희집이 더 가까워서 그런 것 뿐이라구."
"아, 그, 그랬구나! 마, 말을 하지 그러니!!"
퍽퍽, 어깨를 때리는 손바닥은 제법 매웠다. 뭐냐, 공격이냐?! 전투?!
어쨌든 그렇게, 앨리스의 집으로 향하는걸로 정해졌다.

승천축의 마지막 차기는 특-별히 힘을 실어서.
"오늘도 역시납니다---!"
어디서 시덥잖은 대사를 주워들은건지 이상한 말과 함께 저 하늘로 날아가는 텐시를 보며 애도.
대체 쟨 왜 와서 공격한거야?
신사를 둘러보니 그나마 생각만큼 박살난 건 아니었다. 이제 저 꼬맹이도 탄막놀이가 뭔질 안다는 이야기이려나.
그래도 부옇게 변한 신사는 아침에 청소했는데 조금 마음아프군. 에이, 또 청소나 해 볼까...
...그렇게 빗자루를 쥐며 묘하게 안도하는 레이무였다.

"하아, 정말이지, 이 녀석들 날 데리고 노는건가?"
요괴녀석은 알고보니 심장 자체가 없는 괴종이었고, 발끈한 사쿠야는 심장 언저리를 나이프로 꾸욱꾸욱 누르며 웃는 얼굴로 '한 번만 더 이 따위 장난질하면 심장마냥 펄떡펄떡 주기적으로 뛰게 해 줄게' 라며 감정을 추슬렀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어찌저찌 아침식사를 마친 뒤였다. 이제 슬슬 이 일에도 익숙해지는 듯 하다. 그 증거로, 지금처럼 도서관에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사쿠야가 여기에 왠 일? 청소라면 소악마가 하고있어. 한 3주째 하고있나..."
그런가. 여기의 청소는 월단위로 노력해야 끝나는건가. 확실히 넓긴 넓은데... 그래, 처음 왔을 땐 헤매고 감탄하고 정말 정신없었지.
천천히 책장을 손끝으로 쓸었다. 먼지 쌓인 책들이 자신을 보아줄 사람만을 기다리며 묵묵히 그 자리에 꽂혀있다.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이, 내 손에 걸린다.
"어라, 사쿠야가 책?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오네."
의외라는 듯 한 파츄리의 말을 무시한 채 표지를 보았다. 잘 알고있는 언어는 아니지만, 대충이나마 눈에 들어온다.
연금과 속성, 시간과 공간, 독단과 포용. 적당히 적당한 단어를 조합한 것 같은 이 제목은 대체...
그치만, 펼치자 기다렸다는 듯 무수한 활자가 쏟아져 들어온다.
아, 이 활자의 감촉.



정신을 놓고 책을 읽다보니 결국 끝까지 읽어버렸다.
내용은... 타이틀만큼 이상했다. 우와.
"이런, 벌써 시간이?!"
앗차-아. 정신 못 차리긴!
따각따각 소란스럽게 구둣굽이 울린다. 경망스럽긴.
"사쿠야가 이상해."
책에 얼굴을 파묻었던 파츄리가 살짝, 고개를 들곤 중얼거렸다.

"후..."
찬란했던 태양도 지고, 달의 시간.
청소를 마친 후 할 일이 없던터라 대낮부터 퍼 잔건 좋았는데, 눈을 뜨니 안녕하세요 달님?
"....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무녀가 심심하면 넋 놓고 있던 건 이 때문인가...

달이 참 아름답지만, 그뿐.
할 일이 없어...
잠도 안 와...

달을 보고 있자니, 아가씨가 생각난다.
보름이 될 때면 언제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곤 신사로 뛰쳐나가서, 투닥투닥 정신없었는데.
...어라 잠깐. 보름?
화들짝 놀란 레이무가 달을 응시했다.
보름, 보름...
...오늘은, 보름달이었다. 그리고 아가씨를 막을 사쿠야는 없고, 지금은 밤-
"레이무, 까꿍!"
그 밤에, 아가씨는 신사로 오곤 했는데.

Posted by 나즈키

블로그 이미지
頷きながら、認めながら
나즈키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