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4. 14:21 번역/소설
니세모노이야기 -3-
연휴인데 쉴 수도 있잖아! 너무하는거 아냐 정말!?
“이 세상에 돈 말고 또 뭔가 있나요?”
“있어! 그 뭐랄까..... 사랑이라던가!”
“네? 사랑? 아아, 예 예, 알아요 그거. 얼마전에 편의점에서 샀었어요”
“산거야!? 편의점에서!?”
“네. 298엔에”
“싸!”
“사람따위 돈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옮기기 위한 교통수단같은거잖아요?”
“대체 네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난 어떤 일이든지 상담 해 준다고!?”
“생각 해 보세요, 아라라기씨. ‘세상은 돈이 전부다!’ 라는 부자 A와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냐’ 라는 부자 B가 있다면 그나마 A씨가 좀 나아보이지 않아요?”
“그나마라고 할 이야기를 하지 마!”
양쪽 다 싫어!
“돈 이야기는 어찌되었든 아라라기씨, 전 정말 기대된다구요. 결과적으로 엔딩곡에서 우리들은 어떤 춤을 춰야 할지”
“춤추는 걸로 이미 정해진거냐!”
“캣츠아이 엔딩곡같은게 섹시해서 좋겠군요”
“실루엣만으로 괜찮은거야!?”
그치만.
꽤나 고풍적인 지식을 가진 초등학생이군.
아무리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곤 해도 캐츠아이 엔딩 영상같은건 요즘 10대는 모른다구.
“그게 아니고 하치구지. 그래, 너한텐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난 속성이 흡혈귀잖아”
“그랬었나요!?”
“어째서 그런 중요한 설정을 잊어버리는거야!”
또 제법 괜찮은 얼굴로 놀라는구나.
아무리 봐도 연기라곤 보이지 않아.
“라면을 좋아하는 평범한 오빠라고 생각했어요”
“애초에 라면을 좋아한다는 설정을 처음 듣는데!”
“분명, 전국에 있는 모든 컵라면을 알고있었죠?”
“있지 않거든!”
그 지식은 너무 슬프잖아.
하다못해 맛있는 라면집을 돌아다니라구.
“모든 지역의 라면을 맛본 남자, 아라라기 코요미....... 지금 현재 컵라면의 최고봉은 유우바리의 메론라면이었던가요?”
“아무리해도 그런 컵라면은 없잖아!”
뭐.
특산물쪽은 가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게 있으니까 딱 잘라 말 할 수는 없지만......
“흐음”
하치구지는 양 팔을 꼬았다.
꽤 어려운 얼굴을 하곤.
“과연, 수라라기(修羅羅木)씨”
“엄청 멋져보여서 그 쪽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싶을 정도이지만 하치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했듯이 내 이름은 아라라기(阿羅羅木)야”
"실례. 혀 깨물었네요"
"아니, 노린거야......."
"패무멋네어"
"일부러 한 게 아닌가!?"
"편의점있어?"
"그런 식으로 편의점이 어딨는질 물어봐도!"
사랑인가? 사랑을 사러 가는건가?
298엔에!
"과연, 아라라기씨"
하치구지는 말을 되돌렸다.
어려운 얼굴도 아무것도 아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흡혈귀. 그런 말을 들어보니 그랬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그게 어떻게 된 건가요?"
"역시 그런 일은 상대가 가족이라고 해서 막 퍼뜨릴 수 있는게 아니니까 말야. 그렇다고 어쩌다보면 언제까지고 숨기며 지낼 수 있을 수도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인간으로 돌아왔다곤 해도 영향은 남아있게 되고."
"그렇게 솔직하게까지 말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오히려 상대가 가족이기 때문에 비밀 한 두 개쯤은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치구지......"
그런가.
이녀석도 나름대로 가족관계 문제로는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었지. 어느정도냐고 하면 내 고민같은건 배부른 헛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초에 비밀을 공유한다는건 부응없이 상대를 말려들게 한다는거니까, 이야기를 해서 아라라기씨는 좀 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 일로 괴로워지는건 가족이라구요?"
"음......상식적인 소리네"
"장남이라는 사람이 흡혈귀가 어쩌니 괴이한 일이 어쩌니 꿈꾸는 것 같은 소릴 해대면 저같으면 당장에 병원에 처박아버릴테니까요"
"너무 상식적이잖아!"
으-음.
뭐 그런것도 있구나.
끌어들일 생각은 아니지만 센죠가하라같은 경우엔 괴이를 병으로 처리했다. 최소한 가족만큼은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칸바라는 말려든 괴이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왼 팔이 정상이 아니지만.... 그런 경우엔 어떻게 처리했더라. 붕대를 감는 정도로 함께 사는 가족까지 오해받을 것 같진 않지만.
"지금 아라라기씨에게 필요한 건..... 그래요! 비밀을 간직할 용기예요!"
"오오! 좋은 말인데!"
"용기라는 말을 덧붙여서 좀 나아가는 것 같이 보일 뿐이고 사실은 그저 비밀이지만요!"
"쓸모없는 이야기야!"
"용기를 마지막에 붙이면 어지간한 이야기는 긍정적인 말로 치환된다구요"
"그런 바보같은.... 일본어는 그렇게 단순한 구조일 리 없어. 몇천년을 걸쳐 형성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가볍게 보는 게 아냐, 하치구지"
"해 보실래요?"
"해 보겠어. 날 납득시킬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물구나무를 서지"
"물구나무인가요"
"아아. 무릎 꿇는걸 요구하는 자세지. 그 대신 날 납득시킬 수 없다면 네가 여기서 물구나무서는거야.... 그 스커트 차림으로 말이지! 내가 됐다고 할 때 까지 네 어린이용 팬티를 대중의 눈에 쪼이게 해 주겠어!"
자!
이렇게 멋지게 말 해봐야 말 하는게 글렀으면 멋있을 순 없지!
들어라, 이게 일본어다!
"좋아요, 그 승부 받아들이겠어요"
"흥. 배짱만큼은 칭찬해주지"
"불 속에 뛰어드는 불사조라는건 당신을 말하는거예요, 아라라기씨"
"아니, 나 그렇게 멋있지 않다구!?"
"그럼"
에헴 하고 헛기침 하는 하치구지.
연출이 과하다.
"일단은 간단한 것부터...... 애인한테 거짓말할 용기"
"음"
꽤 하는군.
하는건 그냥 애인한테 거짓말하는건데도 뒤에 용기가 붙는 것 만으로 마치 그게 상냥한 저깃말처럼 들린다 -- 그런 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동료를 배반할 용기"
"뭐라고"
대단해.
결과적으론 동료를 배반한 것인데도 마치 그렇게 해야만 동료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 그런 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될 용기"
"우우우"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사람에게 폐를 끼친건데도 마치 자기가 악역을 맡는 남자중의 남자로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 그런 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치한짓을 할 용기"
"제.... 제길"
완벽히 열세이다.
치한이라는 비겁하기 짝이없는 범죄를 범하는건데도 마치 전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 확고한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는 것 같다 -- 그런 건 한 마디도 안 했는데!
"태만한 삶을 살 용기"
"이, 무슨 일이냐...."
이제 뒤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그 상태에 몸을 맡기곤 대의를 위해 비굴하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 그런 건 한 마디도, 정말 단 한 마디도 안 했는데!
그, 그치만!
지금 내가 패배를 인정하기엔!
"패배를 인정할 용기"
"......패배를 인정할!"
아아!
너무나 멋있는 말에 나도 모르게 패배를 인정해버렸어! 실제론 패배를 인정한 것 뿐인데!
일본어라는건 단순하구나!
덧붙여 용기는 영어로 브레이브!
"자 아라라기씨. 무릎꿇음의 다음 것을 추구해주세요"
"좋다 -- 물구나무를 설 용기다"
물구나무섰다.
집 근처에서.
이거야말로 이런 모습을 카렌이나 츠키히가 보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 아니, 그런 건 또 아닌가. 츠키히야 어쨌든간에 카렌은 초등학교 시절에 심심하면 물구나무로 학교에 갔기도 했고. 등굣길의 웃음거리 같은거였다. 카렌은 팔을 단련하는거라고 했지만 오히려 단련된 건 내 수치심이다.
"우와-.... 저만큼 큰 어른이 물구나무 서는걸 보니까 꽤 미묘하네요. 이제 그만해도 좋아요"
"......."
"아니, 그만해도 좋다니까요 아라라기씨"
"......."
"아니 그만두세요 아라라기씨. 옆에서 보는 제가 다 부끄러워요. 어째서 그렇게나 완고하게 마치 죽은 친구와의 약속인 양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건가요"
"아니, 뭐랄까"
난 말한다.
물구나무 선 채로 하치구지를 보며.
"네 물구나무서기를 못 본 건 아쉽지만, 내가 물구나무를 서면 결국 이 각도에선 네 팬티가 보이는구나- 라고 생각해버려서"
이 승부.
처음부터 내게 패배는 없었던거다.
"하웃!?"
수치심으로 붉게 물든 소녀 하치구지가 행한 행동은 '스커트를 누른다' 가 아니라 '내 얼굴을 걷어찬다' 였다. 주저없이 휘두른 느낌 좋은 로우킥이 최고의 각도로 내 얼굴에 꽂혔다. 로우킥이 얼굴에 꽂힌다는 괜찮은 시츄에이션도 흔한 일은 아니지.
"아라라기씨! 당신은 변태예요!"
"변태라는 오명을 받아들일 용기!"
"우와, 멋있어! 팬티정도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을만큼 멋있어요! 얼굴을 걷어차여도 아직까지 물구나무서기를 멈추지 않는 부분이 특히!"
경의의 평형감각이었다.
내 것이지만.
"설마 내가 개발한 기술로 내 자신이 곤란하게 될 줄은.... 아이러니예요!"
"하하하! 기술에 너무 의지했군, 하치구지! 네 오의는 나로 인해 완성된거다!"
"어, 어떻게 된 일이죠..... 전 되돌릴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버린걸지도 몰라요!"
"그치만 어린애 팬티라고 말한건 미안하게 됐군. 설마 하치구지가 검은 레이스팬티를 입고있을줄은 몰랐어"
"네!? 무슨 소린가요, 똑바로 보라구요! 그만두세요, 이미지 나빠진다구요! 전 수요에 착실히 맞춰서 어린애 팬티를 입고 있어요! 토끼가 그려져있지 않나요!"
"토끼같은 건 안 보이는데. 보여지고 싶다면 좀 더 잘 보이는 자세를 취해"
"이, 이렇게인가요!?"
뭐.
진짜로 이 주변에서 평판이 나돌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난 그대로 체중을 이동시켜 두 발을 땅에 붙였다.
아-아.
손이 더러워졌다.
정말로 더러워진건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의 더러움은 지불할 방법이 없다.
"근데 하치구지.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아라라기씨는 팬티를 정말 좋아한다는 이야기요"
"아니, 별로 좋아하는 정도는 아냐. 하네가와한테 물어보면 알걸"
"......"
왠일인지 맞장구치지 않는 하치구지.
혹시 하네가와한테서 뭔가 들은건가.
그렇다면 내 인생은 커다란 위기를 맞고있다.
피해자의 모임은 역시 귀찮은 존재다.
재빠르게 대책을 세워야만 해.
"그래그래... 괴이관련한 일은 비밀로 해 두는게 좋다는거였던가"
"네, 그랬어요"
"뭐 확실히 병원에 처박히는건 나도 사양이야. 정말 조금밖에 없는 불사성이라도 좋은 연구대상이 되어버릴테고"
"별로 아라라기씨가 머리때문에 불쌍한 사람 취급 당하는거라면 상관없지만"
하치구지는 너무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그 때부터 말했다.
"괴이를 알면 괴이에 엮이[ '괴이를 알면 괴이에 엮이' 에 강조점] -- 니까요. 말려드는건 어찌됐든 -- 그 쪽이 줄기가 된다면, 오히려 말려드는 건 아라라기씨가 되어버린다구요"
괴이를 알면 괴이에 엮인다.
그건 오시노가 말했던건가.
한 번이라도 괴이에 엮인 녀석은 그 쪽 세계에 끌려들어가기 쉬워져서 도망칠 수도 없이 끌려들어간다 -- 던가.
고양이에게 홀린 하네가와도.
게를 만난 센죠가하라도.
달팽이에 헤맨 하치구지도.
원숭이에게 바랜 칸바라도.
뱀에게 말려든 센고쿠도.
물론.
흡혈귀에게 습격당한 나도 말할것도 없이.
반은 저 쪽 세계의 주민이다.
다리 하나를 관 안에 넣은 채 -- 그것도 그냥 관이 아니라는거다.
그렇다면.
알려 줄 수는 -- 없다.
상대편을 생각해서라도.
카렌과 츠키히를 생각해서라도.
“언젠가 리스크를 포함해서 모조리 알려서, 가족들도 확실히 각오하게 하는 방법도 어떻게 보면 있을 수 있지만요. 그 방법은 아무리 해도 너무 리스크가 커요”
“그렇지. 아무래도 하이리스크다. 그렇다고 하이리턴인 것도 아니고. 차라리 로-리스크에 로-리턴인 방향으로 가고싶은거지”
“로리리스크에 로리리턴이라니, 이건 놀랄 일이군요? 아라라기씨는 대단한 주의를 가진 방향으로 가시려는거군요”
“안 가!”
어쨌든 이 녀석은 날 로리콘 취급하는구나.
절대 아니다.
난 로리콘의 파편조차 아니다.
애초에 내 애인인 센죠가하라에게 로리 요소같은건 먼지만큼도 없는거다.
그녀석은 어느쪽이냐고 하면 실제 연령보다 좀 더 들어보이는 타입.
“아니, 그건 위장커플이잖아요?”
“그럴 리 없잖아! 뭐야 위장커플이라니 그 신선한 용어는!”
“아라라기씨는 사실은 로리콘이라서 절 좋아하고 센죠가하라씨는 사실 백합계여서 칸바라씨를 좋아하는거고”
“우와, 리얼해서 싫어! 생각하고 싶지 않아!”
확실히 네녀석이 좋지만 후반은 좀 괴로워! 최근 진심으로 금슬좋아보인다고 그 발할라콤비!
이미 공백을 메워버릴 만큼!
“뭐 그건 됐고, 롤링(폭주족) 아라라기씨”
“나한테 재밌어보이는 정보 붙이지 마! 그리고 롤링에 로리콘적인 의미는 없다구!”
“그런소리하면서 아라라기씨,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땐 어차피 플로어링(마룻바닥) 저택에 살거잖아요?”
“이 시대에 혼자산다면 당연히 플로어링이잖아!”
“낚이지 않을 줄이야, 트롤링”
“트롤링같은 의밀 알까보냐!”
어휘 풍부한 녀석이구만!
뭐하는 초등학생이야!
하치구지는
“후우”라며 숨을 내쉬었다.
간격을 둔 것 같다.
“저기요, 크라라기씨”
“한 글자 차이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예로는 꽤 좋은 예이다만 하치구지, 날 알프스 소녀에게 응원되어서 일어설법한 휠체어의 아가씨처럼 부르지 말라고. 크라라기씨는 못 서. 내 이름은 아라라기다”
“실례. 혀 깨물었네요”
“아니, 일부러야....”
“키무머써요”
“일부러 한 게 아닌가!?”
“키 매니아”
“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곳에 착지했다구!”
깨물었어요랄까 최속으로 신이 난입하고 있어!
네 일본어!
“저기요, 아라라기씨”
하치구지가 말한다.
고쳐 말한다.
“괴이라는건 -- 말하자면 무대 뒤편이예요”
“무대 뒤편?”
“보통은 무대 위만 보이면 되는거예요 -- 그게 현실이라는거예요. 그런데도 가끔 무대 뒤를 보러 오는 중생들이 나타나서 무수한 맹한 것들을 말하는거죠”
“......”
“모르면 모르는 쪽이 나은거예요. 거기다 그 무대 뒤편을 알게 되는걸로 마치 세계의 음모를 해명한 것 마냥 생각하게 된다는건 너무나 엇나간 이야기 -- 오히려 괴이를 알게 되어서 모르는 일이 늘어버리는 거라구요”
“......그런가”
뭐랄까.
말 하게 되었구나 이녀석도.
옛날엔 괴이같은것도 잘 몰랐을텐데 -- 아니, 이녀석이 잘 모르고 있던건 오히려 자기 자신이 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른다고 하면 -- 아무것도 모르는거다.
그러니까 말 할 수 있는것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아직 -- 그런 상태인거겠지.
“괜찮지 않아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고민같은거 생각 해 봐야 백년후엔 웃을 일이 된다구요”
“꽤 오래 걸리는구만!”
아마 나 그 무렵엔 죽어있을걸!
죽어버린다구!
“네. 그러니까 생전에 머리 싸매고 고민한 결과 죽은 뒤엔 웃음거리가 되는거죠”
“최악이야!”
“사람 소문도 75명(*원래는 사람 소문도 75일. 소문은 길게 가지 못함)이라고 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전파되는거야!?”
“현대엔 인터넷이 있으니까요. 75명에게 알려지면 전세계에 알려진거랑 똑같아요”
“싫은 이야길 들었어!”
“고민해도 결론이 안 나오는건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아라라기씨는 ‘내 목소리 뭐랄까 애니에서 나올법한 목소리잖아-’ 라고 고민하고있는 성우같은거예요”
“확실히 그런 무의미한 고민은 없겠군......”
“그건 그렇다 치고 아라라기씨, ‘팬레터 언제나 고마워요! 전부 다 읽어보고 있어요!’ 라는 만화가랑, ‘블로그에 감상 적어주는거 고마워요! 전부(검색해서) 읽고있어요!’ 라는 만화가 B, 하려는 건 똑같은데 어째서 이렇게나 인상이 다른걸까요?”
“현대사회의 어둠을 찢어버렸습니다!”
아니.
그런 엄청난 가장은 아닌가.
“그러니까 아라라기씨”
하치구지가 말했다.
“아라라기씨는 혹시 가족분께서 불행하게도 무대 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 그 때엔 살짝 안내해주면 되는거예요. 그 때 까진 아무것도 안 하는게 정답이예요”
“.......그런가”
아무것도 안 하는것도 -- 선택지의 하나.
그렇구만.
“강하게 말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의식하지 않게 되는거죠”
“응. 뭐 그럴지도”
멱살잡고 싸우는 것 정도는 해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츠키히가 생각할정도로 나도 어른이 된 건 아니니까.
단순히 무대 뒤를 훔쳐봤을 뿐이다.
그러니까 -- 어린애인건 서로 마찬가지다.
“네. 강조하자면 ‘여동생을’, 이상하게 의식하지 않는거죠”
“여동생에 강조하지마! 이상한 의미로 들려!”
그러니까 ‘가족’ 이라고 했건만!
들켜버린거냐!
“......라고. 꽤 이야기가 길어졌군”
센고쿠네 집에 놀러가는 중이었다.
슬슬 가 보지 않으면.
“미안하게 됐군, 하치구지. 붙잡고 있어서. 너도 어딘가 가는 중이었지?”
“아, 그게, 별로 그런 건. 전 언제나 길을 헤매고 있을 뿐이예요”
“그런 바보같은......”
“강조하자면 아라라기씨네 집이 이 근처였던가-, 최근엔 못 만났네-, 어쩌면 만날지도-, 라던가, 그런 걸 생각하며 산책을 했어요”
“오오”
뭐랄까.
기쁜 이야길 해 주는군.
“좋아좋아, 하치구지. 다음부터 날 보게 되면 네 쪽에서 끌어안아도 되니까”
“아니 그런 기분은 안 들어요.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딱잘라서 아라라기씨는 제 취향이 아니니까요”
“초등학생한테 차였어!”
쇼크다!
이런 충격은 없었어!
츤데레가 아닌 녀석한테 착각하지 말라는 소릴 들어버렸어!
“.......덧붙여서 넌 어떤 남자가 취향인데”
“선인같은 사람에게 두근거립니다”
“연상캐릭터에도 정도가 있어!”
최저한 앞으로 몇 세기정도 살아있지 않으면 안 돼!
허들 높아!
“이상한데.... 너랑 난 함께 이런저런 모험을 하고 사지를 헤쳐나온 사이인데”
“그게 어떻게 된 건가요”
“흔들다리효과란거 알아?”
“아아, 흔들다리 위에서 단 둘이 되면 별로 싫어하지 않는 상대라도 떠밀어버리고싶어지게 된다는 일종의 심리학이죠?”
“그런 무서운 이야기 아냐!”
뭐.
그건 그것대로 있을법한 심리학이지만.
역 플랫폼에서 전철이 들어오는걸 기다릴 때 이유없이 앞사람을 밀쳐내서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
흔들다리 효과랑은 정 반대다.
“애초에 전 아라라기씨와 이런저런 모험을 하며 사지를 해쳐나온 경험이 없는데요”
“무슨소리야. 내 아방류 도살법으로 몇 번인가 널 구해줬었는데”
“아라라기씨, 아방의 사도였습니까!?”
“응. 용자인데 살법”
“정말 기억에 없는데요”
“아아 그런가. 모험 마지막에 넌 날 감싸고 머리에 받은 상처 때문에 기억상실이 일어나버린거야”
“그런 감동적인 라스트가!?”
“그런거야. 병원 침대에서 정신을 차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네가 말한거야”
“‘여긴 어디, 난 누구?’ 라고?”“아니, ‘고교는 어디, 난 사립?’ 이라고”
“기억을 잃은 학력사회의 포로예요!”
“넌 날 잊었다고 해도 난 절대 널 잊지 않을거야”
“그, 그럼, 헌신적으로 절 간호하는 아라라기씨의 화면에서 스탭롤인거군요!”
“아니, 네 자매랑 결혼하고 끝났어”
“저, 완벽하게 잊혀졌어요!”
“틀려! 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병원에 있잖아요!?”
그 말대로다.
하치구지에겐 원래부터 자매가 없지만.
외동딸인거다.
“좋아. 그 동안에 네가 반할법한 남자가 되어주지. 그 때에서야 고백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으니까”
“늦나요?”
“아니 미안 고집피웠어 언제나 기다릴게 죽기 직전이라도 괜찮으니까 고백해줘”
꼴불견이었다.
반할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어.
“그럼, 또”
“네, 또 만나죠”
“하치구지”
난.
멋없게시리 헤어지는 인사 뒤에 물어봤다.
어쩌다 묻게 되 버렸다.
그건 물어볼 일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너, 사라지거나 하진 않지”
“하아?”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치구지.
정말 신기한듯이.
“아니 그 -- 한동안 못 만나서, 걱정한건 정말이야. 오시노도 어딘가 가버렸고, 그런식으로 너도 언젠간 없어져버리는건 아닌가 해서 --”
아니.
그건 하치구지의 사정이고.
오히려 저 쪽이 하치구지에겐 좋을지도 모르지만 -- 그게 하치구지의 집안 사정이라면 그렇게 되는걸지도 모르겠는데.
그치만 뭐랄까.
그래도, 라는거다.
“이히히”
하치구지는.
뭔가 유쾌하게 웃었다.
어린애다운 웃음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 사정만 생각하는 아라라기씨가 그런식으로 자신의 사정을 밀어붙이는 상대라는건 아마 저나- 잘해야 시노부씨정도겠네요”
“읏”
“역시 아라라기씨는 롤링이예요”
“으으음”
생각 밖이다.
애초에 시노부는 오백살인걸.
롤링이랄까 로톨(늙은이)이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로”
“하치구지 -- ”
“저도 질문하나 하겠는데 아라라기씨. 혹시 또 제가 어쩔 수 없을만큼 곤란해한다면 그 때엔 도움받아도 괜찮을까요?”
구해진다.
오시노가 정말로 싫어하던 말.
그치만 -- 난.
역시, 그 남자에게 구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남자처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할거야. 당연한거잖아”
난 즉답했다.
“다른 녀석에게 널 구해줄 틈 같은건 주지도 않을거야”
“상담해도 좋다는 이야기죠?”
“랄까, 나한테 상담하지 않으면 화낼거니까”
“아라라기씨다운 말이네요”
하치구지는 얼버무리듯 그렇게 받아쳤다.
그 웃음은.
어딘가 덧없게도 보였다.
“제가 미아가 아니게 된 뒤에도 이 마을에 있는건 분명한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를 알 때 까진 전 없어지거나 하진 않아요”
하치구지는 자기 이야기인데도 -- 그게 마치 다른사람 일인냥 말했다.
어떤 의미론 다른 사람 이야기겠지.
모르는 자신은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이다.
“의미가 있다 -- 는 건가”
“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화 되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편은 있을거라구요”
“.......”
또 알 수 없는 발언을 시작했다.
정말로 의미를 모르겠다.
“애초에 전에 결론지은걸론 절 워낙에 내던져버려서요. 시노비씨를 찾으러 나간 채로 전 대체 어디로 간걸까요”
“나한테 물어도 곤란하지만..... 네가 어디로 간진 너밖에 모른다구. 어차피 미아라도 된거겠지”
으-음.
그러고보면 이녀석 에필로그가 없었지.
역시 사회진행이 어려웠던건가.
나중에 반성회다.
“그치만 하치구지. 난 네가 없어지느니 속편이 없는 쪽이 나아. 네가 이 마을에 있는 의미도 몰라도 돼”
“기쁜 이야길 해 주시네요. 언젠간 제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말하는 하치구지.
“그 땐 확실하게 아라라기씨한테 인사하러 올거니까요”
“.........그런가”
비슷한 대사를 말하며.
결국, 아무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그 남자를 생각하며 -- 난 끄덕였다.
“그래. 그럼 부디 꼭 그렇게 해 달라구”
“네에. 화내는 건 무서우니까요”
하치구지는 한번 더 얼버무리듯 그렇게 말하곤.
웃음을 지웠다.
005
중학교 2학년 센고쿠 나데시코의 가장 특이한 점은 너무나 어른스러운 점과, 그런 앞머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길어진 앞머리를 옆으로 나누지 않고 마치 루카와 카에데(슬램덩크 : 서태웅)처럼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뭐랄가 조그만 아이실드처럼 보인다. 센고쿠 자신은 머리카락 틈으로 시선을 보내는 듯 하지만 다른사람은 그녀의 눈동자가 도저히 보이질 않는다. 뭐 그 특이한 머리형태는 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그녀가 사람 낯을 가리는데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거다.
그러고 보면 외출할 땐 모자를 쓰는 경우가 많은 센고쿠지만 일반적으로 모자는 마음의 벽을 실체화한 거라고 한다. 오시노에게서도 부끄럼쟁이라고 불렸던 센고쿠이지만 그 수준이 되면 낯가림이라던가 부끄럼쟁이라던가라기보단 이미 인간불신이지.
오빠쯤 되는 사람으로선 그녀의 앞날이 불안하다.
저래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려는걸까.
뭐 그런걸 생각하며 센고쿠 집의 인터폰을 눌렀을텐데(덧붙여 센고쿠의 집은 일반적인 2층건물 민가이다. 센죠가하라처럼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니고 칸바라처럼 무식하게 큰 무사집안도 아니다. 보통이다), 마중과 함께 들어간 난 깜짝 놀랐다.
아니, 깜짝놀랐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경악했다, 고 하는게 좋겠다.
경천동지였다.
센고쿠가 앞머리를 올리고 있었던거다.
귀여운 핑크(쇼킹한 쪽이 아니라 어른스러운 핑크)색 카츄사로 옆머리까지 뒤로 넘겼다.
눈이 눈에 확 뜨인다.
아니, 얼굴이 눈에 확 뜨인다.
이녀석 이런 얼굴이었나.
생각한대로이긴 하지만 -- 그래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귀여운 얼굴이었다. 상대는 연하의 여동생같은 존재인데 조금 두근거릴정도로.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그녀가 이 날 만큼은 가슴을 펴고 날 맞이하러 나온거였다.
괜시리 뺨을 붉히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렇게나 놀고싶었던걸까.
“......센고쿠, 집에선 그러고 있는거야?”
“그.... 그게”
허둥지둥이다.
아아, 언제나의 센고쿠라서 안심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질문해본 것 뿐인데 이만큼 허둥대는건 틀림없이 센고쿠다.
“그, 그러고, 라는게, 어떤”
“아니, 봐, 그 앞머리”
“아, 앞머리? 무... 무슨 소리지”
두려울정도로 센고쿠는 얼이 빠져있다.
아니, 모를 리가 없잖아.
“벼, 벼, 별로, 코요미오빠가 우리집에 처음 놀러오니까 용기를 내 보는 짓, 나데시코는 하지 않는다구요”
“흐응.....”
뭐.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