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스물,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레이무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나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지금 자신이 마시고 있는 차가 적당히 우러나지 않아서 살짝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저런게 다가온다고 해도 거기에 신경을 쏟을 이유가 없다.
어째서 차 맛이 이렇게 구린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은 품질을 보증하고 있었고 오늘도 그랬어야 할 터인데.

스물스물, 그렇게 다가오는 건 누구인가.
이 이상 신경쓰지 않으면 기분이 상해있든 어떻든 자신에게 불안요소가 될 것 같았기에 레이무는 그 쪽을 향했다. 유카리인가? 자신의 푹신한 가슴에 안기라며 또 끌어안아서 숨막히게 할 셈인가? 숨막혀 죽지야 않겠지만 그건 싫다. 아니 그보다 유카리라면 스믈스믈 다가오는 짓을 할 리가.

있겠지. 확신범이다. 날 놀래켜주려고 하든, 내가 긴장하게 만들든 그녀라면 이런 변태같은 취미가 있을 법 하다. 그치만 나로선 이건 좀 곤란하고, 어쨌든 거의 한두걸음 수준 거리에 들어온 모양이라 레이무는 일단 퇴치하기로 했다. 요괴 전용, 모르긴 몰라도 레밀리아까진 한 방에 천정까지 날아갔다 바닥에 돌아올 수 있는 지뢰형 부적. 그걸 슬그머니 자신의 발등 아래에 깔았다.

홀짝, 차를 마신다.
스믈스믈, 그녀가 다가온다.
홀짝, 차가 넘어간다.
스멀스멀, 소름이 돋을만큼 소리가 작아졌다.
홀짝, 이제 다 마셨다. 하아.

"레이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이무는 몸을 뒤로 뺐다, 회심의 미소를 마음 속으로 지으며 그녀를 돌려다봤다, 그리고 그 레이무의 표정은 이내 황당함과 당황으로 변했다.

"사, 사쿠야!? 잠깐만, 꺄악!"

목을 조르려는 것 처럼 팔을 레이무의 목으로 와락하고 끌어안은 그 자세는 레이무가 몸을 돌린 탓에 사쿠야가 레이무를 끌어안고 레이무는 사쿠야에게 안긴 채 받듯이, 그러니까 레이무의 두 다리 사이에 사쿠야가 파고 든 굉장히 미묘하고 수치스러운 상상이 전개될 수 있지만 둘 다 여자니까 일단은 괜찮지 않은 자세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푹신하지 않은 가슴에 닿는 사쿠야의 가슴은 푹신했다.
조금 분했다.

"레이무~ 레이무~"

사쿠야가 레이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벼대는 통에 레이무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아둥바둥 사쿠야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치만, 사쿠야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무에게 안겨왔다.
이 녀석, 메이린에게서 이상한 게 옮은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이 바보 메이드!"

필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며 물어보자 사쿠야는 레이무의 목에 양 팔을 감은 채 얼굴을 떼고 말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인간이 그리워서 말야. 메이린도 아가씨도, 둘 다 오늘은 꼴도보기싫어."

"하아... 그러세요. 그럼 마법의 숲에 가서 멍청한 마리사라도 괴롭히면 될 걸, 왜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오는거야."

레이무와 눈을 맞춘 사쿠야의 표정이 너무나 밝아 레이무는 뭐라 형용하지 못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녀석, 뭘 잘못 먹은게 틀림없어. 아니, 전부터 발작적으로 자신에게 화풀이는 해 왔지만 이걸 화풀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두려웠다. 차라리 탄막을 전개하든, 나이프를 들이밀든 하는 쪽이 좀 더 상대하기 편하다.

"그런 땅꼬맹이따위에 관심있을까봐? 난 그저 얌전한 레이무가 너무 좋아~ 이렇게 거부하는 모습이 특히 더 맘이 편하다니까. 거기다 마리사는 집에 있는 날이 더 드물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파츄리라던가도 있잖아? 왜 나냔말야."

"그야..."

다시금 안겨들며 사쿠야가 말했다.

"레이무는 왠지 안심이 되는걸. 그러니까 조금만 이러고 있어주라~ 응?"

어휴 정말, 유카리도 아니고 이 녀석 왜 이래.
잠시동안 몸의 자유를 포기한 레이무는 사쿠야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치만, 이내 그만두었다. 귀찮아서 그만둔 건, 절대 아니다.
뭐, 이것도 이것대로 좋나.
찻맛이 구려서 쓸쓸하기도 했고.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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