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세요, 몸이 데워질거예요."

내가 차를 얻어먹는건 꽤나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난 따스한 코코아를 손에 들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축축하게 젖은 온 몸이 보송보송하게 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

"느낌이 아니고, 지금 말리고 있어요."

소악마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여 만든 마법진에서, 따스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외로 많이 친절해졌는데, 소악마. 그렇게 말하자, 소악마는 묘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건 칭찬으로 들으면 되나요? 사실, 주인님 명령이예요."

파츄리님이? 그게 더 의외인데.



"정말 고마웠어. 이제 기분도 좀 나아졌고, 열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뭘 찾고계신가요?"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정리하는 내 손에서 잔을 빼앗곤 내게 물었다. 뭘 찾냐니, 그야-

"혹시 메이린을 보게 되면, 빨리 내게 와 달라고 전해줘. 찾으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그나저나 도서관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 여기서 길을 잃으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겠는걸."

마리사씨를 붙잡아두려는 주인님의 의도예요, 그렇게 설명한 소악마는 날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날 도와주겠다는 듯 위로 날아오르는 소악마에게 말했다.

"아냐, 소악마 손까지 덜면 내가 파츄리님께 면목이 없어. 가서 파츄리님을 돕도록 해.
차 정말 잘 마셨어, 그럼 이만, 가볼게."



헛생각이었다. 도서관은 어느샌가 너무나도 넓어져, 30분은 찾았는데 아직 1/5를 다 못 찾은 것 같다. 거기다 슬슬 길을 헤매기까지 해서, 이젠 내가 왔던곳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힘들어졌다.

정말, 이 관 주인들은 어딘가 이상하다니깐.



"파츄리님, 하나 여쭤봐도 좋겠습니까?"

"응. 그나저나 사쿠야가 부탁이라니, 무슨 일일까?"

결국 도서관의 주인에게 메이린을 찾는걸 부탁하기로 했다. 책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내 질문에 고개를 들고 이 쪽을 바라봤다.

"메이린이 보이지 않습니다. 찾아줄 수 있습니까?"

내 말에 파츄리님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곤란한 듯 시간을 지체하던 그녀는 그렇지만,

"흐응. 그치만 탐색마법은 특기가 아니라서. 그렇게 넓게는 못 찾아보고 , 대충 이 도서관정도라면 만족하겠어?"

라며 도움의 뜻을 표했다. 특기가 아니라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표정이 무너져버려서 부끄러워졌다.

"..."

슥슥, 하늘에 손가락으로 무언가 낙서하자, 색색의 빛들이 모여들었다. 정령인가.
이내 그 정령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날았다 돌았다 하며, 제법 아름다운 문양의 마법진을 짰다. 마치 메이린이 생각날 법 한 무지개색에, 조금 마음이 아팠다.

마법진이 빛나고, 이내 소멸했다.

"이제부터 찾아보는거야. 기다려."

그렇게 5분은 지났을까. 파츄리님은 실망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없어, 여기엔."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파츄리님은 표정을 책에 감췄다. 감춰진 얼굴도 꽤나 지친 것 같이 보여서, 난 감사의 뜻으로 차 한 잔을 그녀의 앞에 두곤 도서관을 나섰다.



그렇다곤 해도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야...
확실히 목격자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복도에서도, 문에서도, 관 어디에서도 봤다는 말은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의 말을 따라가도 메이린은 없다. 누군가 수작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정도 레벨이면 범인은 한 명. 메이린의 장난이 분명하다. 그렇다곤 해도 관 전체가 나한테 힌트 하나 안 주고 데리고 놀 줄이야.

메이린, 잡히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거야.

맨 처음,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지치는데... 메이린, 숨어있다면 슬슬 나와."

몸이 처진다. 처지는 팔을 의자의 등받이에 받치듯 엎어지자, 시선이 자연스레 메이린이 앉는 의자로 옮겨간다. 어라? 아깐 없던 물건이 있다.

빵모양 곰인형.

"왔다 간걸까? 아니면, 새로운 힌트?"

그 빵모양 곰인형의 손엔, 조그만 메모가 묶여있었다.
메모엔 푸른 색 글씨로, 갈겨 쓴 필체가 남아있었다.

『오지 않아서 이걸 두고 갑니다. H · M』



뭐?
내 머리속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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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이야기를 보고있으려니 나도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진지하지 않게 써질지도...

메이린의 방은 조금 특이하다. 언제나 무언가 나뒹굴고 있는 내 방에 비해 깔끔하고, 그치만 결코 깔끔한 사람이 쓸 것 같진 않은 운동기구가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다. 언젠가 왜 이렇게 깔끔해? 라고 물었을 땐, 스스로 정리하는건 아니라고 했다.

이상하다, 슬슬 나타날텐데.
방 안 풍경을 관찰하는것도 매일같이 했던 일이라 눈을 감아도 대충 뭐가 어딨는진 알 수 있다. 그런 방 안에서 더 관찰해봐야 나올것도 없고,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5분.
평소보다 5분 늦었다. 평소라면 아무리 늦어도 이 쯤엔 나타나서, 아직 뜯어먹지 않았어요~ 라며 내가 선물했던 빵모양 곰인형을 흔들 법 한데. 아직도 인기척은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불편한 다리를 살짝 꼬아 늘어뜨리곤 발을 까딱거리며, 느긋해지기로 했다. 문에 마리사라도 나타난걸까?

15분.
많이 기다려줬어, 메이린. 장난이라면 이 쯤 해 두지?
내 손에 우연찮게 닿았던 테이블보는 이미 닳고닳아 그 올이 한올두올 빠지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깔짝거렸던 결과물. 음, 너무 얌전치 못한데 내 손.

탕!
결국 난 탁자를 내리치고 일어났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잡히면 묵사발을 내 줘야겠군. 좋은 베짱이야, 이 나를 바람맞히다니. 어디서 어떤 메이드와 농땡이부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오늘에야말로 뼈와 살을 분리해서 관 앞에 전시해주도록 할까. 발치에 쥐인지 돌인지 아니면 메이린의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걸리적거려서, 걷어차버렸다.



메이린 봤어?
내 질문에, 당황한 듯 한 표정의 메이드는 내 뒤쪽을 가리켰다. 저 쪽으로 아까 뛰어갔는데, 30분은 됐을걸요. 그 대답이 말하는 건 어쩐지 날 놀리는 듯 한 기분이었다. 방 주변의 메이드들은 모두들 같은 소릴 하고 있다. 그 즈음 해서, 방으로 향했다고.
혹시 문에라도 간걸까, 대체 날 얼마나 놀려먹을 셈이지. 내게 대답해 준 메이드에게 살짝 미소지으며 고맙다고 손을 흔든 후, 문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날씨도 맘에 안 들고, 정말이지 이건... 날 놀리려는게 분명해.

하지만 문에서도, 문 옆의 휴게실에서도, 벽을 따라 순찰하는 메이드들에게 물어도 긴머리든 짧은머리든 파란눈이든 빨간머리든 검은치마든 하얀 에이프릴이든, 하나같이 대답하는건 '못 봤어요.'
결국 관 주변, 문지기들이 지내는 곳은 다 헤매고 돌아다닌 느낌이었다. 어째서인지 하루종일 아가씨의 호출도 없었기에 난 마음놓고- 결코 마음을 놓지는 않았지만 - 찾아다니게 되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야, 메이린? 그렇게 날 놀리면 좋은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해졌다. 때마침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메이드들은 각자 비옷을 챙겨입고 있었고, 내 머리 위에도 한 방울 두 방울 한컵분량 이미 한 바가지분량 아니 완전히 젖어버려서-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메이린이 곤란해 할 텐데.
아니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거 아닐까. 내 감기따위는.

"이 이상은 몸에 안 좋을 것 같네요, 안으로 드세요."

내 머리 위에 커다란 날개를 펼쳐 가려준 그것은, 소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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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아침밥을 짓는데에 성공한 난 아가씨 분의 밥을 들고 침실로 향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었네, 사쿠야."

"정확히 3.54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렇게 말하며, 언제나처럼 홍차를 잔에 채워넣었다. 아가씨는 우아한 포즈로, 잔을 집어들어 홍차를 마신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잔을 집어던졌다.

"맛없어. 정말, 이거 위험할 정도로 맛없어. 너, 무슨 생각을 하며 탄거야?"

잔을 받아들어 원래의 장소에 돌려두곤 대답했다.

"아무것도. 전 그저 아가씨만을 생각합니다."

제발, 빨리 끝내줘.중국에게도 가봐야한다구.

"거짓말을 하면 벌을 줄거야. 거기다 다른 사람 때문에 주인에게 소홀해지다니, 이건 중죄야."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정말이지, 쓸데없이 읽어대기나 하고. 빨리 끝내줘, 메이린이 기다리고 있단말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직 작은아씨의 아침식사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아가씨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다.
곤란한데, 이래선 아무리 그래도 가버릴 수 없잖아.
똑, 딱, 똑, 딱,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퍼진다.
똑,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딱, 딱. 어라, 지금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알았어. 가 보도록 해. 그렇게 말한 아가씨는 혼잣말로,

"오늘은 날씨가 좋네."

라고 중얼거렸다.

날씨?
오늘은 맑았는데. 아무래도 아가씨가 좋다고 할 만한 날씨잖아...

"좋은... 날씨네요.
그럼, 편히 쉬시길.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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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모양 곰인형은 다음에 나와요.

치르르르르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울린다. 뇌가 깨어나고, 몸이 깨어나지 않는다. 몸이 너무 무겁다 그런만큼 스트레스는 뇌에 쌓여든다. 자명종과의 거리가 끝도 없이 멀게 느껴진다. 아아, 시끄러워.

치르르르르르-

참아. 참아보자. 이번에도 실수하면 메이린이...

치르르르르르- 콰직!

앗차.
내 손과의 작별을 고한 베게는 멋지게 자명종과 부딪혀, 함께 지면으로의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그 결과 자명종은 그 몸을 꽃잎마냥 멋지게 흐뜨러뜨리고, 베개는 멋지게 살아남았다.
외유내강의 승리.

뭔소리야. 어쩌지, 저 자명종. 메이린이 준 물건이건만.

잠에서 깬 난 박살난 시계를 손에 들었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 봐. 베개는 내 숙면을 돕는 중요한 물건이야. 그치만 이 자명종은 그걸 방해하는 물건. 그러니까 이걸 부순건 어디까지나 나의 자기방어. 오케이, 난 틀리지 않았어.

그래서 어쩌자는거지. 이거, 이미 부숴버렸는걸.
아, 모르겠다. 시계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난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자세를 점검한다.
슬슬 아침밥을 준비해야 할텐데. 오늘은 어젯밤 무리를 한 메이린에게 영양가 높은 아침을 준비해 주도록 할까. 그치만 그런 걸 눈치채면 분명 놀려댈 게 뻔하니까, 티 나지 않게, 신경 쓰지 않은 듯 만들어야지.
지는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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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레이무에게 이끌려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 그대로 관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신사에까지 끌려갔다. 신사는 좀 무서운데.
신사로 향하는 산길은, 해가 쨍쨍해서 머리가 어찔하도록 더웠다. 관 근처에선 흔히 없는 더위여서 곤란할 정도로 몸이 땀에 축축 처지는 느낌이다. 무거워, 몸.
그치만 그런 이야기를 레이무에게 하자,

"에- 더워? 난 하나도 안 더운데.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거 아냐?"

아니 너야 어차피 옷부터 좀 시원한 구조잖아…
거기다 귀신이고.
절대 입에 담아선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무의 말에 대답했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최근들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치니까… 왜일까."

아가씨의 상대에 이어 요즘들어 메이린을 상대하는 일도 생겼지만, 어차피 이전이나 지금이나 하루종일 일하는건 마찬가지인데.

나의 물음에 그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라고 말하며 레이무는 토리이를 통과했다.

"웃차."

경내에 발을 디디며 레이무가 사온 물건을 내게서 받았다. 유유히 안으로 들어가면서,

"술이라도 한 잔? 의외로 날 더울 때 먹는게, 또 느낌이 다르다구."

라며 근거모를 소릴 해댔다.



"술도 오랜만에 만드네- 누군가 덕분에, 최근 꽤나 바빴으니까."

포도알을 털어내듯 후두둑 후두둑 떼어내며 그런 말을 하기에, 뾰루퉁한 말투로

"아니, 아가씨한테 말해. 왜 나한테 투정이야."

라고 항변했다.
그치만 사실인걸, 난 그저 관을 지킨 것 뿐이니까.

"잘도 말하네. 그 관, 실은 네가 레밀리아보다 더 무서웠다구?"

"……."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는 레이무.
아가씨가 들으면 엄청나게 슬퍼하겠는데. 멋대로 망가져버린 내 기분이야 그렇다고 해 두고.
나는 아무 말 없이 포도 알맹이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시큼할 것 같은 향에 얼굴을 찌푸리며 씹었는데, 의외의 맛이 났다.

"…달아…"

"응? 아아, 당연하잖아? 누가 고른건데. 거기다 지금, 한창 포도철이라구. 이렇게 더운 날이야말로 포도가 탱글탱글하게 익어가는거지."

그런가….
듣는 둥 마는 둥, 따 놓은 포도알을 하나씩 주워먹었다.
이 정도로 달다면 나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구.
응- 이것도 저것도, 달콤할 뿐이야. 어째서 전에 먹었던 건 그렇게 시큼했던거지?
입 안에 넣자마자 뱉어버렸는데.

"자 그럼, 이것도 하나 먹어봐."

레이무가 푸른 색 포도알을 하나 건네줬지만, 색만 봐도 시큼할게 뻔해 고개를 피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건 붉은색이었지만.

"앗, 떨어졌잖아!"

레이무가 외치고, 나도 당황해선 옷을 털어낸다.
에이프런 끝단, 떨어진 부분이 물들어가며,
내 머릿속도 서서히 지금으로 물들어간다.



"그런 거야. 그 뒤 몇 번이고 빨았지만 지금 보는대로, 색이 붉어진 채로 빠지질 않아."

어째서 퍼런 포도알 물이 들었는데 빨간색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헤에…."

시선에 닿는 장면은, 내 허벅지에 머리를 두곤 그 끝단을 만지작대는 메이린.
피곤한 것 같은 얼굴이 조금 안쓰러웠다. 요즘 들어 유난히 시달리고 있던데.

"…그런 얼굴 하고 있으니까, 그 아이가 죽어버린 날이 떠오르는걸."

"……하아."

한숨이 내 무릎에 닿을 것 같다.

"……미안."

"…어째서 이런 이야기까지 온거죠, 우리?"

아니 물론 그건,

"네가 내 스커트를 하도 들추니까 이야기가 시작된거잖아."

헤실헤실 웃는 중국에, 나는 그저 말을 이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빨다가, 결국 그 날 레이무가 그렇게 된 뒤로는 그만뒀어.
뭔가 레이무를 떠오르게 하니까, 이 얼룩."

얼룩을 만지작대는 메이린의 손을 잡으며, 나도 그 얼룩에 손을 맞추었다.

"얼룩으로 이어지는 추억이라니, 저라면 죽어도 싫어요."

"그렇네, 얼룩이라니…."

아하하, 서로 마주 웃으며 난 메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푸석푸석한 머릿결이, 한 번 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치만 메이린,
난 말이지… 얼룩이어도 괜찮으니까, 너에게 남고싶어.
넌 그런 얼룩을 보면, 지금처럼 실없이 웃을까?

금세 잠드는 메이린의 얼굴을 보며 난 조그맣게 속삭였다.

- - - , 메이린.
Posted by 나즈키
"오늘 저녁은 뭘로 할까…"

최근 아가씨의 심기가 많이도 불편해보여서, 조금 마을에 갈 시간을 내 보기로 했다.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거나, 이유없이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치만 정작 당사자에게 허가를 받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자,

"헹, 어차피 그 중국이 뭔가 먹고싶다고 졸라댄거지?"

라며 영문모를 소릴 해 댔다.

어쨌든 아가씨는 그 이상 제지든 불평이든 하려는 의욕도 없는 듯 창 밖으로 시선을 내몰았고, 곧 잠에 들테니까 신경쓰지 말라는 말에 손을 던 나는 침실을 나섰다.
어째서 토라진걸까?
복도를 걸어가면서 생각을 해 봐도, 그다지 잡히는 게 없는건 마찬가지.
음. 왜일까.

"어머 사쿠야씨, 외출이신가요?"

"뭐어…조금 장이라도 보러 가려고."

메이린의 말에 문득, 아가씨의 말이 생각난 나는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그래, 메이린 혹시 뭔가 먹고 싶은 것 있어? 고기라던가 과자라던가."

"아뇨, 괜찮아요. 생각해 주시는것 만으로도 좋으니까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거절하는 메이린에 그래, 라고 대답하곤 넘겼다.

"그래서, 뭘 사러 가세요?"

"아가씨가 드실 간식거리정도."

"…헤에… 뭐, 그래서 제 간식도 사 오신다고 한 거였군요."

묘하게 뭔가 걸리는 목소리였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문은 제가 지킬게요. 라고 내게 말을 하기에 뭔가 되묻기도 찜찜했다.
몸 조심하세요- 라는 메이린의 배웅을 뒤로 한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포도라던가 먹고싶다고 말 했었지. 임신이라도 한 거야? 라며 놀리던 메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그런 시큼한 거, 난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엔 특별히 사 올까.

흐린 하늘은 마치 은같은 색이어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많이 더웠던 탓에 날씨는 제법 맘에 들었고, 그 때문인지 발걸음도 꽤나 가볍게, 거기다 바람도 딱 좋게 제멋대로 날뛰어 주는 덕분에-

"-라니 어째서 스커트만 노리고 휘몰아치는거야! 거기 있는거지, 아야!"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나이프 이, 삼십개가량 던져대곤 잠시 기다리니, 나이프를 든 모미지가 나와선

"아야님은 이미 도망가셨습니다. 기다리셔도 아마 나타나지 않을걸요."

라며 나이프를 건넸다. 건네어지기 전 사라져가는 나이프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모미지의 얼굴이 조금 귀여웠던 덕택에, 방심해버렸다.

"셔-터- 찬스!"

이건 또 무슨소리야, 스커트가 들춰지며 들린 외침에 짜증 백만배가 된 난 그 못된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뒤를 돌아보며,

"너!"

나이프를 던져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지만 그게 또 미스였다.

"에헤, 죄송합니다!"

다시금 스커트 뒤쪽을 들춰지다니, 거기다 그 범인이 모미지….
도망치듯 날아가는 둘을 보며 난 쫓아가는것도 잊고,

"대체 뭘 시키고 또 시킨다고 하는거야, 너희들…."

중얼중얼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치만 포도라…. 어떤게 맛있는거지?
과일가게까지는 어떻게 찾아서 왔지만, 그다지 과일에 흥미도 지식도 없는 탓에 고르기에 꽤나 곤란했다. 저건 작아보여서 별로고, 이건 크긴 한데 색이 덜 든걸 봐선 맛없어보이고….

"어머, 이런곳에서 장이라도 보는거야?"

별일이네, 난 인육이나 피만 먹고 살 줄 알았어 라고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 레이무?"

조금 당황한 목소리가 나한테서 나오는바람에 말을 더듬었다.

"뭘 그렇게 놀라는거야. 어쨌든 이 가게 아저씨한테서 뭔가 사려는거라면 그만두는게 나아. 좋은 물건도 잘 내놓지 않고, 거기다 값도 쓸데없이 비싸니까."

아니, 그렇다고 바로 앞에서 보는데에서 말할 건 아니지 않나 그건. 아저씨의 시선이 아파….

"그러니까 주인장, 좋은 물건 꺼내봐요. 이제 셋째도 태어났는데 쪼잔하게 굴면 저주받는다구?"

"적당히 해라. 아무리 그래도 무녀란 것이 말투가 그게 뭐냐. 저주는 심하잖아?"

…나도 동감이야 레이무.
내 생각이든 아저씨의 말이든 레이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뭐, 저주받으면 신사로 와. 내가 고쳐줄테니까. 그치만 음, 공짜는 곤란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내가 봐도 '이건 먹음직스러운데' 라고 생각 할 만큼 알이 실한 포도를 들어,

"이거 가져갈게. 돈은 만약에 그 아이가 저주받으면 그 때의 대금이라고 생각해 두고. 괜찮지? 그럼, 바이바이~"

라며 내 손을 잡아끌어 가게를 나섰다.

"에에이, 오늘 장사는 다 했구만."

그렇게 말하며 포도상자를 안에 들이는 주인장을 뒤로 한 채, 가게를 나섰다.
Posted by 나즈키

올라오는 글은 건전합니다.

오늘의 산다이 바나시 :

Posted by 나즈키

2009. 5. 19. 18:59 동방

밴드, 목욕, 면도날

날이갈수록 단어의 ㅇㄹ도가 높아져가는 꼬마신랑...



Posted by 나즈키

2009. 5. 14. 20:20 동방

이어서

여기저기 널부러진 나무들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폭풍에 가까운 눈보라가 몰아쳐 이곳을 폐허로 만들고 있다.

나는 어쨌든 그 잔해를 이용해 몸을 숨겼다. 언덕 저편을 바라보아도, 역시 언덕이 있다는 것 정도 이외엔 알아볼 수 없다. 여기서의 접근 경로는 두 군데. 가까운 쪽은 험하고 먼 쪽은 몸을 숨기기에 힘들다. 지금 내가 가진 스펠로 봐선 거리를 두고 싸우려고 하겠지. 자, 험한 산 쪽으로 향하자.

눈보라 소리가 귀에서 울려, 청각으로 사쿠야씨를 찾는 건 포기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손을 크게 휘둘러 탄을 던진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린다. 내가 쏜 탄이 흙먼지를 일으켜, 오히려 더욱 더 시야에 악영향.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근접으로 왔어야 했는데. 이 상태로는 상대하기 힘들겠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어느 틈엔가 사쿠야씨는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늘에 떠, 그 사나운 칼끝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나는 몸을 어떻게든 틀어 가까스로 나이프의 궤도에 몸을 맞추었다.

"큭…!"

팔에 빗맞아 튕겨나가는 나이프를 마지막으로 탄막이 끝나고, 나는 튕겨져 날아가 팔꿈치를 명치에 꽂아넣었다. 찡그린 얼굴이 그녀의 데미지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치만 지금의 내게 지근거리는 무리. 뒤로 튕겨날아가 거리를 벌리고, 화광옥을 쏘아냈다.

"닿아줘, 나의 마음!"

나의 대사에 사쿠야씨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몸을 추려 탄을 피하곤 뒤로 물러난다. 몇 발의 나이프가 이쪽으로 날아오지만 적당적당히 던지는 견제구. 흘려내며 난 온 몸의 기를 손과 팔에 집중시켰다.

"닿아, 닿아줘!"

핑핑핑 커다란 내 사랑들이 그녀의 품안으로 뛰어든다.

"전… 저는 사쿠야씨에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제 마음을 전하는데, 어째서… 어째서 받아주지 않는건가요!!"

"메이린에게는 아직 무리야, 이런 거."

그렇게 말하며, 내 사랑의 틈을 비집고 거절이, 나이프가 날아온다.

"어째서…?"

멍한 나의 질문에, 사쿠야씨는 냉정하게 즉답했다.

"넌 아직 미숙하니까."

피잉- 하고, 필살의 소리가 울렸다.
무수한 거절이 마치 그림처럼 우리 둘을 둘러싸고,

"끝이야, 메이린."

고마워, 라고 하는 대사와 함께 나는 쓰러졌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기체를 쓴 거야? 내기였는데 굳이 불리한 패를 꺼낼건 없잖아?"

전자상가로 향하는 길, 사쿠야씨는 기쁜 듯 발을 놀리다가 멈칫하곤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떠서 있다가 생각난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적당히 대답했다.

"요즘 자주 써서 자신이 붙었다고 생각했다고나 할까… 그치만, 역시 무리였네요. 에헤…"

힘없이 웃으며 뺨을 긁적이고 있으려니 사쿠야씨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다시 앞을 향하곤 걸어갔다. 등 뒤로 손을 맞잡은 그 모습이 귀엽다.

사실 사 준다면야 언제든 사 줄 수 있겠지만 사쿠야씨는 그다지 그런 걸 기뻐하는 성격이 아니다. 거기다 받아주지도 않을테고… 거기다, 어- 거기다-





"…메이린, 우리 집에 와 줄 수 없겠어?"

밤 열두시.
언제나라면 절대 걸려올 리 없는 사쿠야씨에게서의 전화.

"이거, 뭔가 이상해~ 망가져 버린 걸까? 어쩌지, 메이린?"

쿡, 하고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도록 수화기를 틀어막으며 웃었다.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자, 가볼까?
오늘 밤은 심심하지 않겠는걸…. 무척이나 짧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Posted by 나즈키

2009. 5. 12. 17:50 동방

단어 너무 악랄해...





아직 안 끝났다!
나머지는 오후에 와서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말아먹을 근무덕분에 쓰는거 늦었다.
Posted by 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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