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야가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치르노가 있어도 봄은 온다.
그리고, 그녀는-
햇볕이 눈부시게 경치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 경치 한 가운데에서 자그마한 아이 요괴가 자신의 주인에게 외쳤다.
"주인님, 저걸 보세요! 꽃이 피었어요!"
그 아이가 가리킨 곳을 본 요괴의 주인이 답했다.
"...그래, 그 분이 오시려는 모양이구나."
믿기지않게도 보랏빛으로 물든 벚꽃은 이 세상엔 없는것들이 자아내는 부자연스러운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설원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한겨울에 벚나무에 장난치지 마세요."
어느틈엔가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여인에게 덤덤히 환영인사를 건네자, 그 여인 역시 느긋하게 답했다.
"왜, 재밌지 않아?
봄에나 내릴법한 꽃눈이 진짜 눈 속에서 제 자태를 뽐내고 있잖아."
"하아... 뭐 유카리님께서 그러시다니 그런거겠지요.
...그건 그렇고, 조금 일찍 깨신 것 같네요."
늘어지는 태도로 주인에게 말하자, 유카리는 장난스레 답했다.
"우리 란이 혼자서 쓸쓸해할까봐 걱정이 돼서 말이야."
진짜 걱정돼, 그렇게 말하며 걱정하는 얼굴로 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란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하. 하. 하. 눈물나게 감사하네요.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납니다."
란의 섭섭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유카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못 본 척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린 시야엔 눈발이 약해지는 풍경이 들어왔다.
"됐으니까 할일이나 가서 하세요. 이 한겨울에 깨셨으면 뭔가 이유가 있을거아녜요."
란의 말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유카리가 말했다.
"귀찮아 보이는데 이만 사라져줄게. 덕분에 할 일이 생각나기도 했고... 고마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얼굴을 편 유카리가 란의 뺨에 입맞추자, 란이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하여튼 얘도 무드라곤 꽝이라니까. 부끄러워하는 척이라도 해 주면 어디 덧나니? 굿바이 키스야."
눈밭에서 뛰노는 첸에게만 시선을 향하며 대답했다.
"이상한 소리 하시는 걸 보니 우리 유카리님 맞네요. 다녀오세요."
"알았어- 첸 잘 돌보고 있으렴~"
마음쓰지 않는 듯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유카리는 발밑부터 꺼지듯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후에야 빈 자리로 시선을 옮기며 란이 말했다.
"조심하세요 유카리님. 유카리님이라면 문제 없겠지만, 요즘의 환상향은 좀 걱정되네요."
란은 욱신거리는 가슴 한 구석을 매만지며, 이제는 시들어 그 꽃잎을 찾을 수 없게 된 벚나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