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요플레 딸기 시리얼

 

 

"딸기 먹고싶어."

레이무의 갑작스런 중얼거림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잖아도 30분 전 부터 갑자기 나타나선 지긋이 앉아서 하늘을 마냥 바라보면서 내 부름이니 물음엔 대답도 안 했으면서 갑자기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고 해서 내가 구해올 것 같아?

"딸기 좋죠. 빠알갛고, 한 입 깨물면 입 안에 상큼하게 퍼지면서 향이…. 말 그대로 봄이라는 느낌인걸요."

어쨌든 여기 와서 처음 한 말이기에 난 대답해주기로 했다. 왜냐면, 갑자기 날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하쿠레이의 무녀가 배고플 땐 일단 절대 건드리지 말고, 함부로 도망가지도 말라고 카나코님이 말했었다. 자칫하면 표적이 되어 심한 꼴을 당할 수 도 있다면서.
솔직히 지금 머리를 매만지는 내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다. 아아, 창피해.

"하지만 정작 딸기는 추울 때 먹게 되는게 일반적이지. 일주일 정도 날이 풀렸을 때 익어서 먹으려고 따 두면 정작 꽃샘추위가 찾아와 버린 뒤에 먹게 되니까."

그래서 더 맛있지만.

"에이 짜증나. 이 여름에 딸기를 어디서 구하란거야."

다짜고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곤란해졌다. 그녀는 투덜거리며 잘못 쓴 부적을 손으로 북북 찢어 뭉쳐서 아무렇게나 방 한구석에 던져버리고는 손을 툇마루에 내려놓으며 다시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나무들은 그 색을 진하게, 마치 보는 눈에게 자신이 나무라고 너무나도 어필하고 싶은 듯 생명력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서 있었고 빛나는 하늘은 해가 떠 있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눈이 부실만큼 맑았다. 구름은 아무래도 그 까마귀가 다 가져간걸까. 오늘 취재는 없겠네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부적이었던 종이뭉치를 주워다 태웠다.
이런 걸 함부로 버리다니, 이러니까 환상향이 요괴 천지인거야.

"딸기…. 는 무리지만 수박이나, 참외같은건 있을 것 같은데요."

"딸기가 아니면 안 돼. 먹고싶어진걸. 그치만 여름이잖아. 있을 리 없다구. 아악!!!"

…날더러 어쩌라구요 레이무씨….

진심으로 울고싶어졌지만 참았다. 울면 지는거야, 울면 안돼 사나에, 강해져라 사나에.

 

"안녕 레이무.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우리가 만날 건 운명이었어."

뭐야 이 바보는. 어디서 나타난거야 대체. 거기다 쓰고 있는건 화려한 천으로 만든 양산 주제에 정작 손잡이는 중간이 꺾여서 망가졌잖아. 이 바보같은 조합은 뭐냐구. 정말 뭐냔말야. 아니 우선 그보다 어디서 나타난거야.

"더워 레밀리아. 들러붙으면 죽여버릴거야. 아니 그냥 햇볕에 말려둘거야."

진심으로 귀찮아서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레이무가 심한 말을 했음에도 레밀리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레이무에게 다가가 들러붙으며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우와 진짜 더워서 죽일지도 몰라….

"잔인한 말을 하는구나 레이무. 그렇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사쿠야?"

"사쿠야 부름에 응해 왔습니다. 여기에 원하시는 물건이 있습니다 아가씨."

분명 무표정인데 얼굴에선 진노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어. 이거 나만 보이는 거 아니잖아? 왜들 무시하는거야? 이래도 돼? 사쿠야씨 괜찮아요? 다이죠-부? 오겡키데스카-?
내 걱정따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채 사쿠야씨가 고급스런 바구니에 담아서 고급스런 천으로 덮어 둔 물건을 개봉했다. 그 순간 레이무의 얼굴 밝기 증가량은 평생동안 못 잊을 것 같았다.

"어머, 이 계절에 어디서 딸기를 났니, 아니 나셨어요 레밀리아님?"

어머라니. 경어라니. 레이무씨 당신 무녀의 자존심은 어디에 두셨나요. 그녀는 금방이라도 바구니를 나꿔 챌 듯 자세를 고쳐앉았다. 무서워. 역시 굶주린 무녀는 무서워.
그보다 딸기를 어디서 났는진 나도 궁금한데.

"사쿠야가 봄에 따서 창고에 저장해뒀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 레이무?"

"응, 아니 네 얼마든지 괜찮아요. 그런데 그 옆에 있는 기분나쁘게 하얀 물건이 뭔지 여쭤도 좋을까요?"

완전히 꺾였군. 환상향의 미래는 딸기와 맞바꿔진건가.
그런 내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젠 아주 들러붙다시피 한 레밀리아가 말을 이었다.

"파츄리가 만들어 낸 거야. 떠먹는 요구르트라고, 처음엔 나도 기분나빠서 꺼렸는데 먹어보니까 의외로 괜찮더라구. 그 옆에 있는 자잘한 쿠키들과 함께 먹으면 시큼함을 덜 수 있어. 어때, 먹어볼래 레이무?"

"먹어보고 싶어요."

잠깐만 무녀씨 거기서 그렇게 나오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잖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건지 레밀리아는 푸훗하고 웃으며 레이무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 '제발 먹게 해주세요 레밀리아님' 이라고 해 봐."

우와 이건 힘들겠다. 레이무는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곤, 눈망울을 굴리며, 손을 꼼지락대다가, 시선을 피하다가, 잠깐 이 반응이 아니잖아 어째서 화를 내는게 아니고 부끄러워 하는건가요 무녀씨!!!!!!!

"제... 제발..."

"제발 뭐?"

우와 옆에서 사쿠야씨 엄청난 기세로 서 있는데 괜찮을까. 그보다 괜히 내가 아파 아프다구 잠깐만 칼등으로 바닥 두드리지마 탁탁탁 소리나게 두드리지 말라구 바닥에 구멍나겠어 아니 이미 몇개 났잖아 뭐지 이 칼자국….

"제발... 먹게 해주세요..."

우와 말해버렸다.
이제 환상향은 끝이야. 모두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들뜬 흡혈귀가 들뜬 모습으로 레이무에게 말했다.

"좋았어, 아주 잘 했어 레이무. 상으로 내가 직접 먹여주도록 할게. 사쿠야, 요구르트를 이 쪽으로 가져와."

이 에로흡혈귀 지금 무슨짓을 하려고 하는거야.
말릴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아, 레이무 곤란해하고있어… 그치만 그게 묘하게 귀여워….
…나까지 미쳐버린걸까.

"아뇨, 그렇게까지 해 주시지 않으셔도…."

곤란해하며 손을 내젓는 레이무의 팔을 걷어내곤 레밀리아가 다가간다. 그 모습이 마치 삼류 연애시뮬레이션에서나 볼 법 한 '어이쿠 넘어졌는데 그녀의 다리 사이에 내가 엎어져버렸네 그치만 실수니까 괜찮지' 같은 자세여서 보는 내가 다 민망했다. 레이무의 얼굴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레밀리아의 입이….

"야이----------ㄱ!!! 남의집에서 뭣들하는짓이야!!! 썩들 나가지 못해!"

갑작스레 우리 네 사람은 화염에 휩싸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주인인 모코우가 나타나선 다짜고짜 우리에게 불을 지른거였지만 사실 무단으로 들어와 있었으니 할 말은 없지. 뭐라고 항변도 못한 채 우리 넷은 그대로 쫓겨나버렸다. 항변은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항변은 하지 않았다.

모코우는 레이무에게 박살 나서 바닥에 죽어있는 상태였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으니까 괜찮겠지. 나중에 케이네가 슬퍼하겠네….

그보다, 딸기 아깝다…. 먹어보고 싶었는데.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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