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8. 01:55 동방
[단편]환상향의 두 소녀가 이번 디스가이아 예약판매 사태에 대해 내놓은 반응
톡, 톡, 톡, 톡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추어 창문을 두드리면, 창문 저 편에서 두드리는 빗방울들도 같이 리듬을 맞춘다.
거기서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히면, 떨어지는 빗방울 모두가 음악의 리듬을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 리듬 뒤에 이어지는 가사는, 어떤 가수의 노래가사.
"그 예쁜 눈동자로 날 바라보지 말아줘,"
그 아이를 떠올린다.
룸메이트가 틀어놓은, 평범한 팝 음악.
"그러면서 무방비하게 웃지도 말아줘."
그 아이의 미소를 떠올린다.
새카만 눈동자와, 작고 귀여운 입술.
"어느 틈엔가 꿈에서도……."
떠오른 미소가, 벙글벙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새카만 머리카락 탓인지 얼굴이 좀 작아 보인다.
그렇지만 어째 이건 좀 무섭다.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짜증나니까 얼굴 좀 저리 치워."
미소를 떠올리고 자시고, 노래를 틀어놓곤 가사에 맞추어 이쪽으로 슬금슬금 와서 얼굴을 들이대며 히죽 웃는 아야 탓에 노래에 집중할 수 없다.
"왜요? 꿈에 나올 만큼 아름다운 얼굴인가요?"
"악몽이겠지."
이 녀석은 내 기숙사 동거인, 샤메이마루 아야. 본인도 자신이 예쁘다고 말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단 예쁜 얼굴이다. 어쨌든 학기도 시작되었고, 별 생각 없이 친하던 후배들 중에서 제일 멀쩡해 보이고 경제능력이 있는데다가 그럭저럭 부려먹을 만한 아이를 룸메이트 삼아 기숙사에 함께 들어왔다. 돈도 굳히고, 나도 아야도 제법 요리를 잘 하는 편인데다 둘 다 소식이어서 꽤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 이 녀석을 선택한 건 좋았는데 그것과는 다른 부분에서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녀석, 대책 없이 자기 자신이 잘났다. 거기다 묘하게 행동이 사차원이어서, 상대하면 피곤해진다.
"저도 이 노래 알아요, 잔다르크의…… 뭐더라, 다이아몬드 체리?"
시선을 위로 향하고 정말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허공에서 손가락이 맴돌더니, 내게 내놓은 대답.
그 대답에 난 풋 하고 웃곤, 그녀의 얼떨한 얼굴에 대답해줬다.
"뜻 자체는 같을 테지만 아냐. 다이아몬드 버진이야."
체리는 미국 속어로 처녀라는 뜻이지. 나는 손에 든 부채를 팔락팔락 부쳤다.
"그렇군요. 다이아몬드 버진이라……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단단한……"
"덥네. 거기다 비까지 와. 짜증나."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아야를 애써 무시한 채, 18번 이야깃거리인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더운 건 사실이었다. 한여름이고, 창문을 열려고 해도 비가 들이쳐서 곤란하다. 전자제품에 책투성이가 된 기숙사는 도저히 물을 들여놓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놓아둔 가구 대부분이 목조여서 비를 맞으면 더욱 더 곤란해진다.
"좋게 생각하세요. 아, 전 괜찮으니까 정 더우면 벗든가요."
"이미 더 벗을 것도 없는데?"
민소매 셔츠 한 장에 반바지 한 장.
방에 틀어놓은 선풍기 한 대로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아까 셔츠 안의 브라마저 벗어던진 상태인데도 덥다.
물론 이것마저 벗어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룸메이트도 신경이 쓰이고 더군다나 쓸데없이 큰 이 창문이 불안하다.
창문 바로 앞에 남자화장실이 딱 붙어있는 대단한 정경은 아니지만, 요즘엔 멀리서 망원경으로도 본다니까 안심할 순 없다.
또 이 건물은 여자 기숙사. 노림수가 있을만한 장소이고, 여하튼 여건이 좋지 않다.
룸메이트가 신경 쓰이는 건 어떻게 보면 작은 고민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남아있는 그 두 장을."
"눈이 위험해 너. 시선 치워."
작은 고민이었으면 한다.
아야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아니, 하던 작업을 마저 해 줬으면 정말 고맙겠는데.
"그러니까 보여주세요, 그 옷 아래의 낙원을!"
"닥쳐!"
작은 고민만은 아닌 것 같다.
빠악,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내 발에 아야의 머리가 걸린다. 아야의 손이 스멀스멀 내 몸으로 다가온 탓에 돌려차기를 먹여버렸다.
의도하고 걷어찬 건 아니다. 정말로.
아, 정말 위험했다.
"속…… 속옷은 살색……"
넘어진 아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기에 입 근처를 밟아버렸다.
속옷이 살색인 게 아니고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한 번 더 밟았다.
그 때, 딩동 하고 현관의 벨이 울렸다. 아야가 풍신소녀 주제가 8비트버전을 재생하도록 세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내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현관 벨이다. 대체 동네 쪽팔리게 그게 무슨 망신살이야.
"택배입니다!"
건장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득 쌀 배달 왔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한 손에 휴대폰을 꼭 쥐게 되는 건 분명 기분 탓 일거다.
"누가 시킨 물건이지?"
내 말에, 내 발 밑에 깔려있던 아야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아, 그거 제 거예요. 물건 좀 받아주시겠어요? 라고 하고 싶지만, 이런 개방적인 레이무씨는 저 혼자 보고 싶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탕탕탕,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택배원과 뭔가 혼자 말하더니 잽싸게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는 아야.
끼익,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금 건장한 택배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샤메이마루 아야 씨 맞으시죠? 여기 물건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용무만 마치고 더 이상의 말없이 돌아가는 택배기사와, 그런 택배기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도 탕하고 문을 닫는 매정한 아야.
현대 사회의 흉흉함과 가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장면이다.
어쨌든 112를 부를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뭘 그리 빤히 보세요?"
철컥하고 문을 잠금으로써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준 아야가 돌아오며 말했다.
"네가 들고 있는 게 뭔지 궁금해서. 위험한 건 아닐까- 하고."
사실 물건이 아무리 위험해봐야 아까 그 택배 아저씨만큼 두렵지는 않겠지만.
성큼성큼 다가온 아야는 내게 그 포장을 내밀었다.
"그럼 레이무씨가 뜯어주실래요? 쾅하고 터지면 큰일 나잖아요. 제 얼굴이."
쾅하고 터지면 네 얼굴만 큰일 나는 건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며 난 물건을 받아들었지만 아야에게 다시 내밀었다.
"어차피 나한테 온 것도 아닌데 네가 직접 풀어. 거기다 시킨 사람도 너잖아? 그런 위험한 건 열어보는 거 아냐."
"제가 시켰다고 위험할 건 없잖아요. 거 너무하네."
새된 목소리로 툴툴거리며 포장을 뜯는다.
부석부석 그녀가 연 박스 안에서 보인 건, 모 게임기의 타이틀.
"아아, 그건!"
"어, 아세요? 이 게임."
"아니,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무심결에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빼앗아 안에 있는 펭귄 인형을 꺼내들었다.
펭귄이라고 할까, 이 세계에선 '프리니' '10원짜리 목숨' 등으로 불리는 그것은, 예상외로 귀여운 모 게임의 마스코트이다.
"이거! 그래 이거!"
내가 양 팔로 인형을 번쩍 안아들자, 상자를 받고 있던 아야가 말했다.
"네, 디X가X아 예약한정판 프리니 인형인데요."
"점심 즈음에 일어나서야 XXX이아 한정판 예약이 밤 12시를 기점으로 시작해 내가 잠들기도 전에 끝났었다는 걸 알고 내가 그렇게 목 놓아 울고 있는 걸 구경만 한 주제에! 자기건 나 몰래 주문했다 이거지!"
"전 레이무씨가 그 게임에 관심 있는 줄 몰랐거든요. 평범한 폐인양성 게임이잖아요."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야는 오히려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깨를 으쓱, 하는 그 동작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어서인지 화가 났다. 그렇지만 잘못은 내 잘못. 아야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으아아아아아~ 너무하네, 이기적이야, 무신경해, 룸메이트로서 실격이야!"
라고 할 것 같았나? 나는 한 손으로 인형을 든 채 아야가 당황하거나 곤란해할만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야의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분이 업 된 것 같아 더욱 더 분해졌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사고를 식혔다.
"흠……
그러니까 이 인형은 내가 압수하겠어."
그렇게 말하곤 양 팔로 프리니를 꼭 끌어안고 뺨에 비볐다.
어떠냐, 내가 이겼지! 그렇게 생각하곤 인형 틈으로 아야의 얼굴을 흘끗 보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별 불만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야 원……"
아니, 불만과는 다른 감정이 눈동자에 섞여있는 것 같다.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뭐야, 그 눈빛."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 내가 쏘아보자 그녀는 헤실 웃었다.
"아뇨, 역시 제 룸메이트는 꽤나 귀엽다고 생각해서요."
"……"
난 무의식적으로 인형에서 얼굴을 떼고, 흠흠 하며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런 말 한다고 해서 돌려주진 않을 거니까, 흥."
"알았어요, 인형은 레이무 씨 드릴게요."
"진짜?"
"진짜라니까요."
선선히 그렇게 말한 아야는 게임 타이틀을 박스에서 꺼내들었다.
비닐을 벗기고, 열고, 첫 플레이임에도 아무 감흥 없는 표정으로 PSP에 UMD를 삽입한다.
이미 하던 일은 손을 놓아버린 것 같다.
"처음을 지켜줄 줄 모르는 비매너 플레이어네. 그래서야 게임을 즐기는 것 같지 않잖아?"
"게임의 재미는 게임 자체에서 찾아야지, 이런 부가적인 곳에 열중하다 보면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요."
"특전으로 이런 인형까지 얻어 오시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니 설득력 없네요. 베에."
아야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눈에 손을 대곤, 눈에 있던 렌즈를 빼 내어 옆에 있던 렌즈 집에 렌즈를 넣었다.
한손으로 렌즈를 빼는 저 기술은 몇 번 봤지만 정말 신기에 가까웠다.
"헤에, 정말 볼 때 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너 렌즈 빼는 것 말이야. 어떻게 왼 손 한 손으로 렌즈를 뺄 수 있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아야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듯 고민하다가, 이내 나를 보곤 말했다.
"뭐 레이무씨는 눈이 충분히 좋으니까 어떻게 빼는지를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이건 그냥 능숙해진 것뿐이니까요.
다리가 없는 사람이 팔로 뛰어다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론 불편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하는 설명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그렇게 말한 아야는 렌즈집 뚜껑을 대충 닫은 뒤, 왼손으로 안경집을 열었다.
안경집에서 한 손으로 안경을 꺼내고, 코 위에 걸친 뒤 능숙한 솜씨로 한 손으로 안경알을 닦는다.
정말 신기하다.
"그렇게 해서 게임에 집중이 돼?"
"게임은 결국 단순한 것이니까요. 저는 그저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 선제 플레이를 한다고 할까요?
아래층에 있는 쿠로코……가 아니라 하타테와 함께 신문을 내지만 그녀는 주로 연예 분야고, 전 이 쪽이라 서요. 각자의 취미라는 거죠."
소리로 보아 게임은 이미 가동되고 있는지, UMD가 돌아가는 소리가 위잉-덜컥, 위잉-덜컥하고 울렸다.
난 프리니를 품에 안으며 아야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야, 너 눈 많이 안 좋아?"
내 말에 처음으로 고개를 돌린 아야의 얼굴엔 안경이 걸쳐져 있다.
그 얼굴은 어쩐지 나보다 한참은 연상인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원숙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보다, 살짝…….
살짝, 매력적이다.
"아주 많이 안 좋은 건 아닙니다. 안경이 없어도 평범하게 살아갈 순 있지만, 시력을 보정해서 남들보다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기자로썬 사소한 것도, 커다란 일도, 가까운 곳도, 먼 산과 바다도 어디든지 기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자제품을 사용할 때엔 되도록이면 렌즈를 사용하지 않아서요. 안경이 전자파를 막아줄 것 같은, 그냥 제 나름의 미신입니다."
아야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난 아야가 저렇게 안경을 끼운 채 게임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혀를 물듯이 내밀곤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에 들어갈 기세로 PSP를 조작하던 아야. 때마침 하던 게임이 니X포 스X드라는 레이싱게임이어서, 몸까지 좌우로 비틀어가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멀쩡하게 생겨선 그러고 있던 모습까지 떠올린 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일부러 신음을 흘렸다.
"흐음……"
생각을 거둔 뒤, 아야의 옆얼굴을 보다가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저기 아야."
"네?"
"게임, 재밌어?"
타닥타닥 버튼 누르는 소리, 액션게임이나 격투게임쪽은 아닌지 템포가 느리다.
나는 나도 모르게 꺼내려던 말을 집어넣고 엉뚱한 말을 꺼내어버렸다.
바보인가, 난.
"예…… 뭐. 나중에 레이무씨도 빌려드릴까요?
이 게임 자체는 아시죠? 그러니까 프리니를 알고 계신 거겠지요."
"아…… 응."
여전히 게임기에 시선을 집중한 채 대답하는 아야.
물어보려면 오히려 지금일까.
"저기 아야."
"아까도 부르시지 않았나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그녀는 PSP를 탁, 소리가 나게 책상 위에 얹어두고 이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정면에서 아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왜인지 조금 부끄러워서, 이번엔 내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내 품 안에는, 프리니가 꼼지락대고 있었다.
안 돼, 게임에 집중했을 때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러면 한층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게 말이야, 그 안경. 있잖아."
"……네."
답답하다는 듯, 뜸을 들이며 대답하는 아야.
난 아야 몰래 심호흡을 하고 아야에게 말했다.
"나, 아야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뭐랄까. 괜찮다고 생각해. 아니 평소의 얼굴이 이상하다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네?"
무언가 얼이 빠진 그녀의 대답에 난 자신을 잃었다.
아냐, 라고 얼버무리려던 찰나, 난 프리니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래, 10원짜리 프리니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내가 여기서 주저앉아서야, 난 프리니만도 못한 주인공이 된다.
어딘가의 꼬맹이 마왕 꼴이 나기 전에, 하려던 말은 마저 해야 한다.
내가 고개를 들고, 고개를 숙이려다 다시 내 얼굴을 주시하는 아야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상냥한 그 눈동자를.
"그러니까, 평소 얼굴도 예쁘지만 안경을 쓰면 멋있어 보인다구! 평소에도 내 앞에선 안경을 쓰고 있어줬으면 한다는……거야."
아야는 얼빠진 표정에서 한층 더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거기다 안경까지 흘러내려, 90년대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가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으……"
그렇게 내 짧은 신음이 방안에 울리고.
이내 정적.
정적.
그렇지만 아야가 그 정적을 깨고 내게 말했다.
"뭐 제가 한 얼굴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이해했어요. 전 여자이지만, 그래요 도구를 써서 살짝 중성미가 풍겼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보다 이거 놀랐는데요, 레이무씨가 그런 취향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여하튼 부끄러우실 텐데 힘들게 말씀을 꺼내셨으니 그 말은 받아들여서 기숙사 내부, 여기 방 안에선 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안경을 끼우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학교라던가, 야외에서까지 안경을 끼우라고 강요하시면 조금 곤란합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제 생활이고 자유이며 취향이기 때문에, 레이무씨가 그 점은 충분히 존중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설령 저희가 뭐랄까- 일종의 연인이나 커플 사이라고 한대도 그 부분을 속박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서로간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구절절 말이 많아지고,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던 눈이 천장 한 구석에 있는 거미줄을 뚫어지게 보고 있고, 책상 위의 PSP 바로 옆을 타닥타닥 빠른 속도로 두드리고 있는 아야는 솔직히 내가 보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난 그런 아야의 말을 끊기로 했다.
"아 됐어, 해 준다면 그걸로 고맙고, 하던 게임마저 해. 난 프리니랑 놀 거야."
내가 홱 돌아누워 벽을 보자, 어딘가 목소리에서 기운이 빠진 아야가 내 등에 대고 이야기했다.
"네…… 뭐, 저도 그 프리니가…… 아니, 아닙니다. 지금 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말을 끊고 다시 PSP를 집어 들곤 타닥타닥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야.
"흥, 안 돌려줄거다 뭐."
난 아야의 인기척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프리니를 품에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