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5. 15:33 동방
- 연정(戀情) - P.2
레이무는 멍하니 서 있다가 방문판매 나갔던 넋을 챙겨 셋을 신사로 안내했다.
타박타박 가볍게 흙을 밟는 아야, 조신하게 사박사박 걸어가는 사나에, 자박자박 어색한 큰걸음을 걷는 모미지, 그리고 걷는건지 떠있는지 알 수 없는 레이무. 네 인요는 그렇게 천천히 경내를 가로질렀다.
"이제 가을인데도 이 안은 덥네요. 후우-"
풀썩, 깔려있던 자리에 앉아선 느긋하게 부채를 꺼내드는 아야. 그녀의 부채가 팔랑일 때 마다 검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
레이무는 아무 대답도 없이 아야의 맞은편에 깔려있는 방석을 넘겨 아야의 옆에 두었다. 휙 둘러본 모미지가 말을 꺼냈다.
"누가 있었나봐요?"
"아마 앨리스씨와 마리사씨겠지."
아야가 대신 답했고, 레이무는 침묵으로 긍정하며 사나에 몫의 방석을 꺼내어 아야의 옆에 두었다.
가운데서 느긋하다 못해 퍼진 아야, 익숙한 태도로 그런 그녀의 머리를 무릎으로 받치며 꿇어앉은 모미지의 자연스러움과는 대조적으로 사나에는 뻣뻣한 태도로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려."
덜그럭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레이무는 방을 나갔다. 그런 레이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모미지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아야에게 말했다.
"레이무씨, 화 난 거 아닐까요?"
걱정스러워하는 모미지의 목소리를 들은 아야는 오히려 모미지에게 물었다.
"응? 왜?"
"그게, 갑작스런 일이기도 하고... 전 손에 칼까지 들고 있었으니까요."
아까까지 자신이 칼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하자 아야가 부채를 쥐지 않는 왼손으로 모미지의 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괜찮아. 사나에도 그렇고 너무 그렇게 긴장 할 필요 없어. 레이무씨는 지금 차 마실 일이 또 생겨서 신이 난거니까."
말하는 아야의 손이 볼을 거쳐 턱으로 내려갔고, 마치 개를 다루듯 간지르자 모미지의 표정이 느슨해졌다. 그 모습을 보던 사나에 역시 살짝 웃고는 긴장이 풀린 듯 몸을 단정히 했다.
아야의 예상은 적중했다. 레이무는 밝은 표정으로, 차를 담은 주전자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가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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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아이, 아니 무녀가 우리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거야?
아야 네가 재미로 장난치는건 아니고?"
아야는 눈을 감고, 펜을 손 위에서 돌리며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녀의 생각입니다. 뭐, 저로서는 이러든 저러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죠."
묘한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아야만의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흘렀다. 흘끗 그 얼굴에 눈을 두던 레이무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
"그보다, 이 하얀 꼬맹이는 뭐하러 온거야?"
뭔가 말하려는 사나에를 무시한 채 모미지를 지적했다.
"아야님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레이무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아야를 바라보며,
"대단한데, 모미지? 든든하겠어 아야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꺠를 으쓱한 아야가 답했다.
"뭐ㅡ, 지금은 지켜'지'고 있지만요."
아야의 장난에 모미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개숙인 모미지를 보며 레이무는 애처롭다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하네 아야. 그래도 널 위해주는 꼬맹이인데-"
"꼬, 꼬맹이는 아녜요!"
나름대로 위로하던 레이무의 말은 역효과였던 듯 했다. 모미지는 레이무에게 소리를 지르곤 이마까지 빨개져 고개를 휙 돌렸다.
"아하핫, 미안해. 사과할게.
그래서말인데, 사나에."
레이무는 모미지를 달래려는 듯 웃으며 사나에가 멍해져있는 의표를 찔렀다. 의도한 행동인지는 필자만이 알리라.
...아니 필자라고 알리가.
"네...네?"
당황한, 그래. 의표를 찔린 사나에는 고개를 번쩍 들며 대답했다.
"뭘 노리고 여길 오겠다는거야?"
"아..음. 어 그게말이죠... 하쿠레이 신사요."
정적.
아야는 부치고 있던 부채를 떨구고, 모미지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레이무의 표정을 살폈다.
당사자인 사나에는 자신이 한 말에 놀라 숨도 안 쉬고 굳어있었고, 레이무는 언제나처럼 차만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