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6. 20:32 동방

나즈키 외도중

"오늘은 손님이 오니까, 차를 준비해주렴."

그렇게 말을 남긴 교장은 걷는 듯 나는 듯 흐물흐물 응접실로 들어가버렸다. 가뜩이나 치마도 길어서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저런 붕붕 뜬 걸음걸이로는, 솔직히 미끄러지는게 더 신빙성 있는 설득력이지. 음.
쓰잘데없는 유카리의 걸음걸이에 대한 고찰과 함께 찬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는 차라곤 인스턴트 커피 하나. 이런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다니, 교장실에 도둑이라도 있는걸까? 그런 혼잣말을 커피와 함께 휘휘 저으며 티스푼을 톡, 살짝 거품을 걷어내고 바닥에 뿌린다. 아, 깔끔해.
아차싶어 바닥을 보면 이미 커핏물 투성이. 내가 치운다는걸 깨달았지만 그것도 잠깐, 어차피 매일같이 청소하는데 상관없겠지.
손님 분, 그리고 교장 분 두 잔의 차를 들고 응접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렴."

대답한 건 묘하게 밝은, 내가 아는 또 다른 선생의 목소리. 뭐야, 둘이 무슨 수다를 떠는거지? 뭐 상관없긴 하지만 묘하게 날 긴장시킨다. 이 톤은 결코 내가 편할 수 없는 톤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자, 거기엔 내 예상대로의 체육선생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어머 레이무, 이런 곳에 있었구나?"

아, 진짜 상대하기 싫어. 그런 표정을 최대한 감추며 체육선생에게 차를 건넸다.
받으려는 듯 다가오던 그녀의 손은, 킁 하고 경박한 콧소리와 함께 멈추고 이내 그녀의 손은-

탁!

아이 진짜…….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려는걸 참고 그녀를 보면, 묘하게 카리스마있는 자세로 종이컵을 날려버린 손등은 그녀의 턱을 다시금 받치고 있었다.

"흥, 이런 싸구려밖에 없다니 교장실의 수준도 알만하네."

그렇게 말하곤, 손바닥으로 두 번 박수. 물론 쳐낸 컵에서 튄 커피는 내 머리칼에서 한창 뚝뚝 좋은 싸구려 향을 풍기며 떨어지고 있었다.

"……레이무, 들어가보렴. 아, 내가 마실 차는 두고."

교장은 내게 눈짓으로 등을 떠밀며 곤란해보이는 기색과 함께 손을 내밀었지만 어차피 내 알 바 아니지. 아무래도 오늘 이 학교 교사 하나를 갈아치워야겠는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데, 친숙한 친구가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말씀하신 우유입니다."

거만하게 턱을 받치고 눈을 반쯤 감고있던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확대되어 어린아이처럼 변하고, 이내 손을 뻗었다.

잠깐만, 이 내가 탄 차가 저딴 딸기우유만도 못하단거야?!
새카맣게 물든 소매를 휘두르려던 찰나, 내 행동을 멈춘건-

"많이 드시면 이가 상하니까, 적당히 드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사쿠야는 빨대 하나를 콕! 소리나게 꽂아 레밀리아에게 건넸다.
어이가 없어져 그 광경을 보고만 있는 내게 다가온 사쿠야는 한숨을 쉬며 날 응접실 밖으로 떠밀며 나왔다.

"미안해."

네가 사과할 건 아니잖아.
그런 말을 삼키고 내가 뱉어낸 말은,

"에이, 짜증나. 옷이나 갈아입어야지."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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