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없던 어느 계절에,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가을이었다.
"이만 가볼게. 귀찮은 걸 떠안고 있느라 고생했어."
"누구 옆에 있든 귀찮은 녀석이니까 뭐. 내가 잠깐 대신한거겠지."
"어이.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너희들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그래. 평화롭다고 해 둡시다 우리.
평화로운 하쿠레이 신사 앞에서 마리사와 앨리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빗자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레이무는 그 둘을 배웅하고 있었다.
별달리 특별한 것 없이, 특별한 일 없이 - 작년즈음엔 날씨가 말썽을 부렸지만 -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할 일 없던 마리사가 쳐들어와 신사를 헤집어놓고, 앨리스가 따라와서 그녀를 챙겨 돌아간다.
언제나처럼의 하쿠레이 신사였고, 언제나처럼의 환상향이었다.
조금 조급해보이는 앨리스가 마리사를 보채는 통에 레이무는 방 안을 치우지도 않은 채 그들을 배웅했지만,
그다지 특별한 이유로 그러는건 아닐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저- 그걸거다. 앨리스니까.
멀어져가는 둘을 멍하니 바라보던 레이무는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낙엽좀 안 치워주려나..."
레이무의 등 뒤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낙엽, 치워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데요."
예상치못한 대답에도 놀라지 않고 레이무는 천천히 돌아섰다.
바람에 흩날리는 흑발, 무녀복 특유의 남는 소매, 그리고 그녀의 얼굴-
그 모습을 바라본, 예상치 못했던 방문자 역시 흑색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이무씨. 오랜만이네요?"
"응...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연회만 열리면 술통 챙기는게 누군데?"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잖아요."
웃으면서도 레이무의 말을 받는 그녀는 샤메이마루 아야.
단발에 묘한 치마, 그리고 수첩을 꽂은 그녀 특유의 블라우스는 별 특징 없는 깨끗한 맛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소녀 둘.
한 소녀는 긴 초록색 머리를 옆으로 묶은, 청색 무녀복 차림.
다른 한 소녀는 흰 단발에 큰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엔 동그란 방패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무기에 시선이 닿은 레이무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안녕하세요."
초록색 머릿결을 가진 소녀의 목소리가 신사 내에 울려퍼졌고- 레이무는 말했다.
"누구시더라."
"..."
"..."
"...기, 기억 못 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왜 있잖아요, 산 위에 있는 신사. 거기 지내는 사나에씨예요."
당황한 듯 아야가 부연설명을 했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레이무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아아- 그래그래. 응. 그래서 뭐 어쨌다고?"
"여기서 살고싶대요."
아야의 말.
"받아주시겠어요 레이무씨?"
덧붙이는 사나에의 말.
...레이무는, 눈의 초점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